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49)제주항공 취항사 8

김효정 기자 2023-04-12 06:02: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제주항공은 취항이 임박한 2006년 4월17일에야 각종 운항계획을 공식발표했다. 취항날짜는 2006년 6월5일이며 기본운임은 김포~제주 노선이 5만9100원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마지막으로 운임 인상한 2004년 7월16일부터 해당노선 운임이 8만4400원이었으니 2만5300원 저렴한 셈이었다. 제주항공의 운임정책은 기존항공사 대비 약 30% 저렴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방침으로 김포~부산 노선은 5만7100원, 김포~양양 노선은 4만7500원, 부산~제주 노선은 4만5800원으로 결정됐다. 또 성수기운임은 김포~제주 6만5000원, 김포∼부산 6만2700원, 김포∼양양 5만2300원, 부산~제주 5만300원으로 결정됐다. 예매는 2006년 5월8일부터 받고, 항공권은 인터넷 판매를 원칙으로 했다. 다만,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계층을 위해 전화예약 및 공항 현장판매를 병행하기로 했다.

제주항공은 ‘여행길의 즐거운 동반자’를 캐치플레이즈로 정하고 △안전성과 쾌적함 △신선함과 즐거움 △저비용과 고효율 △합리적인 운임체계 △정시운항 등 5대 경영이념을 내세웠다. 또 2006년 5월26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총 2차례의 Q400 항공기 시승행사를 갖겠다고 안내했다.

제주항공이 운임을 공식발표하자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저가(低價)논란'이 벌어졌다. 기존항공사 대비 30% 저렴한 수준의 운임정책에 대해 아직 LCC 비즈니스 모델의 이해가 부족했던 국내 상황에서 단순히 운임만 부각되며 ‘저가항공사를 표방했다’는 몰이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제주항공의 운임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할인폭이 크지 않다고 안도했다. 이들은 "저가항공을 표방한다기에 김포~제주 간 운임을 4만원대 후반 혹은 5만원대 초반으로 예상했다"며 "뚜껑을 열어보니 5만9100원으로 예상보다 할인폭이 크지 않다"고 깎아내렸다. 기존항공사들은 또 "가격이 실질적으로 30%까지 차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존항공사의 할인요금 체계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부에선 요금차이가 1만원 정도 밖에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기존항공사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할 경우 5%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실제차이는 최대 25%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의 취항이 임박해지면서 운임공방 외에도 기존항공사의 견제는 더욱 표면화되었다. 부산 김해공항은 그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2개사 만으로 운영되었는데, 추가로 제주항공이 신규 취항하면서 공항측은 두 기존항공사에게 수하물 수속카운터 2개씩 반납할 것을 요구했으나 기존항공사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당시 김해공항 국내선터미널에는 대한항공이 체크인카운터 16개를 포함 모두 26개의 카운터를, 아시아나항공이 체크인카운터 8개 등 총 16개의 카운터를 각각 운영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비해 우리가 여객운송능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3배나 큰 항공사인데 카운터 수를 똑같이 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체크인카운터 8개 중 2개를 반납하면 항공사 업무가 불가능해진다”며 버텼다. 이들은 “이미 사용중인 항공사 카운터를 회수하려 하지 말고 공항 측에서 공항시설물을 철거하고 카운터를 새로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제주항공은 “기존항공사들의 카운터 반납이 늦어지면 제주항공의 신규 취항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이는 기존항공사의 신생항공사에 대한 영업 방해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제주항공의 신규 취항을 둘러싼 카운터 배정 갈등은 이후에도 최소한 10년 이상 전국 공항에서 똑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나 에어아시아의 경우처럼 기존항공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서브공항을 신생항공사가 주공항으로 이용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 공항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진 갈등이었다.

제주항공의 첫 비행기는 2006년 4월30일 캐나다 토론토∼러시아 캄차카 반도∼일본 센다이공항을 거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제주공항 화물청사 앞 계류장에 마련된 도입행사장에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각급 기관장 및 단체장, 주민대표 등의 제주도 관계자와 제주항공 임직원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축하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국내 제3의 정기항공사’라는 수식어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합리적인 운임의 대중적인 항공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과 제주도와 애경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민관합작 항공사’라는 점을 내세웠다.


제주항공 기본운임에 대한 기존항공사의 폄하와 견제가 계속되자 제주항공은 2006년 5월8일 항공권 예약 개시시점을 며칠 앞두고 김포~제주 노선의 주중(월~목) 요금을 인하했다. 이에 따라 해당 노선의 운임은 주중 5만1400원, 주말(금~일) 5만9100원, 성수기 6만500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곧바로 ‘쪽집게’ 대응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김포∼제주 노선을 추가 할인노선에 포함시켰고, 아시아나항공은 6월 한달 내내 제주항공 운항스케줄과 엇비슷한 시간대 항공편에 한해 가격을 더 낮췄다. 6월5일 취항하는 제주항공을 견제하기 위한 노골적인 행보로 보였다. 이들 기존항공사는 과거 한성항공의 청주∼제주 노선 신규취항 당시에도 똑 같은 할인정책을 펼쳐 눈총을 산 바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제주항공이 운항을 시작하는 6월 한달간 김포∼부산 노선의 모든 항공편에 대해 인터넷 판매가를 20% 할인했고, 김포∼제주 노선은 특정시간대를 선별해 인터넷 판매가를 30% 할인했다. 특히 6월1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5분까지 김포발 제주행 항공편 22편 중 오후 2시25분과 5시30분 출발하는 항공편의 인터넷 구입 고객에게 정상요금인 8만4400원보다 30% 할인된 5만9080원에 판매했다.

제주항공은 김포발 제주행 항공편 5편 중 2편이 오후 2시50분과 6시10분에 출발하는데 비슷한 시간대의 아시아나항공 항공편 운임이 30% 떨어지는 바람에 가격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제주항공의 김포∼제주 노선 운임이 5만9100원이었고 아시아나항공의 인터넷 할인가격은 5만9080원으로 오히려 아시아나항공이 20원 더 쌌다. 아시아나항공의 이 같은 쪽집게 대응은 “굳이 제주항공을 탈 필요 없다”는 타깃전략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원래 인터넷 예약고객에 대해서는 할인을 해왔고 비행기 시간대에 따라 가격은 다르게 책정된다”며 “제주항공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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