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금지 논의, 노동계 내부 균열까지
민노총·쿠팡노조·업계 입장 정면충돌

쿠팡 잠실 본사. 사진=연합뉴스
쿠팡 잠실 본사. 사진=연합뉴스

| 스마트에프엔 = 김선주 기자 | 국내 유통업계를 뒤흔드는 ‘새벽배송 금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제한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된 논의는, 이제 노동계 내부 갈등과 업계 전반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민노총 택배노조는 새벽배송 제한 제안을 두고 "노동자 건강권 확보가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장시간·심야노동이 기사들의 과로사와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며,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배송을 제한하거나 2교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심야 시간대 근무는 수면장애, 사고 위험 등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며 "과로사 방지를 위해서라도 일정 시간대 배송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새벽배송 전면 금지'라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노조는 "우리가 제시한 것은 ‘배송 제한’이지 서비스 중단이 아니다"며 "업계와 협의를 통해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와 소비자단체는 새벽배송 제한이 가져올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은 이미 20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생활 인프라로, 이를 일괄 제한하면 소비자 불편뿐 아니라 납품업체·농가 등 2·3차 산업까지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류센터의 냉장·냉동 품목 운영은 야간 체계로 짜여 있는데, 이를 낮으로 돌리면 설비·인력 재배치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택배노동자들은 "심야노동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벽 시간에 일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기사도 많다"며 일률적 금지보다는 선택제 근무나 교대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쿠팡노조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민노총 탈퇴 보복"

7일 쿠팡친구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민노총의 탈퇴 보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노총 산하에 있을 때는 이런 주장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우리 조합이 탈퇴하자마자 새벽배송 금지 논의가 등장한 것은 의도가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작정 금지를 밀어붙이면 수만 명 배송기사의 생계와 고용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노동권 보호를 빌미로 조합원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쿠팡노조는 정부와 사회적 대화기구에 자신들의 참여 보장과 공정한 논의 구조를 요구했다.

이번 사안을 두고 업계는 "논쟁의 본질은 '새벽배송'이라는 서비스가 아니라, 야간노동을 감당할 만큼의 구조적 보상과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느냐"에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유통학회 관계자는 "새벽배송은 소비자 중심의 유통혁신이었지만, 그 혁신의 뒷면에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가 공존해왔다"며 "노동시간 제한이 아니라 교대제 전환, 인력 확충, 수수료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 역시 "소비자 편익과 노동자 권익을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새벽배송 모델을 만들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논쟁은 '노동자의 생명권'과 '소비자의 생활권'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라는 가치 충돌로 귀결되고 있다. 정부는 택배·유통·노동계가 참여하는 후속 협의체를 열어 구체적인 시간대 조정과 보상 체계 개선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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