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뒤, 그 자신감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졌다. 기저귀를 갈며,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처음 듣는 "아빠"라는 단어에 멈춰 서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익숙해질 틈 없이 낯설고, 그 낯섦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매일의 '처음'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담아두기 위해. "오늘 또 처음처럼."

벌써 10개월이라니. 돌까지 이제 45일 밖에 남지 않았다 기어 다니는 속도는 이제 많이 빨라졌다. 붙잡고 일어설 땐 마치 "나 이제 곧 걷는다… 준비됐지?"라는 묻는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나는 재이가 “아바바바빠”라고 할 때마다 분명히 “아빠”라고 듣는 것 같은데 아내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왜 아빠야, 그냥 아바바바잖아”
“아니야, 분명히 아빠라고 했어 나는 확실히 들었어”
그렇다고 재이가 “어어어어엄마”라고 하는 것도 아니어서 재이가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확신을 했다.
“분명히 재이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거 같아 ㅎㅎ”
“그렇게 생각해 좋겠네~~ ㅎㅎ”
“재이야 엄마 질투한다~”
“오빠가 실망할까봐 이야기 안했는데 재이가 나한테도 아바바바바빠라고 해”
“뭐? 진짜? 이런....” 응급실 방문, 장거리 여행, 이상소견 진료, 재이와 우리는 함께 잘 이겨냈다.
“우리 재이 정말 잘했다”
아침 식탁에서 내가 뜬금없이 말했다.
“뭘? 갑자기 왜?”“사진들 보니까… 재이가 많이 컸더라고 다 재이엄마 덕분이지”“그래? 고마워”

오늘 아침 식탁에서의 대화는 봄날 햇살보다 따뜻했다. 그런데 다음 말은 겨울바람처럼 훅 들어왔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월요일에 어린이집 보내보려고”
“벌써 그렇게나 빨리?”
“응, 우선 1시간만 보내서 장소에 적응시키려고”
겨우 1시간인데도 마음속 어딘가가 덜컹했다.
“우리 재이 잘할 수 있을까?”
“응 괜찮을거 같아 2020년 친구가 둘이나 있어”
“성별은 어때??”
“남자애 둘 재이 포함 남자셋이야”
“헉 못난이 3형제인데 ㅎㅎ”
“아가들이 어린데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처럼 다 맞벌이인가 보다”
월요일 아침 늘 그렇듯 둘은 자고 있었고, 나는 아침 일찍 회사로 갔다.
나는 주말에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회의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흐흐흐흐…”
울먹이는 소리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왜? 무슨 일이야?”
“재이… 어린이집 보내고 나왔어…”
그제야 기억났다아~ 참 오늘이 첫 등원이지. 재이가 많이 울어서 힘들었나 보다 생각했다.

“재이가… 들어가는데… 으으으윽… 울먹여서… 나도… 흐흐흑…”
“괜찮아… 한시간이잖아 우리 재이 잘 놀거야”
“으으으으…”
회의 중간에 나와서 아내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다. 다시 들어간 회의실에서 귀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시 아내에게 전화했다.

“지금 어디야?”
“어린이집 앞…”
“집에 안 갔어?”
“못 가겠어… 그냥 여기 있을래…”
아내는 한 시간 내내 어린이집 앞을 서성였다고 했다.
나도 눈물이 찔끔나왔다. 아내도 재이도 안쓰러웠다. 아내가 재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고 톡이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다른날보다 재이와 아내가 더 보고 싶어 서둘러 퇴근을 했다.
“재이야 재이야”
“아바바바바빠!!!” 하면서 기어왔다
아내는 인정을 안하겠지만 무조건 이건 아빠가 맞다.
“오늘 어린이집 잘 다녀왔어? 아빠가 엄청 걱정했어”
“아바바바바빠.”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며 말했다.
“얘가 들어가면서 울먹이는데… 나도 눈물이 나더라고”
“힘들었겠네 고생했어”
난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근데 재이 엄청 웃겨”
“울었다면서 뭐가 또 웃겨?”

“선생님한테 물었더니,‘입구에서만 울먹이고 방 들어오니까 엄청 잘 놀았어요~’ 라고 했어 어이없지?”
“그래?”
“엄청 사교적이라고 하면서 형제자매 있냐고 묻던데?”
“뭐?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거야?”
“그러니까! 난 울컥하고 있는데 얘는 친구들하고 잘만 놀았던거야”
나는 재이를 보며 말했다.
“재이야, 엄마 아빠는 오늘 너 보내고 엄청 힘들었는데 넌 잘 놀았어?”
“아바바바바빠!”
아내와 나는 많이 흔들렸던 1시간이었지만 그와 달리 재이에게 1시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단단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확신했다. 저 “아바바바빠”는… 진짜 “아빠”다. 이제 아내만 인정하면 된다.
(또우파파는 2018년 결혼해 6세 아들을 둔 회사원으로 블로그 '오늘 또 처음'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