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시장
수수방관 나약한 시의원
보조금에 말문 닫은 시민단체

지난해 8월 경기 안성시의 중심을 관통하는 금석천에 두 차례 폐수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공교롭게 같은 달에 두 업체에서 연이어 발생한 사고로 지역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두 업체 중 한 곳인 A사에서는 강한 독성물질인 염화제이철 4~5t 가량이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안성시는 자체 조사결과 염화제이철을 보관하던 탱크공급 밸브가 폭염으로 훼손돼 발생한 사고로 파악했다.
그런데 다른 한 곳인 B사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시가 B사의 사고원인, 폐수성분, 유출량 등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고 규모와 성분이 비교적 드러난 A사와는 다르게, B사는 폐수유출 경위와 유출량도 산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더욱이 이 사고에 대한 안성시의 대응이 기가찬다. 관리·감독권을 두고 안성시와 경기도가 서로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하고 있어서다.
■안성시장···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나?
죄 없는 물고기(240kg)가 떼죽음을 당했고 주변 토양은 오염돼 언제 정상화될 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지자체장의 책임 있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
인근 지자체인 평택시는 지난해 1월 심각한 공장폐수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시장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주민들의 피해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사고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과 환경오염 원인자에게 손해배상 및 구상권까지 청구하는 방침 등의 조치를 취하며 책임 있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안성시장은 지금까지 뭘 했는가? 840t의 폐수가 수거됐고 방재작업 동원인력 520명, 장비 117대를 투입한 사건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인가? 여태껏 아무런 공식 입장도 없고 재발 방지대책 발표도 없었다.
그나마 폐수유출 사고와 관련된 설명은 안성시장 지지자와 시민소수만이 볼 수 있는 개인SNS에 몇글자 쓴게 전부다. 시민들은 여전히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처방안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채 불안감 속에 방치돼 있다.
■안성시의회엔 진정한 투사가 없나?
특히 안타까운 것은 안성시의회의 침묵이다. 시민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야 할 시의원들이 말 한마디 못하는걸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같은 당이어도 무조건 감싸기 보단 문제가 있으면 지적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시의원들도 원인규명과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안성시의회에는 진정한 투사가 없고 겁쟁이들만 있나보다. 지역 행사에 쫓아다니며 사진 찍기 바쁘고 생색내기에만 몰두해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시의원이 하나도 없다.
■보조금 족쇄에 묶인 시민단체들
누구보다 지역현안에 관심을 갖고 지역발전에 힘을 보태야 하는 시민단체들도 연간 지원받는 수억원대 보조금에 말문을 닫은 건 마찬가지다. 보조금을 받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지난해 평택시 폐수유출 사건 발생 시, 평택 관내 시민단체들은 시청본관 앞에서 집단 성명을 내고 정확한 원인규명과 재발 방지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보조금을 받더라도 할 말은 하고 행동에 나선 거다.
이와는 달리 안성시 관내 시민단체들은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발표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자격미달을 넘어 '시민 혈세만 빼먹는다'고 꼬집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시민의 안전과 환경 보전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기업의 이익보다 우선 돼야 한다. 그런데도 안성시장, 시의원, 시민단체 그 누구도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시장은 더 이상 이 사태를 유야무야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약속해야 한다. 시의원들은 침묵을 깨고 시민의 대변자로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환경오염 사고에 적극 대처해야 할 관련자들이 자신의 책무를 회피하는 데 있다. 안성시의 행정 신뢰, 정치인의 역할, 그리고 시민단체의 책임을 20만 안성시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