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전략적 인사, 산업안전 패러다임 변화에 응답
82년생 중국인 저우유 공동대표 선임, 산업안전 강화 신호탄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오비맥주가 정부의 강화된 안전관리 정책에 대응하며 경영체제를 재편했다. 글로벌 주류기업 AB인베브 계열사인 오비맥주는 1일 1982년생 중국 국적의 저우유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기존 벨기에 출신 벤 베르하르트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한다.
인사의 핵심은 '안전'이다. 오비맥주는 "이재명정부의 강화된 산업안전 정책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생산·물류·안전 부문을 전담할 별도 대표 체제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전 정책에 발맞춘 전략적 인사
저우유 신임 대표는 그동안 생산, 구매, 물류를 총괄해온 인물이다. 이번에 안전관리까지 직접 맡으며 사실상 '최고안전경영책임자(CSO)'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반면 벤 베르하르트 대표는 기존대로 마케팅과 대외업무를 책임진다.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대외와 내부 운영을 이원화하는 구조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돈보다 생명'을 기치로 내걸고 산업재해 예방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언했다.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수립 등 굵직한 정책이 잇따라 추진됐다.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도 "후진적 산재를 영구 추방해야 한다"며 "올해가 산재 사망 근절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책 파급력은 크다. 곧 시행될 안전보건공시제는 기업들로 하여금 안전관리 체계, 투자 규모, 사고 현황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다. 사실상 기업 운영의 성패가 '안전관리 역량'에 달린 셈이다.
연이은 법적 리스크, 흔들리는 기업 신뢰
개편의 배경에는 정부 정책뿐 아니라 직면한 내우외환 상황도 자리한다. 올해 들어 오비맥주는 연속적인 법적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은 165억원 규모 관세포탈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 6월 벤 베르하르트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10명을 기소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FTA 할당관세제도를 악용해 157억원의 관세를 회피하고 해운사와 공모해 운송비를 축소 신고해 8억원을 추가 포탈한 혐의다. 퇴직자들이 설립한 명의상 업체 5개를 동원해 혜택을 독점한 수법까지 드러나면서 조직적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8월부터는 국세청 특별세무조사까지 겹쳤다. 서울지방국세청은 100여명을 투입해 관세포탈 사건과 연관된 세무위반 여부를 정밀 조사 중이다. 내부에서도 구매팀 임원이 납품업체로부터 3억6000만원 상당 상품권을 받고 회사 자금 2억31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등 윤리 리스크가 불거졌다.

소비자 신뢰도 흔들렸다. 국내 대형 주류업체 중 유일하게 중국산 맥아를 사용하면서도 제품 라벨에 원산지를 표기하지 않아 기만 논란에 휩싸였다. 2018년 이후 중국산 맥아 수입량이 급증했지만 경쟁사들은 모두 호주·캐나다산만 사용해 대비가 선명하다. 해외 시장에서는 '현지 원산지'를 강조하면서 한국에서는 중국산 표기를 회피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중 잣대 비판도 받았다.
모회사 AB인베브로의 과도한 배당도 논란을 키웠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오비맥주는 한국에서 벌어들인 순이익 1조7000억원보다 많은 1조8000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2024년에도 당기순이익 2411억원보다 많은 3328억원을 배당해 '국부 유출' 비판이 불거졌다.
외국계 기업도 로컬 규제에 긴장
이번 조치는 단순한 내부 인사 차원을 넘어, 외국계 기업이 한국의 정책 환경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AB인베브는 전 세계 15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맥주 그룹으로, 각국의 규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다.
공동대표 체제는 단순한 재편이 아니라, 산업안전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천명했다는 점은 다른 기업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 정책과 시장 환경이 동시에 요구하는 ‘안전 경영’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다. 오비맥주의 결정은 글로벌 기업조차 한국의 규제와 사회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