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당신이 있어 빛나는 시절이었습니다 

여고시절 설렘과 추억들, 그리고 그리움
좋은 스승에 감사...소중한 과거가 현재의 원동력
2023-05-10 15:11:45
조현주 박사


여고생이 되어 교정을 밟았던 그 때. 교문을 들어서며 느꼈던 설렘을 그려본다.
당신이 있어 빛나는 시절, 눈부신 5월의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시간들.

세일러복 블라우스와 깔끔한 블랙 재킷, 주름치마 교복이 예뻤고 인근 남학생들이 선망했던 수많은 첫사랑, 짝사랑이 다니던 곳. 부드러운 미소의 교장 수녀님과 수업을 하는 담임 수녀님이 계셨고 주중엔 미사 시간이 있었던. 기념하는 날엔 성모님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해 주던 카톨릭 학교였다. 

당시 다른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무서운 채벌도 없었고 교내 합창대회와 축제를 즐길 수 있었던, 조금은 특별한 배움의 장이었다. 봄이면 교정 가득 목련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매년 5월이면 전교생이 촛불을 들고 빛으로 행렬하며 그 때의 의미를 만들어 냈다.

가을이면 부스럭 거리는 낙엽을 밟았고 그 낙엽을 주워 수업시간 교탁에 깔았다.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첫사랑”을 외치면 선생님은 어쩔 수 없겠다는 듯 첫사랑 추억을 들려주시곤 했다.

겨울이면 검은색 교복위에 떨어지던 하얀 눈송이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고 나무 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꽃은 시린 가지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 쌓여 있었다. 학교 앞 <무진장 떡볶이>는 각종 사리를 넣어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맛집이었고 그 매콤함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중독성이 있었다.

순수함과 풋풋함이 가득했던 학교의 풍광과 학교 앞 맛집들. 그보다 더욱 마음 깊숙이 그리워하며 지냈던 한 분이 더 없이 보고 싶은 날. 이민자 수녀님. 조용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다 문득 이렇게 연락을 미루다가는 영영 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수녀님이 소속된 수도회에 전화를 드렸고 전화를 받으신 분은 다행히 수녀님을 잘 알고 계셔 바로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수녀님과 통화를 했다. 와. 얼마만인가. 30년 만이다. 강산이 3번 바뀐다는 시간이다. 

지금 생각해도 수녀님은 욕심이 많았던 담임 선생님이셨다. 수녀님의 욕심만큼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넘치는 애정 주시며 얼마나 많은 사랑을 표현하셨는지. 학교의 나뭇잎을 주워 한 장 한 장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서 나누어 주셨고, 지인에게 케이크를 선물 받은 날, 그 케익을 40여개 조각으로 잘라 포크에 찍어 일일이 한명씩 입에 넣어 주셨다.

그 달콤함을 기다리던 우리. 입안 가득 침샘을 자극했던 그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이 지금까지도 떠오르는 건 수녀님과의 추억이 그만큼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며 쓰는 깜지 숙제에는 ‘Honesty is the best policy’를 맨 앞에 쓰게 하고 그 다음 장에는 ‘내가 그냥 보내버린 오늘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고 쓰게 하시며 정신 교육도 톡톡히 시켜 주셨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 번호 순서대로 개인 상담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뭐가 그리 힘들었다고 상담을 하며 친구들은 담임 수녀님 앞에서 눈이 벌게진 정도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 또한 얼마나 울었던가. 또 방학 때면 잘 지내고 오라며 꼭 안아 주셨다. 그런데 누군가를 안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어깨를 내밀어 수녀님을 안았더니 수녀님은 “안을 때 이렇게 꼭 안는 거야”라며 내 허리를 확 잡아 당기셨다. 순간 많이 놀랐지만 수녀님의 포근함과 따뜻한 온기가 참 좋았다.  

감수성 예민했던 그 시기, 작은 풀꽃의 아름다움까지 전해 주시던 수녀님이 계셨기에 아마 난 험난한 사춘기를 겪지 않고도 시간을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매일 똑같은 시간 등교를 해야 하는 학교가 철창 같기도 했고, 때론 철장 안에 갇힌 듯 답답해하며 벗어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시기였는데, 그 때는 그걸 몰랐다.

통화를 하고 얼마 지난 뒤 수녀님을 뵈러 가는 날, 얼마나 설렜는지 전날 늦게 잠을 청했음에도 일찍 일어났다. 같은 반이었던, 지금도 변함없는 친구 소혜와 함께 수녀님이 계신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우린 여고시절 나눠 먹었던 케이크를 생각하며 백화점에서 장미꽃이 한 가득 장식된 사랑스러운 핑크색 케이크를 샀고, 그 때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전해드리고 싶었다. 

드디어 수녀님은 눈앞에서 뵈었다. 정말 하나도 변한 게 없는 듯, 그 모습 그대로셨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수녀님은 그 때의 우리들을 기억하고 계셨다. 기억을 더듬어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다보니 그 때로 돌아간 듯 묘한 기분이 들면서 자꾸 웃음이 났다. 

헤어질 시간. 아쉬움 끝에 수녀님은 우리를 성당으로 안내한 후 성모송을 하고 함께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세상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어 미래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마 그 시절, 꿈꿀 수 있도록 해주었던 환경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꿋꿋이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좋은 스승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곧 스승의 날이다. 이번엔 이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여행을 또다시 수녀님과 함께 하고자 한다. 이팔청춘, 한없이 순수했던, 깨끗하고 맑았던 그 시절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눈부신 5월의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그때가 진정 그립다. 

글. 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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