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뒤, 그 자신감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졌다. 기저귀를 갈며,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처음 듣는 "아빠"라는 단어에 멈춰 서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익숙해질 틈 없이 낯설고, 그 낯섦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매일의 '처음'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담아두기 위해. "오늘 또 처음처럼."
“아바바바바빠—”
“재이가 아빠라고 했어”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난 재이가 “아빠”라고 불렀다는 확신했다.
“언제 아빠라고 했어. 그냥 아바바바 한 거 같은데”
“재이야, 오늘 병원 가야 해.”

“아바바바바빠—”
“그래, 아빠랑 가서 좋다고?”
“아바바바바빠-”
“이거봐 아빠라고 하자나?”
“그냥 아바바바 하는거 같은데~~”
“아니야 아니지 재이야? 아빠라고 했지?”
“아바바바바빠—”
“ㅎㅎㅎㅎㅎㅎㅎ”
“근데 오늘 또 그럴 거야??”
“뭘? 뭔 소리야?”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떠올랐지만 모른척 했다.
“오늘 병원 가서도 저번처럼 안절부절 할거냐고”
“아 아니 안그럴게”
지난번 병원 진료가 떠올랐다 초조해서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고 아내를 다그쳐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다 내가 참았으면 되었을 일인데 그놈의 조급증 때문에.

뉴스에서 연일 코로나가 위험하다고 떠들어대던 그 시기였다.
로비는 마스크 쓴 사람들도 가득찼다 재이에게 마스크를 씌웠지만 불편한지 찡찡거렸다.
아내는 이전과 다르게 빠르게 수속하고 비뇨기과 앞에 앉아 기다리는데, 다들 성인뿐. 아기를 안고 있으니 시선이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 아기 무슨 병이지?’아무도 그런 생각 안 했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어 구석으로 이동했다.
“왜 거기로 가? 그냥 여기 앉아 있으면 되지!”
아내가 살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왜 화를 내?”
“화난 게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 그냥 크게 말한 거야.”
‘또 내가 예민한 건가…’
“사람이 많자나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말투가 내가 생각해도 날카로웠다.
“재이님 들어오세요.”
또 싸움이 번질뻔 했는데 다행히 진료 순서가 우릴 살렸다 아니 날 살렸다.
진료실 침대 위에 재이를 눕혀놓고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재이는 불편한지 찡찡거렸다.
“재이야, 선생님 곧 오셔~”
“아아앙—!”
평소엔 병원 가면 얌전하더니, 오늘따라 왜 이러지… 재이도 불안한가보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주 잘 크고 있네!”
우리가 매일 보는 재이는 똑같은데, 남들은 항상 “튼튼하게 크네요~”라고 말해준다.듣기만 해도 기분 좋다.
의사 선생님이 재이의 부위를 살펴보고 눌러보더니 말했다.
“음… 왼쪽은 괜찮은데, 오른쪽은 아직 자리를 못 잡았네요.”
순간 아내 얼굴이 굳었다.
“그럼… 수술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조금 더 지켜봅시다. 요즘 이런 아이들 많아요”
“아 네”
“목욕시킬 때 혹시 올라가 있으면 살짝 내려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자리잡는 경우가 많아요”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재이야, 잘 크고! 1년 뒤에 다시 보자”
난 금방 조급함과 불안이 말끔히 사라졌지만 아내는 나와 달랐다.

차에 타고 문 닫히는 순간, 아내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왜 울어? 괜찮다잖아.”
“그냥 나 때문에 그런 줄 알았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혼자 불안해하며 끙끙 앓았던 것 같다. 나는 담담한 줄 알았는데, 표현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재이가 울고 있는 엄마를 보더니작은 손으로 엄마 얼굴을 만졌다.
“거봐, 재이가 엄마 우니까 눈물 닦아준다~”
아내는 재이를 꼭 안았다 나는 두사람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 날 이후, 재이 목욕 담당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오빠가 남자니까 봐줘 난 잘 모르겠어.”
“그걸 꼭 남자가 해야 해?”
“오빠가 해 그냥.”
그렇게 나는 매일 재이 목욕을 시키며 보고했다.
“오늘은 아래에 있음!”
“오늘은 위에 있어서 내가 내렸음.”
“오늘은 중간 어디쯤? 왔다 갔다 하는데?”
“일지를 써라 일지를 써”
“알았어 가끔 보고할게 ㅎㅎ”
그날 이후 우리집 아기의 'XX 위치 관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재이의 이상소견으로 예민한 아빠, 불안한 엄마,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재이.
육아는 항상 예상치 못한 감정의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재이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도 조금씩 마음이 성장한다.
(또우파파는 2018년 결혼해 6세 아들을 둔 회사원으로 블로그 '오늘 또 처음'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