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입사한 서호정, 후계 레이스 출전
장녀 서민정은 또 휴직 중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의 차녀 호정 씨(30)가 1일, 계열사 오설록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호정 씨는 제품개발(PD)팀에 배치돼 제품 개발과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1995년생인 호정 씨는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은 했지만 그룹 안팎에서 존재감이 없던 그가 돌연 경영수업을 시작하면서, "후계 구도가 바뀐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호정 씨의 경영수업장이 된 오설록은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산하 프리미엄 차 브랜드로, 그룹 핵심인 화장품 사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 회장이 막내딸을 처음 내보낸 무대가 이곳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배치 이상의 의미가 읽힌다. 호텔경영학이라는 전공과 오설록 브랜드 철학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후계 수업의 시작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때 '1순위' 장녀, 지금은?
서 회장의 장녀 민정 씨(34)는 그간 후계 1순위로 꼽혔다. 코넬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글로벌 컨설팅사 근무 경력을 가진 그는 2017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 생산기술팀에서 근무하며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이후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며 글로벌 MBA 과정까지 마친 그는 경영팀으로 복귀, 럭셔리 브랜드 디비전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지분 면에서도 민정 씨는 지주사와 비상장 화장품 계열사의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렸고, 서 회장의 경영 철학과 브랜드 감각을 물려받은 차세대 리더로 기대를 모았다.
2020년, 보광창업투자 홍석준 회장의 장남과 결혼했던 민정 씨는 8개월 만에 파경 소식을 전했다. 가족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듬해 민정 씨는 장기 휴직을 신청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현재까지도 복귀는 오리무중이다.
사생활로 대외 이미지가 흔들린 가운데, 그룹 내 존재감 역시 줄어들었다. 장녀가 사실상 경영권 경쟁에서 이탈한 모양새가 되자, 재계에선 "차녀가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차녀로 무게 이동? ‘지분’이 움직였다
민정 씨가 휴직 중이던 2023년, 서 회장은 호정 씨에게 지주사 지분 2.5%에 해당하는 637억 원 규모 주식을 증여했다. 단일 증여로는 매우 큰 규모일 뿐 아니라, 그간 미미했던 호정 씨의 지분율을 단숨에 언니와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증여 주식 중 상당수가 전환우선주다. 지금은 의결권이 없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돼 경영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서 회장이 단순히 재산 분배 차원이 아니라, 차녀의 장기적 경영 참여와 지배력 확대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민정 씨의 '1인자' 입지는 흔들리고 있고, 호정 씨는 뒤늦게 등장했지만 빠르게 후계 구도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왜 차녀인가···달라진 아버지의 선택
서 회장은 왜 호정 씨에게 지분을 주고, 경영수업을 시작하게 했을까.
장녀의 이혼과 재혼설은 사생활 이슈를 넘어, 가문의 이미지와 '후계자 감'으로서의 정무적 감각 부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낳았다. 장기 휴직으로 경영수업의 연속성 단절과 복귀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서 회장이 대안을 모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호정 씨는 경영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서 회장 입장에선 백지에서 '수업'을 시작할 수 있고 호텔경영학 전공을 살릴 수 있게 테스트베드로서의 기회를 준 셈이다.
두 딸의 시험 무대
후계 구도는 '장녀 승계'로 단정하기 어렵게 됐다 . 두 딸 모두 시험대가 주어졌고 과거 차순위였던 인물이 현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서 회장의 은퇴가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지분과 실무 경험이라는 후계 조건은 맞춰지고 있다. 단,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론 후계자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지금부턴 '누가 더 많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후계는 실적과 지분의 승부다. 전략적 감각, 위기 대응 능력, 그리고 조직 내 신뢰 확보 등 경영 능력과 대외 이미지까지 누가 서 회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후계는 리셋됐고 경쟁은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