[기자수첩] 비정규직과 싸우는 ‘현대위아’에 A+준 지배구조원

지배구조원, 투자자 영향력 막강한 만큼 책임 가져야
정우성 기자 2020-11-19 09:32:45
[스마트에프엔=정우성 기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매년 상장 기업을 위주로 지배구조와 사회책임경영을 평가해 매긴 점수를 발표한다.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에 투자할 때 참고하는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다.

ESG라 불리는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면에서 책임을 다하는지를 들여다본다. 이중 하나인 사회책임경영 모범규준은 워낙에 범위가 넓지만 근로자, 지역사회, 소비자, 협력사, 경쟁사와 관계를 우선적으로 살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노사관계다. 이와 관련해 유엔도 "기업은 고용 및 업무에서 차별을 철폐한다"고 글로벌 콤팩트 10대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업지배구조원)
(사진=한국기업지배구조원)


지배구조원은 올해 코스피와 코스닥 일부 상장기업 760개사를 대상으로 각 부문과 통합 점수를 매겼다.

기업들은 S(탁월), A+(매우 우수), A(우수), B+(양호), B(보통), C(취약), D(매우 취약) 점수를 받는다. 어느 기업도 S등급은 받지 못했다.

사회 책임 부문에서 72개사가 지난달 A+를 받았다. 평가 대상 중 10% 안쪽이다. 이중에는 현대·기아차에 엔진을 비롯한 부품을 납품하는 현대위아가 포함됐다.

현대위아는 지배구조, 환경, 종합 등급에서도 A를 받았다. 하지만 현대위아에서 일하는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1100명 정도만이 정규직인 이 회사의 비정규직은 약 2000명으로 두 배 수준이다. 이들은 사내하청 형태로 근무해왔다.

2014년부터 이들은 원청업체 현대위아에 실제 고용주로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2심 판결도 노동자 편을 들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 이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

(사진=현대위아비정규직 평택지회)
(사진=현대위아비정규직 평택지회)
하지만 현대위아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요금소 근무자 사례처럼 별도 자회사의 정규직이 되라고 하면서 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평택공장 근무자 40여 명은 갑자기 울산공장으로 보냈다. 이들의 근무 여건도 마련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합의금으로 3000만원을 제시하며 소송을 취하하라는 현대위아를 상대로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다. 1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 기자회견장에 선 현대위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밝힌 내용이다.

지배구조원은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사다. 이들의 평가는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6년째 싸우고만 있는 회사를 두고 사회책임경영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배구조원이 ESG에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을 갖게 만든 사건은 또 있다. 20일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추천한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사외이사로 선임될지 여부를 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지배구조원은 9일 주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서 두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라는 의견을 냈다. "KB금융은 국내 ESG 선도 기업이며 우수한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있으므로 주주 제안에 따른 사외이사 선임이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를 댔다.

이미 ESG를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전문가 사외이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KB금융 산하 KB증권 일부 임직원이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일은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배구조원이 자본시장과 우리 경제에 가진 '책임'의 무게를, 그 자신들이 먼저 깨닫기를 기대한다.




정우성 기자 WSJ@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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