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뒤, 그 자신감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졌다. 기저귀를 갈며,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처음 듣는 "아빠"라는 단어에 멈춰 서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익숙해질 틈 없이 낯설고, 그 낯섦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매일의 '처음'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담아두기 위해. "오늘 또 처음처럼."
이제 슬슬 아내의 복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걱정이 한가득 쌓일 게 분명했다.
“오빠 복직 조금 늦췄어 8월에 하기로 했어.”
“그게 가능하대?”
“응 인사팀에 사정 이야기했더니 이해해주셨어”

재이를 돌봐주기엔 친가도 외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일찍 결혼했더라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연세가 있으니 부탁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복직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아내는 점점 심란해졌다.
“나 그냥 그만둘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음…”
그 무렵 솔직히 말하면 난 그냥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부서장이 바뀌면서 업무 방식이 맞지 않았고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1년만 육아휴직을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이가 태어나고 나서 돈 들어갈 때는 많고 내 월급이 아내보다 조금 많았다.
아내는 복직해서 재이가 더 크기 전에 돈을 더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아내에게 “내가 휴직할게”라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매일 재이와 씨름하는 아내에게 “나도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아내는 복직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었다.
“오빠 이제 가정어린이집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왜? 복직 8월에 한다면서 아직 남았는데?”
“미리 적응시켜야지.”
“그렇긴하지”마음은 복잡했다.
돌도 안 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생각하니 심란했다.
우리는 집 근처 가정어린이집 몇 군데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아내가 복직하면 차를 끌고 다녀야 하니 유모차로 데려갈 수 있는 거리의 어린이집이 최우선 조건이었다.

“첫 번째는 가까운데 원이 좀 오래돼 보이네.”
“그러게 나도 좀 그런 느낌이야.”
“두 번째는 거리도 애매하고 비 오는 날은 불편할 것 같아.”
“난 그냥 집에서 가까운 데가 좋은 것 같아.”
“근데 거긴 자리가 없대 대기해야 한 대.”
일찍 보내는 것도 불안한데 마음에 드는 곳은 자리가 없다니 짜증이 밀려왔다.
재이는 밖에 나와서 좋은지 빵끗빵끗 웃고 있다 재이 덕에 웃음을 찾았다.
“재이야, 여기 어린이집 어때?”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장난감을 손에 쥐더니 바로 입에 넣는다.
“재이야 안 돼!” 장난감을 빼앗았다.
다른 아이들이 물고 빨던 장난감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니 괜히 예민해졌다.
“아아아아앙” 재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 왜그래? 재이 놀라게”
이런... 우리집의 평화를 내가 또 깨뜨리고 말았다.
며칠을 고민 끝에 우리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선생님들이 친절한 어린이집으로 결정했다.
“오빠 좀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운동한다고 생각해야지 근데 그것보다 부서장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야.”
“왜? 못 쓰게 할까봐?”
“눈치가 보이지 2시간 늦게 출근한다고 하면 ‘일 안 하네’ 할 수도 있잖아.”
“그건 좀 그렇긴 하다.”
“좋은 소리 듣긴 어렵겠지.”
“음”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회사생활이 좀 힘들어 내가 1년 육아휴직하면 어때?”
“왜? 무슨 일 있어?”
“부서장 바뀌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
“오빠 회사생활이 원래 그래 나도 힘들었잖아 다시 시작하면 또 버텨야지.”
“내가 육아휴직 내면 안 될까?”
“그러면 우리 계획이 다 틀어져 지금은 조금만 버티자.”
아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 순간엔 괜히 서운했다.
지금은 우리가 버텨야할 시간이였다.
지금은 육아와 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단단해져 있겠지.
<또우파파는 2018년 결혼해 6세 아들을 둔 회사원으로 블로그 '오늘 또 처음'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