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전 대사 "윤석열 외교? 싹수 노랗다"

"미국·EU만 특사 보내면 다른 나라 불만"
정우성 기자 2022-03-17 13:32:2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스마트에프엔=정우성 기자] 고위직 외교관을 지낸 인사가 미국과 유럽연합(EU)에만 특사를 보내기로 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17일 이현주 외교통상부 전 국제안보대사는 페이스북에 <윤석열 당선자의 '외교 싹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미국과 EU에만 특사를 보낸다고 하니까 중국과 일본이 당장 불만을 표시하는 모양"이라며 "국가의 체면과 실리가 얽히는 일을 참 미련하게 처리한다. 싹수가 노랗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사는 "원래 외교관들의 특기가 불만을 제기할 만한 '건수'를 찾는 것"이라면서 "당선자는 자신이 장차 상대할 대상으로부터 그런 불만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것은 벌써 개인들의 사욕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면서 "외교 분야의 참모는 당선자가 그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참모 자신이 당선자의 덕을 본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의 잘잘못은 따지기도 힘들다"면서 "폐해는 천천히 그리고 간접적인 형태로 드러난다"고 썼다.

그는 "윤 당선자를 지지했던 그 많은 외교 관료들, 특히 차관급 이상을 지낸 관료들이 한 명도 인수위 위원이 되지 않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사는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으로 외시 13회에 합격, 동북아 1과와 주일 2등서기관을 거쳐 경제협력 1과장과 다자통상국 심의관, 주미 참사관과 주중 공사, 주오사카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르소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접견하며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르소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접견하며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페이스북 캡쳐
페이스북 캡쳐
다음은 이 전 대사의 글 전문

<윤석열 당선자의 ‘외교 싹수’>

윤석열 당선자의 ‘외교행위’가 시작서부터 삐걱거리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EU에만 특사를 보낸다고 하니까 중국과 일본이 당장 불만을 표시하는 모양입니다(3월17일자 동아일보 사설 등) 국가의 체면과 실리가 얽히는 일을 참 미련하게 처리합니다. 싹수가 노랗습니다.

저는 이미 당선자의 서두르는 외교행보가 외교OB를 낼 수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왜 소위 “4강”(저는 이 용어를 쓰기 싫어서 항상 이렇게 표현합니다) 대사를 다 만나고 “4강”에 특사를 보내게 되었는지 그 비화를 소개했습니다. “혹 하나 떼려다가 세 개를 더 붙였다”는 이야기지요(오케이뉴스 [이현주의 외교읽기] 15, 30).

그런데 외교의 혹은 일단 한 번 붙이면 떼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떼려면 다 떼어내어야 합니다. 그 중 어느 혹만 떼어내면 더 큰 덧이 납니다. 그건 외교의 상식입니다. 외교에서는 상대방에게 떡을 주기는 쉬워도 주던 떡을 주지 않으면 불만을 야기합니다. 심지어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모시고 일하던 어떤 대사님이 늘 말하던 인사(人事)원칙이 있습니다. “모두가 불만인 인사가 가장 잘 된 인사이고, 어느 한 두 사람만 ‘행복하게 만드는’ 인사가 가장 실패한 인사”라는 겁니다. 개인에 관한 일도 그런데 하물며 국가 관계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미국에게만 특사를 보내고 나머지 국가들에는 보내지 않는다면 그 나라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원래 외교관들의 특기가 불만을 제기할만한 “껀수”를 찾는 겁니다. 국가관계에서 “차별”은 가장 큰 불만입니다. 당선자는 자신이 장차 상대할 대상으로부터 그런 불만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줄 필요가 없는 것을 주고 얻는 작은 외교 이익보다 상대방의 불만을 달래야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 외교 상식마저 무지한 ‘윤석열 외교’는 이미 첫 걸음부터 중국과 일본에게 밟히고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리 무지한 짓을 할까요? 그것은 벌써 개인들의 사욕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 참모는 중요합니다. 특히 민생과 관련되는 정책은 당장 감당하지 못할 책임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책임이 드러나고 치명적인 만큼 이 분야의 참모는 당선자만을 위해서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외교 분야의 참모는 당선자가 그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참모 자신이 당선자의 덕을 보는 겁니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은 일단 어떤 자리만 일단 차지하면 ‘유능한’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90%는 다 대통령의 후광이나 다른 사람들이 해 줄 것을 잘 압니다.

외교의 잘잘못은 따지기도 힘듭니다. 화려함은 금방 과시할 수 있지만, 그 폐해는 천천히 그리고 간접적인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러니 외교장사는 항상 남는 장사로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 분야에는 벌떼처럼 줄이 길어집니다. 특히 국제정치학자들이 그렇습니다. 서로 당겨주고 밀어줍니다. 이번 인수위 위원도 MB정부 때 그런 관계였던 것 같지요. 그리곤 당선자에게 자신을 잘 보이게 하려고 이것저것 서두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합니다만 외교에서는 ‘저지르기’는 쉽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대가 없이 그저 주는 외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저지른 것’을 주워 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한국의 외교는 학자 '키신저'보다는 외교기술자가 더 필요합니다. 요즘은 외교 관료들도 앞 다투어 줄을 섭니다. 그런데 적어도 차관급 정도 지낸,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자처하는 관료들은 중용될 확률이 50% 이상은 될 텐데, 왜 구태여 양 진영에 미리 줄을 서서 그 확률을 50%로 낮추는지 이상합니다.

윤석열 당선자를 지지했던 그 많은 외교 관료들, 특히 차관급 이상을 지낸 관료들이 한 명도 인수위 위원이 되지 않는 것은 더욱 더 이상합니다. 그런 ‘이상한 일들’이 이번과 같은 ‘이상한 출발’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정우성 기자 news@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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