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저가항공사라는 명칭은 왜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김효정 기자 2022-11-09 06:30: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우리나라에서 ‘저가항공사’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것일까. 미국에서 생겨나 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넘어온 LCC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저가항공사’로 불리게 된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하반기에 비로소 해외 각국 LCC의 설립과 성공사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해외 LCC를 ‘저가항공권을 취급하는 항공사’, ‘저렴한 운임으로 유명한 항공사’, ‘저가항공사’, ‘저비용항공사’ 등 다양하게 해석해서 불렀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해외 LCC를 ‘저가항공권을 취급하는 항공사’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저가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를 혼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이때부터 ‘저가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를 같은 뜻으로 보고 있었다.

이 같은 여러가지 명칭은 2001년까지만 하더라도 LCC에 대한 우리말 해석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2002년에는 국내 할인점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할인항공사’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할인점의 사례를 빌어 ‘저가항공사’라는 용어 보다는 ‘할인항공사’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고 본 듯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LCC 도입논의 자체가 없던 시기였던 만큼 어떤 명칭이 적절한지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

이처럼 해외 LCC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2001~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저가항공권을 취급하는 항공사’, ‘저렴한 운임으로 유명한 항공사’ 등으로 불렀다. 즉 LCC 전체를 묶어주는 명칭으로서의 항공사 분류방식이 아닌 단순한 수식어 수준이었다.

그리고 에어아시아 설립을 전후한 2002년 후반기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도 LCC에 대해 관심이 늘면서 우리말 표기는 더 다양해졌다. 저가항공사, 저비용항공사, 할인항공사, 염가항공사, 노 프릴스(No Frills) 항공사, 상시할인 항공사, 저운임 항공사, 알뜰항공사 등이 사용되었다.

2003년이 되면서 우리나라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가 펴낸 자료 그리고 증권사 리포트와 언론뉴스 등에서 ‘저가항공사’라는 단일화된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사회는 나름대로 LCC를 ‘저가항공사’로 부르는 게 가장 맛깔난 표현방법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저비용’ 등은 항공사 입장에서나 중요하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가(싼 운임)’가 가장 피부에 와닿는 단어로 다가온 탓도 컸다.

기존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한 차별화 방안으로 일정 수준의 저가 운임을 결과물로 구현해 낸 것이 LCC의 본질인지라 ‘저가’는 LCC가 구현한 산출물이지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 입장에서는 저가운임이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로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우리나라에서 LCC가 설립되기 불과 1~2년 전에 항공사 분류를 타인들이 자의적으로 정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정기항공사로서 LCC의 효시는 제주항공이다. 제주항공은 2004년 준비과정을 거쳐 2005년 1월25일 ㈜제주에어라는 사명(社名)으로 항공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2006년 6월5일 역사적인 첫 취항을 했다. 따라서 2005년 1월25일과 2006년 6월5일이 갖는 국내 항공사(航空史)적 의미는 꽤 크다. 우리나라 LCC의 본격적인 개막인 것이다.

이보다 시기상으로 앞선 한성항공이 있었지만 부정기항공사였다는 점에서 효력이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실패한 항공사를 효시로 삼는 것도 다소 민망하다.
사진=한성항공

K-LCC 설립이 본격화되던 시기인 2004~2006년 당시 우리나라 항공법은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정기항공운송사업자면허와 부정기항공운송사업자면허로 구분했다. 이를 편의상 ‘정기항공사’와 ‘부정기항공사’로 불렀다. 정기항공사 면허는 항공기 보유대수, 법인의 자본금 등에서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기 때문에 웬만한 준비와 규모로는 정기항공사 면허를 신청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정기항공사 면허를 보유해야 국제선 취항을 할 수 있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제주항공까지 단 3개사 만이 정기항공사였다.

한성항공이 취득한 부정기항공사 면허는 통상적으로 국제선 운항은 안되고 국내선만 허용되는 조건이었다. 국내선도 전세기처럼 매월 정부에 신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운항이 가능했다. 일종의 정기성 부정기 취항이었다. 한성항공은 2005년 5월 부정기항공사 면허를 취득하여 2005년 8월31일 청주~제주 노선에서 취항했다. 국내 최초의 지역 민영 단거리 전문 소형항공사였다. 비록 부정기항공사로 출범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존항공사 외에 일반승객을 대상으로 운항한 최초의 민영항공이었다. 이후 2008년 10월 경영난으로 운항을 중단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한성항공이 취득한 부정기항공사 면허는 국내에서 관광헬기를 운영하거나 자가용 항공기를 운영하는 등의 각종 항공관련 업체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성항공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기존 민간항공사와 동일하게 국내 특정노선에서 일반승객을 수송한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었다.

엄격하게 정기와 부정기로 항공사를 분류해서 신규 사업자의 진입장벽을 매우 어렵게 만듦으로써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 주었던 항공운송사업 체계는 2009년에 가서야 규제완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항공사 면허가 국내선, 국제선, 소형의 3가지로 개편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LCC 행보의 첫 발을 내딛은 제주항공은 2004~2006년 당시 “우리는 저가항공사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전인 2003년부터 타칭 저가항공사로 통일된 우리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초기 항공사였을 따름인 제주항공의 목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제주항공은 설립 및 취항 초기에 한성항공과 엮여서 ‘두 저가항공사’로 분류되었고 그렇게 불리워졌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저가항공사란 명칭에 힘을 실어주었다. 우리사회에서 부정적인 저의를 밑바닥에 깔고 저가항공사라 부르던 것에 다름아니었다. 기존항공사들은 자신과 선을 긋는 차별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저가항공사라는 명칭을 선호하였고, 설립을 준비중이었거나 취항 초기 단계였던 제주항공이나 한성항공은 부자연스럽게 저가항공사로 자리잡았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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