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스마트팜] ‘복자네 배과수원’ 장준걸 "과수 수익창출 쉬운 작목이라 선택"

‘복자네 배과수원’ 장준걸(39 충남아산)
박노중 기자 2020-01-28 10:20:00
[스마트에프앤=박노중 기자] 장준걸(39) 씨는 농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농촌에서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것에 경외감까지 느꼈다.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자신 없었지만, 농부를 보면 부러웠다. 그러던 차에 농촌의 현실을 직접 알기 위해 농촌으로 뛰어들었다. 농업 관련 단체인 ‘한살림협동조합’에서 실무자로 보고 느꼈던 것을 직접 농부로 변신해 알아보고 싶었다.

농업 관련 단체 실무자에서 농부로 변신

한살림협동조합은 농산품을 직접 재배하는 생산자들과, 이들의 마음이 담긴 생산물을 이해하고 믿으며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결성한 생활협동조합이다. 준걸 씨는 이곳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시민운동을 하다 알게 된 아내 김복자(44) 씨와 헤어지게 된 것이다. 사소한 의견 차이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쌓였다. 오랫동안 누적된 감정을 참지 못해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부부 사이에는 1남 1녀를 두었고, 자녀들은 아내가 양육하기로 했다.

이혼 후 준걸 씨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았다. 그때 친했던 지인 부부가 귀농해 강원도 원주에서 생활하고 있어, 가끔 그곳에 가 일을 도와주곤 했다. 이후 지인 부부는 충남 아산으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콩나물공장 책임자로 일했다. 혼자가 된 준걸 씨는 서울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혼자였기 때문에 연고가 없는 아산에 도 편한 마음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곳 콩나물공장에서 2014년 4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산에서 귀촌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준걸 씨의 귀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충북 진천으로 귀촌한 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당시 아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서울 반지하에서 살고 있어 태어날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다. 넓은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것이 진천으로 내려가 살게 된 계기였고,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퇴사해 2009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5년 만에 두번째 귀촌을 하게 되면서 콩나물공장, 곰탕 만드는 곳, 배지공장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정신없이 일하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귀촌을 통해 농촌의 현실이나 농사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식품의 원재료 생산부터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 요소가 해당 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시스템인 HACCP 구조설계를 배웠다.

과채류 가공 및 곰탕류의 생산에 참여하면서 농산물 가공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및 실무도 익혔다.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2년. 귀촌으로 농업의 기초는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고, 귀농을 통해 좀 더 농업을 이해하고 싶었다. 귀농을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내 복자 씨와 연결됐고 같이 귀농을 하자고 제안했다. 귀농이 미끼(?)였을까? 아무튼, 이들 부부를 재결합하게 만든 ‘1등 공신’은 귀농이었다. 2015년 12월 이들 부부는 아들, 딸 모두 참석한 가운데 가족회의를 열고, 전 가족이 귀농을 결정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귀농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인 딸과 5학년인 아들은 농촌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하루종일 부부가 배 과수원에서 일해도 남매가 알아서 밥도 잘 챙겨 먹는다. 시골생활이 두 남매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농업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 농업 전환

준걸 씨는 한살림협동조합에 근무하면서 농업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아산으로 귀촌 후 직접적인 농사일을 하면서 농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과수농가를 하고 싶어 배 농사를 하게 되었다.

“초기 자본을 넉넉하게 갖고 시작한 귀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못한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열심히 일해도 귀농 전에 받았던 연봉과 비교하면 많이 적었죠. 하지만 실제 귀농을 창업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청년 귀농자가 생산 · 가공 · 판매의 다양한 판로확보를 통해 소자본 농업경영의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과수는 수익창출이 쉬운 작목이기 때문에 조기에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준걸 씨는 처음에는 토마토 농사를 도왔다. 웅크리면서 하는 밭일이 너무 힘들었다. 일손을 도우며 체험했던 서서 할 수 있는 배 농사가 더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해 재배작물로 정했다.

그는 첫해의 매출액이 적다고 하더라도 매출을 성장시킬 방안을 찾고,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하면 경영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사업 경영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각종 혜택에 기대해 판매하는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어 지속 가능한 농업경영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준걸 씨는 지적한다.

지역 농민들과의 관계 형성에 귀농 전 귀촌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귀농 ·귀촌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맺어진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농촌의 문화와 농업의 기초지식을 얻었다. 그는 귀농 · 귀촌 노하우로 귀농보다는 귀촌을 통해 먼저 농촌의 문화를 접하라고 권한다.

“당장 귀농하는 것은 승계농이 아닌 이상 어려움이 많고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합니다. 농사기술에 대한 자문과 지도를 해줄 수 있는 멘토를 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을 중심으로 귀농을 선택하고, 이후에 본인이농사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후 신품종이나 새로운 작물을 선택하는 것을추천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예비 귀농 · 귀촌인들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계획→실행→평가 과정... 배 농사에도 적용

아내 복자 씨는 여성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성매매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해주기 위한 단체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을 2004년 만든 창립 멤버다. 부부가 시민단체에서 일해서인지, 토론과 평가를 자주 했다.

평소 이들은 계획, 실행, 평가의 과정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농사도 마찬가지였다. 1년 평가를 진행하고 다음 해에 올해의 평가를 반영해 영농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사짓고 난 뒤 어떤 부분이 힘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좋지만, 인건비를 많이 들였을 때, 사람들에 대한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판로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홍보를 어떻게 해야 잘 팔릴 것인지 고민하고, 평가하고, 이를 반영해 다음 해에는 개선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됐다. 이렇게해서 나온 작품이 ‘배말랭이’였다. 배를 말랭이로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비교적신선한 아이디어였다. 배말랭이를 만들어 판매한 뒤 또다시 평가했다. 결론은 ‘생산을 더 늘리자’였다.

농사 첫해, 수확한 배가 다 팔릴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남았다. 이 배를 어떻게다 처리할까, 고민했다. 저장창고에 넣으면 4~5월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그 방법을 몰라 12월까지 다 팔아야 했다. 12월까지 다 팔기는 불가능해 배즙, 배잼, 배말랭이를 만들었다. 특히 배말랭이를 간식용으로 만들어 학교급식이나 술안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품성이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었다.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배 한 가지 만으로 평생 농사지을 수 있을까? 부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배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배 농사에서 수익이 별로 안 난다고 농사를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았다. 토론을 거친 끝에 가공을 확대하자는 의견에 접근했다. 이렇게 ‘배말랭이’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6차 산업 청년창업 사업모델 공모전에서 배말랭이를 활용한 가공상품 개발을 아이디어로 제시해 상을 받기도 했다.

“농산물 원물 시장에서만 성장하는 방안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만 판매하면 소득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재배작목의 특· 장점을 살리고, 2·3차 산업과 접목을 통한 부가가치 증대 방안을 고민한 것이배말랭이 사업이었죠.”

작년부터 배말랭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입이 더 늘어났다. 올해는 배말랭이 시설설비지원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제조에 쓸 수 있는 시설 장비도 지원받게 되었다.

시민운동가에서 생활인으로만 살아가 아쉬워

준걸 씨 부부는 배 농사에 농약을 많이 뿌린다는 것을 알았다. 준걸 씨가 한살림협동조합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먹을 음식에 농약을 많이 쓰기는 싫었다. 수확량이 적어도 친환경으로 배를 재배하고 싶었다. 올해는 배를 수확하면 대부분 한살림협동조합에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때문에 ‘복자네 배과수원’은 친환경으로재배할 수밖에 없다.

크고 예쁜 배를 키우기 위해 많은 농가에서 ‘지베렐린(gibberellin)’을 쓰고 있다. 이 물질은 배를 크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크고 예쁜 것에 숨어있는 인위적인 식물 생장의 조절은 건강하지 않은 식품이 될 수 있다. 비록 작고 볼품이 없을지언정 나무가 착실히 키운 배를 수확하고 싶었다. 우매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복자네는 ‘늘 착실한’ 수확을 원했다. 작지만 착실한 배를 키우고 싶었다.

준걸 씨 부부는 시민운동을 통해 농촌의 현실을 알리고, 더 잘 사는 농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농민운동에도 관심이 많지만, 생산자로서 일이 끊이지 않아 또 다른 생활인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벽 5시에 과수원으로 나와 오후 7시 30분까지 농장에서 일하는, 그야말로 농사 외에는 다른 일을 신경 쓸겨를이 없다.

“한살림에 있을 때 실무자로서 농업인들을 존경했는데, 실제 농사를 지으니까 너무 힘듭니다. 생계 부분이 있어 돈벌이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운동가로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실제로 생산자로서 비싸게 파는 것에만 관심이 쏠립니다. 또 다른 생활인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내도 시민단체를 했는데, 이제는 농사만 짓는 것도 벅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함께 잘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부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거라 기대하며 오늘도 과수원으로 향합니다.”



박노중 기자 news@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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