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 인하를 멈추면서, 한국은행도 향후 통화 완화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다음 달 25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계엄 사태로 소비 등 내수가 크게 위축된 상황을 반영하면서 한 차례 금리를 내리더라도 이후 연속 인하를 결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미국의 금리 인하 폭과 속도가 줄어들면 그만큼 '달러 강세-원화 약세'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미국과의 격차 확대와 원/달러 환율 급등을 내내 걱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준은 28∼29일(현지 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
지난해 9월(0.50%p↓), 11월(0.25%p↓), 12월(0.25%p↓) 연속 금리 인하 이후 네 차례만의 동결이다.
이날 연준이 금리 인하에 제동을 건 것은 미국 경기 호조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잠재 위험 등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노동시장 상황은 견조한 상태지만 인플레이션은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물가 상승률이 위원회의 목표치인 2%에 가까워졌다는"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동일한 의견을 취했다. 그는 "현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는 기존보다 현저히 덜 제한적이고 경제는 강한 상황"이라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더불어 "관세·이민·재정정책, 규제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알 수 없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도 언급했다.
이날 금리 동결은 이미 지난해 12월 회의에서 발표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됐다.
새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이는 기존 지난해 9월 전망치(3.4%)대비 0.5%p나 높아진 것으로, 현재 금리 수준(4.25∼4.50%)을 고려하면 올해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니라 두 번 정도만 더 내리겠다는 뜻이다. 2026년 말 기준금리 예상 수준도 2.9%에서 3.4%로 뛰었다.

이번 연준의 결정으로 한국(3.00%)과 미국(4.25∼4.50%)의 기준금리 차이는 1.50%p로 유지됐다.
앞서 한은 금통위는 작년 10월, 11월 연속 인하 이후 이달 13일 동결을 결정하면서, 환율 등 여러 위험 요소와 불확실성을 근거로 들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계엄 등 정치적 이유로 원/달러 환율이 30원 정도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에 비해 더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또 "두 번의 금리 인하 효과도 지켜볼 겸 숨 고르기를 하면서 정세에 따라 (금리 인하 여부를) 판단하는 게 더 신중하고 바람직하다"고 동결 배경을 전했다.
그러나 현재 2월까지 두 차례나 금리를 묶기에는 경기·성장 부진의 정도가 매우 극심하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소비·건설투자 등 내수 부진에 비상계엄 이후 정치 불안까지 겹쳐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당초 한은 전망치(2.2%)보다 0.2%p나 하락한 2.0% 성장하는 데 그쳤다. 특히 4분기 성장률(전분기대비)은 저조한 건설투자(-3.2%) 등의 영향으로 0.1%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은행(IB) 해외 전망 기관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 눈높이도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에도 씨티가 1.5%에서 1.4%로, JP모건이 1.3%에서 1.2%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저성장 고착'의 우려가 커지는 데다, 새해 들어 원/달러 환율까지 최근 1430원대 안팎에서 비교적 안정된 만큼, 큰 이변만 없다면 한은은 다음 달 기준금리를 0.25%p 낮출 것으로 점쳐진다.
이 총재도 직접 "성장 하방 위험과 함께 금리 인하 필요성이 커졌다"며 총재 자신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모두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라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 연준이 뚜렷하게 인하에 '신중 모드'로 돌아선 만큼, 2월 이후에는 한은도 경기 부양만을 명분으로 계속 금리를 낮추는 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가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원/달러 환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은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면,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환율 급등과 외국인 자금 유출 등을 부추길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월 인하 이후 한은이 연내 단 한 차례만 추가로 더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