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파머] 박성민 "스마트팜이 농사돕긴 하지만 모든것 다해주진 않아"

'박성민 농가' 박성민 (42 경남 거창)
부족한 경험에 숨을 불어넣는 빅데이터
박노중 기자 2020-01-20 10:52:02
사진= '박성민 농가' 대표
사진= '박성민 농가' 대표

‘스마트 팜’ 하면 스마트폰으로 원격제어를 하면서 편하게 농사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만만치 않다. 여러 기계 장치가 일의 효율을 높이고 인력 낭비를 막아 주기는 해도, 농사는 결국 농부의 일이다. 현장에서 농부의 오감과 기계 장치가 호흡을 맞춰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기계도 작물도 충분히 파악했을 때 스마트 팜은 진정한 빛을 발한다.

사진-파프리카 온실
사진-파프리카 온실


농사의 밑천이 된 꼼꼼한 자료 수집

거창의 파프리카 온실에서 박성민 대표를 만났다. 박대표는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가 2005년 아버지를 도와 파프리카 농사를 시작했다. 진주와 거창에 온실이 있는데, 박 대표는 거창 온실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10여 년 전 네덜란드의 온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환경 제어 컴퓨터’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다시 놀랐다. 이후 그는 ‘자료화’를 시작했다. 2011년 거창 유리온실을 시작할 때부터 생육데이터를 기록했다고 하니, ‘스마트 팜’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데이터를 모으고 있던 셈이다. 기존 농가들도 영농일지를 쓴다.

하지만 영농일지는 생육데이터를 기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기처럼 줄글로 적혀 있어서, 작년 이맘때와 지금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수치를 비교하거나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박 대표는 직접 작물의 상태를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박 대표가 보여준 두툼한 문서철의 표지를 넘기니 맨위에 ‘개화 위치’ ‘착과 위치’ ‘엽폭’ ‘엽장’ 등 작물의 생육상태를 파악하는 13개 지표가 나열돼 있었다. 각각 지표들을 매주 측정해 이 문서철에 기록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기후데이터 30년 치를 주 단위로 분석해 온도와 광량에 대해 자신만의 자료를 만들었다. 이렇듯 세세하게 자료를 구축한 이유를 묻자 박 대표는 담담하게 답했다.

“경험이 없으니까요. 농사와 작물에 대해 공부를 한거죠.”

실제로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오신 어르신들에 비해 그의 농사 경험은 미천했다. 그런 상황에서 귀로만 배우는 노하우는 그의 것이 되지 못했다. 부족한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작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지금 그의 재산이 됐다.


빅데이터 활용이란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박 대표의 목표는 ‘같은 기간에 더 생산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파프리카는 1주일에 한 마디씩자란다. 1년이 52주이므로 기본적으로는 1년 새 52마디 자란다. 그런데 어떤 해에는 1년에 52마디가 채 못 자라고, 어떤 해에는 52마디보다 더 자란다. ‘어떻게 하면 52마디보다 더 자라게 할 수 있을까’가 박 대표의 고민이자 숙제다.

“날이 좋을 때는 모든 농장 모든 온실이 다 잘 돼요. 그런데 날이 안 좋을 때면 어떤 농가는 잘 되고 어떤 농가는 잘 안 되죠. 날이 안 좋을 때도 잘 되는 농가가 되는 게 ‘리스크 관리’입니다. 성공 노하우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단순히 의욕만으로는 안 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박 대표의 ‘리스크 관리’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온실에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데이터’가 된 덕이다. 박 대표가 말한 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비결이다. 그렇게 철저히 관리된 파프리카는 공동선별장을 거쳐 이마트, 탑마트, 도매시장 등으로 유통될 뿐만 아니라 일본에 수출되기도 한다.

박 대표는 ‘스마트 팜’ 하면 ‘원격제어’를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졌다. 원격제어는 본격적인 스마트 팜이라기보다는 통신설비에 가깝다는견해다. 작물과 환경을 확인하는 데는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 농사는 온실에 직접 들어가야만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농사에 정말로 유용한 정보와 기능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진정한 스마트 팜이라는 말이다.

그는 가장 최근에 도입한 장치인 ‘배지 함수율 측정기’가 매우 유용하다며 예로 들었다. ‘배지’는 수경재배를 할 때 작물의 뿌리를 지탱하는 지지체이며, 양액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배지 함수율 측정기’는 쉽게 말해 ‘배지의 무게를 측정하는 장치’다. 그런데 박 대표 농장의 측정기는 단순히 무게만 측정하는 게아니다.

24시간 동안 배지의 무게가 어떻게 변화 는지 그래프를 보여준다.이를 통해 ‘작물이 수분을 흡수했는지’, ‘충분히 흡수 했으면 물을 더 줄 필요가 없는 건지’, 혹은 ‘언제 얼마나 줘야 할지’ 등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 장치를 활용하려면 그래프를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장치가 있어도 쓸수가 없으면 무용지물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마트팜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아는 만큼 써먹는 스마트 팜

귀농 또는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근 스마트 팜이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 팜이 어려운 농사를 도와주면 귀농 또는 귀촌이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먼저 ‘귀농’과 ‘귀촌’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에 집을 짓고 살면서 텃밭이나 가꾸고 싶다면 그것은 ‘귀촌’이다. 반면 ‘귀농’은 차원이 다르다. ‘귀농’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농사를 선택하는 것, 즉 ‘전업농’이 되는 일이다.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이 농촌에 온 뒤 농사를 배우면 낭패를 본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어쨌든 적지않은 자금, 노력, 시간을 들여야 한다. 무작정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이킬 일이 아니다.

“스마트 팜이 농사를 도와주긴 하지만, 모든 것을 다해주지는 않습니다. 기계를 이용해서 온실 환경을 조절해야 하는데, 저 작물이 20도를 원하는지 25도를 원하는지 농사를 처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어도, 어느 정도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있지요. 그것을 할 수 있을 때 스마트팜의 의미가 있습니다.”

농사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1~2년 전부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또한, 어느 지역으로 귀농할지 정하는 것보다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박 대표의 조언이다.

예를 들어 파프리카 농사를 짓고 싶다면, 주변에 파프리카 단지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주변 농가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고, 공동선별장 같은 인프라도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자가선별을 하고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막연한 생각은 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해야 하는데, 스마트 팜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요. 설비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 환경 제어 컴퓨터, 데이터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농사의 본질은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일이다. 이과정에서 농부는 리스크를 관리함으로써 작물을 더 잘 키울 수 있다. 이때 ICT와 빅데이터는 아주 유용한 도구다. 다만 작물에 대해 잘 알아야 스마트 팜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박 대표가 전하고픈 결론이다. 스마트 팜을 도입하려는 사람이나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귀 기울여야 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성공 비법이다. 거창파프리카영농조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박노중 기자 news@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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