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추석 연휴 첫날 밤. 모처럼 모인 친척들과의 술자리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길게 이어진다. "한 잔 더!"라는 외침에 소주병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맥주와 전통주가 뒤이어 등장한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속은 부글거린다. 장거리 귀성길에 오르기도 벅차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면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절마다 편의점이나 약국 숙취해소제 코너는 새벽부터 불이 난 듯 붐빈다.
편의점 진열대가 말해주는 풍경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점주는 "추석, 설 같은 연휴엔 담배보다 숙취해소제가 더 빨리 동난다"고 귀띔한다. 전날 술자리에 함께한 직장인 김모 씨(37)는 "요즘은 술자리 끝나고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숙취해소제를 사 두는 게 습관이 됐다"며 "다음 날 회복 속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입에서는 이제 '어느 브랜드가 더 잘 듣느냐'가 술자리 다음 날 단골 화제가 됐다.
숙취해소제는 더 이상 '비슷비슷한 음료'가 아니다. 기업마다 수년간 연구를 거듭하면서 성분·제형·맛·섭취법이 크게 달라졌다. 3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전통 브랜드부터 글로벌 기술을 앞세운 신예 강자까지, 선택지는 해마다 넓어지고 있다.
검증된 '헛개 열매'부터 혁신 성분까지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건 단연 헛개 열매 기반 제품이다. HK이노엔 '컨디션'은 숙취해소제의 대명사다. 1990년대 초반부터 '술 마시기 전에 챙겨 마시는' 습관을 만든 장본인이다. 최근 임상에서는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 수치를 절반 가까이 낮춰준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믿고 마신다'는 인식이 강한 이유다.

비슷한 계열에서도 접근 방식은 다르다. 동아제약 '모닝케어'는 제약사 출신답게 종합 처방을 강조한다. 단순히 술 해소에 그치지 않고 간 건강·위 점막 보호까지 확장한 라인을 선보이며 '음주 건강 솔루션'으로 포지셔닝했다. 최근엔 환과 액상을 결합한 이중 제형까지 내놓아 '빠른 효과+지속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삼양사의 '상쾌환'은 한 발 더 나아가 글루타치온이라는 항산화 성분에 주목했다. 원래 미백·항노화 화장품에 많이 쓰이던 성분을 숙취해소에 적용한 것이다. 임상에서 아세트알데히드 수치를 50% 이상 낮춘 결과가 나오자 '숙취해소도 기능성 시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량감·맛까지 챙긴 제품들
숙취해소제가 꼭 '쓴맛 나는 약'일 필요는 없다. 롯데칠성 '깨수깡'은 제주산 원료와 탄산을 앞세워 젊은 소비자층을 파고들었다. 음료처럼 마시면서 해소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호응을 얻었다. 제주 감귤향이 더해져, 전통적인 약재 맛을 부담스러워하는 20~30대에게 입소문을 탔다. 편의점 판매 자료를 보면 명절 직후 깨수깡 매출은 평소보다 3~4배 급증한다.

한독 '레디큐'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갔다. 울금에서 추출한 커큐민을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기술로 가공해, 중국·베트남 등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젤리형 제품은 '핸드백에 넣어 다니는 숙취해소제'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신예 브랜드의 도전

새로운 이름도 눈에 띈다. 일본 네제스트가 개발한 '아사이치케아'는 출시 반년 만에 국내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핵심 원료는 'ACP-20'이라는 특허 성분으로, 비타민C가 오렌지의 20배에 달하는 인도 구즈베리(암라)에서 추출된다. 인체 시험에서 장시간 피로와 두통 완화 효과가 확인되며 '다음 날 오후까지 이어지는 숙취'를 잡아준다는 말이 퍼졌다.

종근당 '헛개땡큐골드'는 전통적 원료에 현대 기술을 덧입혔다. 헛개, 밀크시슬, 쌀눈 추출물을 결합해 알코올 분해 촉진·간 보호·흡수 지연을 동시에 노린다. 최근에는 노니 성분까지 넣은 라인을 확장하며 '간+장+에너지' 삼박자를 강조한다.
과학이 만든 '선택의 시대'···중요한 건 '지혜로운 음주'
2025년부터 본격 시행된 식약처 숙취해소 기능성 표시 제도는 시장 판도를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효과가 있나?" 하는 의심이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임상을 통과한 제품에만 '기능성 표시'를 붙일 수 있다. 소비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제품을 골라 마실 수 있고 기업들은 앞다퉈 데이터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떤 숙취해소제를 마시든, 과음을 반복하면 간은 결국 지쳐 무너진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가벼운 아침 식사, 적절한 휴식이 함께할 때 비로소 효과가 커진다는 것이다.
올해 추석도 술자리는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술자리를 후회로만 마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편의점 진열대에 줄지어 선 7가지 숙취해소제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과학과 생활이 만든 지혜의 산물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