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지마라 외과의사 두번째 이야기

정우성 기자 2022-01-28 11:34:02
[스마트에프엔=정우성 기자] 진짜 의사가 되겠다고 선택한 외과였지만
그래서 자부심도 있었지만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이 사회를 향해
외과 의사는 다시 한번 외친다, “하지 마라, 외과 의사”


외과 의사로 살아오면서 실제로 겪었던 일을 담아 펴냈던〈하지마라 외과의사〉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 〈하지마라 외과의사〉의 작가 엄윤 원장이 아직도 다 못다 펼친 이야기를 담아 〈하지마라 외과의사 두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저자의 주장과 호소는 일관적이다. 의대 공부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전공의 수련 과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중노동인지,소위 ‘내외산소’ 필수 의료 진료과의 의료 수가가 얼마나 바닥인지,심평원이 얼마나 불합리한 기관인지,환자나 보호자 가운데 얼마나 진상이 많은지,국민의 의사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등.

저자는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생한 현장 체험에서 얻은 여러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이런 여러 에피소드 끝에 저자가 내놓은 결론 역시 일관적이다.

“하지 마라, 외과 의사!”

하지마라 외과의사 두 번째 이야기〉편에서도 저자 엄윤 원장은 의대에 가지 말라고 한다. 특히 외과는 선택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 제목 아래 ‘칼에 생명을 불어넣는 외과 의사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칼에 생명을 불어넣는’이란 말은, 우리 사회가 불합리하다고, 외과 의사가 할 짓이 아니라고, 외과를 선택한 것에 후회한다고 외치다가도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환자가 있으면 외과 의사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갈 것임을 말해준다.

엄윤 원장도 그랬고 그의 동료들도 그렇다. 바로 이런 소명감이 해마다 외과를 지망하는 수련의들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사명감과 소명감을 가진 의사들이 점점 줄고 있다. 언제까지 의대생들의, 수련의들의 사명감에만 문제 해결을 의존해야 하는 걸까? 언제나 이 의료 행정의 불합리가 개선될 수 있을까? 의사들은 언제까지 부조리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의사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과 증오심은 언제,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앞길은 막막해 보이지만 이 책의 저자 엄윤 원장의 끊임없는 외침은 앞길을 밝히는 작은 등대가 될 것이다. 〈하지마라 외과의사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의 공감도 우리나라 의료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할 중요한 힘이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마라 외과의사 두 번째 이야기〉에는 코로나 의료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진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엄윤 원장의 주장에 공감을 갖는 쟁쟁한 여러 의사의 추천사와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저자 엄윤 원장은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외과를 수료하고 충남에서 공중보건의를 지냈으며 서울 00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외과 개원의로 항문외과, 복강경외과, 내시경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의료와 의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언제였던가 한 번은 전신 상태가 매우 나쁜 환자의 수술을 내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어휴... 부장님, 이 환자를 어떻게 수술해요? 이렇게 general condition(전신 상태)이 나쁜데... 마취과장이 마취나 걸어 주겠어요?” “이 환자는 수술을 안 하고서는 좋아질 가능성이 없어요. 과장님, 무리라는 것은 알지만 수술 좀 해 주세요.” “그냥 큰 병원에 보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상태가 나쁜 환자를 어디서 받아주겠어요? 과장님이라면 제가 수술을 믿고 맡길 수 있어요. 좀 부탁드릴게요.” “수술한다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적을 수도 있어요, 워낙 전신 상태가 안 좋은 환자라...” 그 다음에 돌아온 이 말 한 마디에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 “괜찮아요. 그냥 살려서만 수술방 밖으로 내보내세요. 그 다음엔 제가 살릴게요...” ...... (개 멋진 새끼...)
--- p.44

“이 환자 돈도 별로 없다면서요...” “휴... 그럼 과장님이 투약 사유서를 써 주세요. 심평원에 내 볼게요...” “에휴... 알았어요. 제가 쓸게요.”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처방인데도 왜 이걸 공무원에게 사유서까지 써 가면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지... 사유서를 쓴다고 해도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99%인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유서를 썼다. ...... 이후로도 몇 장의 사유서를 더 써야만 했다. 그러나 그까짓 게 뭐 대수냐... 백 장, 천 장이라도 쓸 테니 환자만 깨어나준다면야... 반응이 없는 환자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깨어나준다면야 깨어나만 주시면 다 감당하겠습니다.’
--- p.61

“보호자가 포기하면 환자는 50% 사망하지만, 의사가 포기하면 환자는 100% 죽는다.” 외과 의사인 것이 뿌듯했다. ...... 환자가 퇴원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보험부장으로부터의 전화... “과장님, 지난 번 퇴원한 sepsis(패혈증) 환자요...” “예.” “그 환자 수술하실 때 쓰신 EEA(End-to End Anastomosis device)랑 GIA(Gastro-Intestinal Anastomosis device)요...” “예.” “삭감되었어요. 사유서 좀 써주세요...”
--- p.72

그 다음에는 동산병원에 가서 병실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 와이프가 산부인과 의사잖아요. 그래서 와이프 보고 니 같이 가자... 니 같이 가서 내가 병원장님 만나서 무릎 꿇을 테니까 니도 옆에서 같이 무릎 꿇고 부탁해라, 그라믄 병실 하나 내주지 않겠나... 이렇게 하고 무릎 꿇을 생각하고 갔는데 그래도 다행히 무릎은 안 꿇어도 되게 병원장님이 해 주셔서...” “아니, 그런 걸 왜 선생님이 하세요? 그건 행정적으로 처리를 해 줘야 하는 거지, 왜 민간인인 의사가 환자를 부탁하려고 무릎을 꿇어요?” “그렇긴 한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안 났어요. 그저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라고 나서 병실을 하나만 더 만들어 주세요, 하나만 더 만들어 주세요. 이래 하고 있는데... 입원한 임신부가...” “......” “자기는 큰 애하고 같이 있어야 되는데 왜 모자동실을 안 만들어 주냐고... 하...” “하아...” “사람이 육체적으로 힘든 거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우리 의사들은 몸 힘든 것은 잘 참도록 훈련이 된 사람들이잖아요. 그란데 내가 그럴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자기를 위해서 그래 하는데 내한테 그런 불평을 한다는 게...” 세상 어느 곳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불사조 진상 환자들은 항상 존재하나 보다.
--- p.90

“좋으시겠어요. 전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유럽...” “에이... 거짓말... 의사 선생님이 무슨...” “참...나... 의사면 유럽 여행 막 다니고 그런 줄 아세요?” “돈 많이 버시잖아요.” “헐... 의사가 돈을 많이 벌어요?” “그럼요... 하긴... 시간이 없어서 선생님은 여행은 힘드시겠다. 의사는 그 마누라와 애들만 좋다고 하잖아요. 의사는 돈 버느라 힘들고 마누라와 애들만 그 번 돈으로 놀러 다니고...” “참... 나... 저 지난 9월부터 시작해서 4개월 동안 집에 한 푼도 못 가져다 줬는데 무슨...” “에이... 거짓말...” “......” 말 해봤자 뭘 하랴? 이미 프레임은 씌워져 있고 뭐라고 말한들 믿지도 듣지도 않을 테니...
--- p.119

환자는 병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접수/수납 앞으로 왔다. “어르신.” “예...” “여기 바깥에 계단으로 가시면 박스가 잔뜩 쌓여 있거든요?” “......” “오늘이든 내일이든 어르신 시간될 때 그것 좀 치워주실래요?” “예?” “저희 병원에서 약이랑 수액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다가 버리는 박스가 좀 많아요. 그것 좀 치워주세요. 어르신 폐지 주우신다면서요?” “그래요...” “그럼 좀 치워주세요.” “예...” “치료비는 그걸로 받을게요.” “예?” “박스 치워준 값으로 받을게요.” “예?”

어리둥절해 한다. “어르신... 병원에서 환자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는 것도 불법이에요. 어르신이 넉넉지 않으시니 제가 깎아드리고 싶은데 그것도 나라에서 못하게 하는 환자 유인 행위가 되는 거라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대신에 어르신이 우리 병원 박스를 치워주시는 일을 해주시면 그 대가로 지불하는 거니까 불법이 아니잖아요. 어르신이 일을 해 주신 거니까...용역 같은 거예요.” “......” “약이랑 좌욕기랑 치핵방석 받아서 가시고 좀 나아지시면 시간 되실 때 계단에 있는 박스 좀 치워주세요.”
--- p.165

EB를 풀자 거즈도 없는 상처가 드러나는데 탈지면으로 붙여 놓아 솜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어렵게 어렵게 다 떼내고 나니 granulation tissue(육아 조직)으로 울퉁불퉁해진 상처에서 피와 진물로 뒤범벅된 이름 모를 액체가 흘러내려 미끌미끌하다. “이게 뭐예요? 뭘 바르신 거예요?” “달맞이꽃 기름...” “예? 뭐요?” “아, 달맞이꽃 기름, 달맞이꽃 기름... 몰러? 화기 빼는 데에는 달맞이꽃 기름이 좋잖어...” “아니, 무슨... 이게 뭔, 어후... 와... 이걸 어떻게 이렇게...우와...”

말문이 막혔다. “환자분, 이런 거 바르면 안돼요. 글구 병원에 왜 안 오셨어요? 제가 당분간은 매일매일 다니시면서 치료받으셔야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2주 동안이나 매일매일 어떻게 다녀? 그전에 보니께 뭐 별거 없더만... 그냥 약 쓱쓱 바르고 붕대 감고... 그걸로 끝이더만... 돈은 오지게 많이 받음시롱...”
--- p.210

하루는 일과가 끝나고 관사에 사는 공보의들끼리 읍내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팀플레이 중이었는데 의료원으로부터 모두에게 전화가 왔다. 응급실 진료를 커버해달라는 전화. “당직 선생님은요?” “당직 선생님이 응급 환자 이송에 동행을 하셔야 해서유...” “예? 웬 이송 동행? 무슨 환자인데요?” “교통사고 환자유.” “바이탈이 흔들리나요?” “아뉴” “그런데 왜요?” “군수님 아들이예유...” ‘헐...’ “천안 큰 병원으로 이송하는 거니께 당직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과장님들이 좀 들어오셔서 응급실 좀 봐주셔야겠슈...”

누구를 특정해서 응급실 독박을 서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공보의 모두가 들어가서 환자에 따라 자기 과목인 사람이 진료하기로 했다. 의료원에 들어와 보니 공무원들은 전원 출근해 있었다. 환자는 이미 이송을 갔는데 왜들 나와 있는 건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군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짓이지... 시골에서의 군수는 그 지역의 황제나 마찬가지였다.
--- p.252

전체 외과 수련의 T.O.의 절반밖에 못 채우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외과 전문의의 절반 넘게 ‘실질적’ 외과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외과 의사 전체 수의 25% 정도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럼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게 외과 의사가 적으면 이미 수술을 못해서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잘 돌아가잖아...”

그럴 것 같지? 외과 수술이야 이미 대학병원급에서 한 달 정도 밀리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진짜’ 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의 과부하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Buffering 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한글로 ‘완충’, ‘충격 흡수’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필요한 외과 수술의 갯수를 그나마 남아 있는 외과 의사들이 나눠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 p.270

일반적인 ‘보험과’ 의원들은 심평원과 국세청, 두 곳으로부터 실사를 받지만 ‘비보험과’인 성형외과는 심평원을 만날 일이 없이 국세청만 신경 쓰면 된다. 쉽게 말해 ‘삭감’을 당할 일이 없다. 의원, 또는 병원으로서는 심평원 실사를 받거나 부당한 ‘삭감’을 당할 일이 없으니 좋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서는 의료보험금을 지급할 일이 없으니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우리나라처럼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성형외과는 손님(? : 환자는 아니니까...)이 많게 마련이고 심평원이나 보험공단을 상대할 일도 없으니 성형외과가 인턴들의 지원 1순위인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 p.338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자나 수술 방법을 바꾸면 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 수술하다 말고 마취되고 배가 열려 있는 환자를 깨워서 “환자분, 이거 뗄까요, 말까요?” 이래야 하나? 의사가 의학적 과실이 아닌 일로 실형을 받아도 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법안도 생겼다. 개원했다가 파산해도 의사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한다. 세상 어느 직종에서 실형을 받았다고 생계 수단을 빼앗는 법이 있는가?
--- p.367



정우성 기자 wsj1234@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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