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즐기지 않는 소비자 위한 안전장치
없는 집보다 있는 집 택하는 소비자 심리

부산 연제구에서 전통주를 판매하는 한 주점의 모습. 인테리어로 곳곳에 전통주병과 막걸리병은 배치했다./사진=부산 영래 
부산 연제구에서 전통주를 판매하는 한 주점의 모습. 인테리어로 곳곳에 전통주병과 막걸리병은 배치했다./사진=부산 영래 

| 스마트에프엔 = 김선주 기자 | 전통주와 막걸리 종류가 늘면서 특색있는 콘셉트의 전통주 전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본인 취향에 파고드는 '디깅 소비'를 하는 MZ세대  취향을 겨냥했다. SNS에는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판매하거나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전통주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가게가 입소문이 난다.

전통주 전문점 상당수가 메뉴를 만들 때 ‘소주' 판매 고민에 직면한다. 전통주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도와, 대중적 주류인 소주 수요에서 균형을 맞춰야 해서다. 소주가 메뉴판에 오르는 순간 전통주보다는 익숙한 소주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전통주 전문점이라고 막걸리나 전통주만 판매하면 '특수 취향'의 소비자만 가게를 찾는다. 술자리를 함께하는 이들 가운데 막걸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일행 전체가 다른 술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대신 소주를 메뉴에 넣는다면 '안전장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업주는 매출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전통주는 마진은 크지만 많이 팔리지 않고 계절이나 트렌드에 따라 판매량 변동이 크다. 반면 소주는 스테디셀러다. 기본 매출은 소주가 받쳐주고 플러스 매출은 전통주에서 만드는 구조가 가능하다.

전통주는 한 병에 1만원을 넘는 것들도 많아 한 두 병을 주문하면 술값이 안주값을 넘기도 한다. 또 막걸리는 탄산이 있고 걸쭉하다. 전통주도 소주보다는 맛과 향이 강한 것들이 많아 먹다보면 느끼하거나 질릴 수 있다. 가격과 맛이 부담스럽게 된다. 게다가 막걸리는 숙취가 심해 모둠전과 같은 어울리는 페어링 안주가 먹고 싶을 때가 아니고선 찾는 경우가 많진 않다.

소주가 전통주의 매력을 희석시키지 않도록 ‘메뉴 구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전통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페어링해 강조하고 소주는 보조적 선택지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숙성 고기와 어울리는 증류주', '칼국수와 어울리는 어느 지역 막걸리' 등의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다.

국순당 전통주들 /사진=스마트에프엔 김선주 기자
국순당 횡성 양조장에 전시된 국순당 '우리술'./사진=김선주 기자

일반 소주 외에도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함께 구비하면 전통주 전문점이라는 콘셉트와도 충돌을 줄일 수 있다. 인테리어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지역 막걸리병이나 전통주병을 전시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전통주 전문점 운영자는 "가게 메뉴에 소주가 없다. 소비자들이 2~3병쯤 마시고 나선 대부분 '소주 없어요?'한다. 전통주 컨셉을 지키고 싶어 아직까지는 소주를 메뉴에 넣지 않았다. 대신 프리미엄 증류주를 추천하지만 소주가 없고 안주가 비싸 오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긴 하다"고 토로했다.

부산 연제구에서 소주와 함께 전통주와 막걸리를 판매하는 한 자영업자는 "소주를 포함시킬지 말지에 대해 꽤나 오랜 시간 고민했다. 메뉴판엔 소주를 넣지 않고 찾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 갖다 주는 방식으로 했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지역 막걸리와 전통주만 넣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본 우리 술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술과의 페어링 안주를 기획하고 전통주 하이볼 같은 다양한 시그니처 레시피를 만들다보니 고객들이 소주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재방문하는 소비자들은 반드시 소주를 찾는 편이라 소주 판매가 매장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통주와 막걸리를 즐겨 전문 주점을 자주 찾는다는 한 20대 여성 소비자는 "확실히 소주를 파냐 안 파냐에 따라 재방문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며 "첫 방문에는 호기심에 신기하니까 이것저것 시키지만, 분위기가 아무리 좋고 예쁘고 맛있어도 소주를 판매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가기도 부담스럽고 재방문 의사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소주 판매 여부는 단순히 술 한 종류를 더 넣는 문제가 아니다. 소주는 고객 이탈을 막고, 매출을 안정화시키면서 전통주 체험을 유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전통주 전문점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수익을 내야하는 고민이 소주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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