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스마트팜] 서울대 출신 한승욱·이지현 부부는 왜 농촌으로 갔나

‘파머포유’ 한승욱(37) · 이지현(33) /충북괴산
서울대 출신 새내기 부부의 귀농일기
김철호 기자 2020-01-20 10:43:09
사진=파머포유 한승욱·이지현 부부
사진=파머포유 한승욱·이지현 부부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가 ‘농부’가 되겠다며 농촌으로 남편을 따라나섰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국책연구소의 연구원 생활을 접고, 과감하게 귀농을 선택한 것이다. 남편도 조경학 인테리어 분야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는 전문가였다. 순천만 정원 아이디어 설계부문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재원이었다. 이들 부부는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과 박동혁처럼 농촌의 계몽을 꿈꾸는 ‘농촌 문화혁명가’로 변모하고있다.

농촌으로 간 것,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

충북 괴산군으로 귀농한 한승욱(37)·이지현(33) 씨 부부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일을 내려놓았다. 승욱 씨는 서울시립대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조경학 석사, 조경 회사 근무 등 13년을 조경 관련 일을 해온 조경설계 디자이너였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총 72개의 국내외 제출작 중 ‘캔을 재활용한 정원 디자인’ 제품을 제출해 테마정원 공모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다른 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일찍이조경설계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아내 지현 씨도 조경학 전문가였다. 지현 씨는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조경학 석사를 마친 뒤 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1년 근무했다. 미학과는 미(美)와 예술(藝術)과 관련된 현상을 인문학적 성찰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그녀는 인문학적 소양에다 조경이라는 예술적 성향까지 갖춘 인재였다.

승욱 씨는 설계로, 지현 씨는 미학이론 비평으로 자기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경은 이들 부부가 좋아하던 공부, 좋아하던 일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왜 귀농을 결심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지금을 제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했고 실력도 빼어나 남부러울 것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행하다고 느꼈다. 결혼 1년 만에 지현 씨가 임신했지만, 4개월 만에 유산됐다. 더 이상 그들의 삶과 시간을, 회사의 스케줄과 필요에 맞춰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곧바로 귀농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 부부는 서울집 전세를 뺀 돈으로 우선 농사 지을 땅을 구입했다. 그러나 집까지 마련할 자금이 준비되지 않아 괴산 지현 씨 친정에서 ‘더부살이 신세’를 지기로 했다.ㅡ농사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소중한 지적 자산을 농촌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당신을 위한 농부’라는 의미를 지닌 ‘파머포유(Farmer4U)’라는 농장 이름만 지었다.

사진=파머포유 표고버섯하우스 내관.
사진=파머포유 표고버섯하우스 내관.


농업의 시작, 그 시작은 표고버섯​


재배작목을 선택하기 위해 나름대로 기준을 마련했다. 첫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돈이라도 매달 수입이 나오는 작목일 것. 둘째, 자연재해가 적은 사계절 시설재배 작물일 것. 셋째, 직거래가 잘 되고 수요가 많을 것. 그 조건에 비교적 근접한 작물은 표고버섯이었다.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로 결정하고, 이제는 공부해야 했다. 표고버섯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어려운 작물 중 하나였다. 괴산군에서 표고버섯으로 자리잡은 대표적 농가 세 곳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학습했다. 다양한 변수가 있는 만큼 농가마다 재배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정리하고, 그 중 한 농가에서 1개월간 무급으로 일을 도와주며 농가 경영 및 농업을 전반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배지 생산 과정도 분석했다. 2개월간 농가 배지공장에서 시급제로 일을 했다. 버섯 배지의 배합, 밀봉, 살균 작업에 대한 내용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기회도 가졌다. 이런 일련의 배움을 토대로 생산된 버섯을 지금은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으며, 현재 100여 명의 고객들이 구입하고 있다.

귀농·귀촌지원센터 등을 방문해 얻은 정보를 통해 쉽게 귀농자금을 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려오니 현실은 냉엄했다.

첫해에는 생활비가 없어 아내 지현 씨는 오후 시간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농사에만 집중하지 못해 품질도 버섯마다 차이가 있었고, 체계적으로 돌볼 수가 없었다. 농부로써 삶의 균형을 맞춰 살고 싶어 내려왔는데 이도저도 아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승욱 씨가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되면서 오롯이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승욱 씨는 “청년창업농 지원을 받은 후로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버섯하우스에 있으면서 점점 좋은 상품을 키워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농사를 도와가며 SNS와 고객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사진=파머포유 체험농장 외관.
사진=파머포유 체험농장 외관.


청년들과 협업으로 새로운 농촌을 건설하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를 찾으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괴산군의 젊은 농부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협업의 농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승욱 씨 부부는 평소 기획 업무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고, 재배기술은 있지만 규모화 농업을 하지 못하는 농가와 협업을 원했다.

인근으로 귀농한 젊은 부부 농가와 함께 ‘농사 협업’을 시작했다. 공동으로 일하고, 수익이 나오면 똑같이 나누기로 했다. 서로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공동생산, 공동분배 경영을 했다. 젊은 농부끼리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귀농이라는 한 굴레 안에서 움직이며 정착에 도움이 되자는 취지였다. 서로의 장점을 융·복합한 것이다. 승욱 씨 부부는 내년부터 후계농 2개 농가와 귀농한 2개 농가 등 4개 농가와 협업으로 스마트팜을 활용해 고추 등을 재배할 예정이다. 괴산군이 3년 동안 무상으로 스마트 농법에 필요한 땅을 임대해주고, 시설을 설치해줄 예정이다.

이들 부부는 표고버섯을 활용한 체험은 물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강연, 공연등)을 만들어 농촌에도 문화가 있는 곳으로 변모시키겠다는 꿈도 있다. 문화공간이면서 동시에 로컬생산물 직판매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지현 씨는 현재 농촌관련 체험은 물론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며 농촌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농촌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생산을 통해 지역민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면서, 기존의 체험농장들과는 조금 다른 ‘농업+인문학’의 접근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아름답고 이야기가 있는 농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실현수단으로 농업과 가공 및 판매, 농가체험, 유통 등을 통한 6차 산업을 시도할 계획이다. 농업+판매(SNS, 가공), 농업+문화공간(조경), 농업+유통 구조를 만들 생각이다.

첫 번째, 농업+판매(SNS)다. 현재 재배중인 버섯과 추가 예정 작물인 산딸기를 기반으로 생산 제품 가공을 통한 판로 개척으로 농산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킬 예정이다. 두 번째, 농업+농장체험(조경)이다. 농어촌이 지니고 있는 문화 경관(논, 밭, 하우스 등)에 체험요소를 가미한 형태의 마케팅 전략을 마련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자란 작물을 활용한 식음료 제공과 문화체험을 통해 농장방문객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도 편하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세 번째, 농업+유통허브 매장이다. 고령화된 농가를 위해 직판 구조를 만들어지역 상생체계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혼자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께 하려는 농부 친구들이 있고 청년 농부를 믿고 지원해주는 정부가 있어 이 일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농촌에도 음악과 문화가 있는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2030세대를 위한 귀농정책 ‘부족’

그러나 이들 부부는 현재의 청년층 대상 귀농정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내려와 미래의 농촌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 조성을 해줘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들에게 돈은 지원해주지만, 귀농과 관련된 정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귀농·귀촌 프로그램은 대부분 4050세대 위주로 짜여져 있습니다. 2030 세대와 4050세대가 살아온 과정부터 다르고, 사회 또는 경제적 배경이 차이가 있는데, 청년들을 위한 진정한 귀농정책은 미흡하죠. 2030세대는 ‘귀농=생존’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4050세대는 젊은 세대에 비해 경험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풍요해추구하는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2030세대는 기반도 없고, 판로도 없으며, 농촌에서 아이를 낳고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2030세대를 위한 귀농정보가 거의 없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는 11월, 청년농부들은 외부인을 초청해 괴산에서 ‘2030 귀농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승욱 씨 부부는 “귀농·귀촌 교육을 아주 많이 받았지만, 우리 세대를 위한 정보는 별로 없었고, 심지어 농촌에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4-H회 모임이 있다는 것도 귀농을 하고 1년 뒤에 알았습니다.”라며 “단순하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돈만 지원해줄 것이 아니라 4-H와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청년들끼리 소통을 할 수있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4-H회는 농업구조와 농촌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청소년 민간단체다. 4-H를 통해 2030 후계농과 연계해 농촌 계몽이나 2030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등 새로운 농촌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꿈이다.

“청년농업인은 이제 단순한 농업 단체가 아닙니다. 60대 이상 농가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현 상황에서 저희는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부부는 정부가 생산만을 위한 농업이 아니라, 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와 살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철호 기자 news@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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