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퍼진 구치소…문 대통령 30년 전 칼럼에선

"재소자는 우리들의 일부…인권 사각지대에 방치 안 돼"
정우성 기자 2021-01-01 21:53:27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 중인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 중인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동부구치소 내에서 1000명 가까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부가 대응을 잘못했다는 비판에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사과했다. 비판 과정에서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재소자 인권을 주제로 쓴 칼럼까지 거론됐다.

1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문 대통령이 1991년 11월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갈수록 악화되는 재소자 인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공유했다. 다른 코멘트는 없었지만 정부 대응을 비판한 의미로 해석된다.

해당 칼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며칠 전 부터 공유됐다. 문 대통령은 칼럼에서 "미결구금자는 무죄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구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신체의 자유만 제한될 뿐 그 이상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썼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재 전국적으로 미결구금자를 수용하는 구치소가 턱없이 부족하여 웬만한 중소도시와 지방에서는 경찰서 유치장을 대용감방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동부구치소 역시 미결구금자를 수용하는 시설이다. 일부에서는 과밀 수용이 대규모 확진의 원인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교도관들이 확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재소자 증언도 나왔다. 확진자를 제대로 검사하고 제 때 격리하는 조치가 늦었다는 것이다.

과거 칼럼에서 문 대통령은 "재소자는 별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부이다. 그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서는 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자 변호사이던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도 막상 재소자 문제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기준 동부구치소 확진자 수는 수용자 915명과 직원 22명으로 모두 937명이다. 추 장관은 "서울 동부구치소의 코로나 확산에 대하여 교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매우 송구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출처=페이스북)
(출처=페이스북)
(출처=한겨레)
(출처=한겨레)
다음은 문 대통령 칼럼 <갈수록 악화되는 재소자 인권> 전문.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해마다 발간하는 국제인권보고서는 시국관련 재소자의 수와 그들이 받는 처우로써 각국의 인권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국관련 재소자의 수와 그들이 받는 처우야말로 그 나라의 인권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6공화국 들어 시국 재소자의 수가 급증하자 이들에 대한 집단폭행 등 가혹행위 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겉으로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는 6공화국의 인권상황이 속으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변협이 6일 발표한 '90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90년 11월 현재 시국관련 구속자는 모두 1천8백72명으로 88년의 7백79명, 89년의 1천3백1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지적됐다.

며칠 전 보도된 정주경찰서의 농민운동 재소자에 대한 가혹행위 사건은 가혹행위 장면의 사진까지 생생하게 보도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농민이 쌀 제값받기 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것만도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인데, 5일 동안 점심을 굶긴 채 매일 9시간씩이나 수갑을 채워 쇠창살에 매달아두다니... 더구나 쌀 수매 값과 수매량 때문에 전국의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터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혹행위 사진 충격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발뒤꿈치가 쳐들린 채 쇠창살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농민운동가 허윤하 씨의 사진은 이 땅 농민들의 지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 땅의 인권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 근래 출감한 사상범 장기수들을 통하여 지난날 그들이 교도소 안에서 전향을 강요당하면서 오랫동안 겪었던 무지막지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의 체험담을 들으면 누구나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런 일을 외면하면서 인권이니 민주화니 흰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정주경찰서 사건은 결코 우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두가지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으며, 재소자의 인권보장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 아닌 구조적 문제

첫째, 미결구금자의 처우문제이다. 우리 헌법은 형사피고인이라 할지라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됨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미결구금자는 무죄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비록 구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신체의 자유만 제한될 뿐 그 이상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접견, 서신이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물론 원하는 대로 신문을 보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어야 하고,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가족과 재판대책을 협의하고 유리한 변론자료를 수집하여 활용하는 등의 방어 준비행위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형법은 미결구금자에 대한 별도의 처우규정을 두지 않고 수형자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결구금자는 노역을 하지 않는 점만 다를 뿐 수형자와 거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며, 수형자와 거의 같은 처우를 받고 있다. 미결구금자들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미리부터 범죄자로 취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행형법은 위헌적인 법률일 뿐 아니라 근대적 형사사법의 정의에 반하는 악법이므로 개정이 시급하다.

둘째, 대용감방의 문제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미결구금자를 수용하는 구치소가 턱없이 부족하여 웬만한 중소도시와 지방에서는 경찰서 유치장을 대용감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인구가 70만 명에 이르고 인근의 언양과 양산을 합치면 80만 명이 훨씬 넘는 울산과 같은 대도시조차 구치소가 없어 미결구금자를 각 경찰서 유치장에 나누어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경찰서 유치장이란 문자 그대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유치하는 시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결구금자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개월씩 장기간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비한 시설로 인하여 미결구금자의 처우는 열악해질 수밖에 없고, 더구나 경찰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터에 본연의 임무가 아닌 귀찮은 잡무를 떠맡는 셈이므로 미결구금자 처우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악한 처우와 각종 비리, 심지어 경찰의 가혹행위까지 마구 자행되어 대용감방이 인권의 사각지대로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소자는 별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부이다. 그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서는 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처우와 인권상황에 모두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률 · 제도개선 시급

특히 미결구금자는 형사소송법상 무죄로 추정되는 가운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막강한 경찰 및 검찰과 맞서 자신을 방어하여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들에 대한 인권유린과 열악한 처우는 한쪽 선수를 묶어 놓고 권투시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결구금자들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정신에 걸맞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법률의 개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정우성 기자 wsj@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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