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38)한성항공 취항사 4

김효정 기자 2023-03-04 06:24: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충청항공에서 기획되었고 한성항공까지 이르는 동안 처음에는 지역항공사이자 소형 부정기항공사로 시작되더니 이후 본격적으로 K-LCC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다. 한성항공이 당시 상상한 세상은 ‘비행기도 택시처럼 타는 세상’이었다. 한성항공은 "줄을 서서 택시를 타듯 비행기도 한성항공 출현을 계기로 보편화된 운송수단으로 자리잡게 하고 싶다"며 "이런 의미에서 한성항공을 '에어택시'로 봐 달라"고 말했다.

2005년 8월19일 한성항공은 건설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으로부터 운항증명을 교부 받았다. 이에 따라 한성항공은 첫 취항노선인 청주~제주 노선의 편도항공권 운임을 기존항공사의 70% 수준으로 정하고, 평일에는 4만5000원, 주말에는 5만2000원으로 정했다. 비행시간은 60분을 예상했다. 취항예정일은 2005년 8월31일로 공지됐다.

운항증명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취항을 위한 정부의 허가과정을 모두 끝마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한성항공은 모든 준비가 끝나자마자 경영권을 둘러싼 내분이 발생했다. 성공한 해외 LCC 설립과정을 살펴보면, 항공면허를 따내고 취항을 하기까지 정부, 기존항공사, 지역여론, 지역공항 등과 생존 차원의 치열한 갈등과 고난을 겪는 동안 내부 임직원들은 전사(戰士)와도 같은 정신으로 똘똘 뭉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외부의 견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탁월한 조직문화는 혁신으로 이어져 취항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하지만 한성항공은 이러한 초기 어려움이 부족했던 것일까. 한성항공은 한우봉 대표이사와 한 대표의 해임을 의결한 이사진 등 두 패로 갈렸다. 본격 취항이 임박한 한성항공이 겪은 내분은 K-LCC들의 설립 초기 과정의 전형적인 병폐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2003년 5월19일 이덕형 대표가 설립한 충청항공은 한성항공의 초석을 놓은 첫걸음이었다. 이 대표는 해외 LCC의 성공사례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부정기항공사이기는 했지만 첫 민간 지역항공사 설립을 위한 기획을 해낸 인물이었다. 충청항공은 이후 청주시와 손을 잡고 항공면허 취득을 위해 한우봉 대표가 새롭게 영입되었고 회사이름도 한성항공으로 바뀌면서 이사진이 새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최초 설립자였던 이덕형 대표가 빠진 게 발단이었다. 그 바람에 한성항공 안에는 신, 구 세력이 함께 존재했고, 이른바 충청항공과 한성항공의 대결국면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고난을 같이 극복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두 집단이 취항을 목전에 두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혈전을 하는 꼴이 됐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한성항공은 취항 2일 만에 대표이사가 2명이 되는 등 회사가 두 토막이 나서 내분은 계속됐다. 경영진이 갈리자 한성항공 주요 대주주와 이사들로 구성된 ‘한성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꾸려졌다. 조직의 힘을 모아 기존항공사의 견제를 막아내야 할 신생항공사 한성항공의 내분은 결국 법정공방으로 번졌다. 2005년 10월31일에는 한성항공에서 퇴직한 부사장이 청주시청 기자실에서 ‘한성항공 안전사고 관련 양심선언’을 갖고 “회사자금이 현재 수천만원에 불과한 열악한 재정상황에서 경영권 다툼으로 인한 소송비용을 회사자금으로 지출해 자금악화를 초래했다”며 "회사를 개인 소유물로 다뤄 사욕을 취하려는 음모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한 대표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심한 내분에 빠진 한성항공에 2005년 11월7일 청주지법 민사합의1부는 주주들로 구성된 대책위가 신청한 ‘이모 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 일부 이사의 직무가 정지되고 관선이사가 파견됐다. 경영권 다툼은 2006년 1월4일 청주지방법원이 대책위가 제출한 한 대표에 대한 ‘직무집행 방해 배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경영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성항공의 취항 자체는 순조로웠고 성공적이었다. 한성항공은 2005년 8월31일 취항을 앞두고 충청지역 기관, 단체장, 기업체 대표 등을 대상으로 8월26일부터 8월28일까지 3일간 청주~제주 노선에서 매일 3차례의 시범비행을 실시했다. HAN301T기의 역사적인 첫 시범비행은 2005년 8월26일 오전 9시10분 승객 17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청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제주공항까지 1시간5분을 비행시간으로 예고했다.

항공기는 ATR72-200 기종의 제트엔진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터보프롭 항공기였는데, 승객들은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승객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 심한 흔들림으로 짜릿함을 느끼게 했지만 구름위로 올라선 뒤로는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 “기존항공사의 비행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다만,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커 앞사람과 말하기가 어려웠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 항공기는 72인승이었지만 66개의 좌석만 설치해 좌석간격을 기존 항공기의 국내선 좌석보다 3cm 정도 넓힌 것도 특징이었다. 기내서비스는 물, 탄산음료, 오렌지주스 등을 한차례 서비스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한성항공은 항공권 판매를 2005년 8월27일 오픈한 홈페이지에서만 받았다. 운임은 편도 기준으로 평일(월∼목) 4만5000원, 주말(금∼일) 5만2000원, 성수기 6만원을 책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 K-LCC 시대가 열리게 됐다. 한성항공은 2005년 8월31일 오전 9시 청주공항에서 청주~제주 노선을 공식 취항했다. 비행시간은 기존항공사보다 약간 늦은 1시간10분이 걸렸다. 한성항공의 취항에 맞춰 기존항공사들의 ‘맞춤견제’도 개시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독 청주~제주 노선에 대한 운임을 대폭 낮췄다.

대한항공은 2005년 9월 1∼15일 국내선 21개 노선 가운데 청주∼제주 등 13개 노선의 항공편에 대해 인터넷 구매시 5∼25% 할인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청주∼제주 노선은 최대할인폭이 적용돼 25%를 인하했다. 이에 해당노선 운임이 평일 4만8300원, 주말 5만5800원으로 한성항공 운임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인하됐다. 아시아나항공은 9월 한달 동안(추석성수기 제외) 청주와 제주를 오가는 왕복항공편 8편 가운데 4편에 대해 인터넷 구매시 운임을 30%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해당노선 운임은 평일 6만4400원에서 4만5080원으로 낮아졌다. 한성항공 운임 4만5000원과는 단 80원의 차이가 날 뿐이었다. 주말운임도 아시아나항공이 5만2080원, 한성항공이 5만2000원으로 80원의 차이가 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할인된 운임이 주는 메시지는 “굳이 한성항공을 탈 이유가 없다. 그냥 기존항공사를 계속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겨우 비행기 1대로 시작한 신생항공사를 이렇게까지 견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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