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7)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⑤ 신생 LCC에게만 엄격했던 국제선 취항 흑역사 2

김효정 기자 2023-05-10 06:16: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제주항공의 국제선 취항을 향한 도전의 역사 또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주외(州外)노선 취항 도전 못지않은 긴 역사와 상당한 불공정이 있었다. 그리고 K-LCC의 국제선 취항 과정은 항공사(史)에 길이 남을 흑역사였다.

2005년 1월25일 설립되어 2006년 6월5일 국내 제3의 정기항공사로 취항한 제주항공은 2007년부터 수익성 확보 차원의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을 추진했다. 연내에 준비를 마치고 2008년 창립 3주년에 맞춰 국제선에 뛰어든다는 계획이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국 대신 일본을 첫 국제선 취항지역으로 검토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여행이 늘고 있었다. 또한 조만간 항공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일본 주요도시 외에 경쟁력 있는 지방노선을 적극 개발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제주항공은 2008년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을 위한 예행연습을 2007년에 진행하기로 했다. 2007년 초 일본 최대 여행사 JTB로부터 부산과 제주 여행을 희망하는 일본인 단체여행객을 위한 부산∼기타큐슈(北九州) 노선의 전세편 취항을 요청받고, 2월 말 처음으로 정부에 국제선 취항을 신청했다. 기타규슈시는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현(福岡縣)에 있는 도시로 나중에 첫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 도시이기도 했다. 당시 제주항공 경영진은 전세편 첫 신청을 하면서 쉽게 허가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정부의 진의를 떠보기 위한 테스트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3월 초 건설교통부는 ‘신생 K-LCC의 국제선 취항요건을 강화해 무분별한 취항을 막을 방침’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항공법에는 K-LCC의 국제선 취항을 막는 특별한 제한규정은 없었다. 다만 부정기항공사는 국내선, 정기항공사는 국제선과 국내선을 모두 운항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당시 항공법에 따라 한성항공은 조건을 바꿔 정기항공사 면허를 추가 발급받는 대로 국제선 운항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고, 제주항공은 별다른 조건 없이 곧바로 국제선 운항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교부에서 내세운 “확실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취항허가를 내줄 경우 불의의 사고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근거는 신생 K-LCC에게 국제선 허가를 해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기존항공사의 논리와 다름없었다. 건교부는 기존항공사의 논리를 받아들였고, 제주항공은 취항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안전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 전세편 운항신청이 반려됐다.

제주항공의 일본 노선 전세편 운항허가 신청을 반려한 건교부는 이후 부랴부랴 후속대책을 세웠다. 일단 K-LCC의 경우 국내선 운항경험이 최소 3년 이상은 되어야 하고, 안전사고 또한 일정수준 이하여만 국제선 취항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세부규정을 2007년 안에 마련해서 소급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교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운항경험이 풍부하지만 신생 K-LCC의 경우 국내선에서도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라 국제선 운항을 엄격히 통제하는 규정을 마련해 시비가 일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은 가격경쟁이 치열하고 수년째 운임이 오르지 않는 국내선 만으로는 적자탈출이 요원해 2007년에 국제선 전세기 운항 등을 거쳐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선 취항을 준비하던 차에 경영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정부의 국제선 취항규정이 원안대로 결정될 경우 2009년 하반기나 되어야 가능해지는 바람에 속이 타들어갔다. 제주항공은 건교부의 불허 방침에 일본과 중국의 관광객을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국익 차원의 인바운드 전세편으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2007년 3월9일 “일본이나 중국의 도시들은 물론 많은 국내 여행사에서 전세기 취항을 요청하고 있다”며 “일본의 5월 황금연휴에 제주를 찾을 일본관광객을 겨냥해 조만간 운항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3월23일 건교부는 제주항공의 국제선 전세기 취항 시도와 관련해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건교부는 "신생항공사의 국내선 운항경험이 최소 3년 이상 돼야 국제선 취항을 허가할 방침임을 이미 밝혔다"면서 "이는 정기노선 뿐만 아니라 부정기 전세편에도 모두 해당된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또 "특히 제주항공은 이제 출범한지 10개월 정도밖에 안 된 데다 안전성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국제선 부정기편 취항의 경우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제주항공이 주장하고 있지만 전세편 또한 국제선을 뛰는 점에서는 똑같아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함부로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이 같은 건교부의 방침에 반발하며 행정소송 등 다양한 대응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흘렸다. 2007년 5월9일 “건교부가 국제선 취항조건으로 내건 '3년 이상 국내선 운항경험'은 법률적 근거가 없는 만큼 행정소송을 해서라도 국제선을 띄우는 시점을 앞당기겠다”면서 "설립당시 국제선에 취항할 수 있는 안전규정을 충족한데다 건교부가 지금 관련규정을 만든 뒤 소급 적용하려는 것은 법률불소급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항변했다. 법률불소급원칙은 법은 그 시행 이후에 성립하는 사실에 대하여만 효력을 발하고,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는 소급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일단 유효하게 취득한 권리나 적법하게 성립한 행위를 사후에 제정된 법으로 침해·박탈 또는 처벌할 수 있다면, 사회의 안정이 깨지고 국민생활이 불안하게 되므로 기득권의 존중 또는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법률의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정부 강경발언은 단지 여론 호소를 위한 용도일 뿐이었다. 억울한 심경을 호소하기 위한 말잔치였을 뿐 실제 소송까지는 검토조차 못했다. 신생항공사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항공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분야에 비해 규제가 많은 철저한 허가산업인지라 주무부처의 구두지침이라 할지라도 항공사에게는 천명(天命)과 다름없었다. 3년 정도 국내선 운항을 한 뒤에 이야기하자는 건교부 입장에 대해 제주항공은 "그처럼 안전운항이 의심되면 제주도도 못 가게 해야지, 국내선 승객은 괜찮고 국제선 승객은 안 된다는 논리가 말이 되냐"며 "건교부가 안전문제를 철저하게 심사해 정기항공사 운항허가를 내주고는 이제 와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제주도는 되고 동쪽으로 날아가는 오사카는 안 된다는 건 상식 밖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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