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뒤, 그 자신감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졌다. 기저귀를 갈며,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처음 듣는 "아빠"라는 단어에 멈춰 서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익숙해질 틈 없이 낯설고, 그 낯섦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매일의 '처음'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담아두기 위해. "오늘 또 처음처럼."

“오빠! 재이 봐 걷는다 걷는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눈을 겨우 떴을때 재이가 세 발짝을 걸었다. 그리고 쿵! 엉덩방아.
“아~~ 재이야 재이야! 어떻게 이렇게 걸었어?”
엄마는 이미 흥분해서 점프 직전이다.
“아아아빠”
어 방금 ‘아빠’라고 했어. 정확히 ‘아빠’라고 했다.
“아빠래? 들었지? 들었지!”
세상 당당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보았고 아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정을 했다. 오늘의 쾌거는 재이가 집안의 모든 가구를 손잡이 삼아 계속해서 일어나 보려 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수없이 ‘쿵’하고 엉덩방이를 찧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쌓여 결국 해냈다.
기어 다닐 때는 거실이 전 세계였다면 이제는 집 전체가 대상이 되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그 변화가 익숙할지 몰라도 주말에만 하루종일 재이와 함께 보내는 나는 가끔 재이의 성장에 놀랄때가 많았다.
집에서 재이가 가장 사랑한 두 곳이였다.
첫 번째 주방 테이블 아래 서랍 문이 없다. 즉, 꺼낼 수 있는게 많았다. 봉지, 가벼운 그릇, 누가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잡동사니까지 손에 잡히는 건 다 꺼낸다.

두 번째 작은방 한켠 페브릭 서랍이곳엔 금값이 된 마스크가 보관되어 있다.
재이는 조용하다 싶으면 여기 와서 마스크를 투척했다.
“재이 어디갔어?”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거기서 재이는 마치 창고 정리 전문가처럼 물건을 꺼내 바닥에 다 던지고 있었다.
“재이 여기 있으면 다쳐”
“아바빠 아아아아아앙~!”
안아 들었다.
그러자 재이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 놀. 이. 를. 방. 해. 했. 다.’
나는 책을 들려주고, 소리나는 장난감을 줬지만 안가려고 몸에 힘을 주고 있다.
아~ 이놈 이제 슬슬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이가 제일 좋아하는 까꿍놀이로 관심을 바꿔보려 했다.
“재이 어딨어?? 재이 안 보이네? 깍꿍~”
나는 재이를 찾는 척 했다.
“깍꿍~ 재이 어디있지?”
재이는 벽 뒤로 숨어서토끼처럼 고개를 봉긋 내민다.

“깍꿍!”
“아아아하하하!”
“깍꿍!”“아아아하하하하!”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이 놀이엔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
내가 잠시 멈춰 이불을 뒤집어 쓰자.
“아아아아앙~!”
울었다 아니, 왜 울어?
나는 다시 한다.
“까악꿍!”
“아아아하하”
“까~~~~꿍!”
“아하하하하!”
목소리 톤도 바꿔보고, 리듬도 바꿔보고,마지막엔 성대가 영혼과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망쳤다. 안방으로 가서 커튼 뒤에 숨었다.
그냥 숨어서 쉬고 싶었다. 정말 쉬고 싶었다. 새로운 놀이는 아니다. 그저 쉬고 싶은 도망이였다.
하지만 아내와 재이는 그걸 새로운 놀이로 이해했다.
“재이야~ 아빠 숨었어! 찾아봐~”
“아바바빠!” (찾으러 간다)
아~ 망했다.
커튼 뒤에서 발각된 나는 침대로 도망가서 이불을 덮어썼다.
“아 이제 못하겠어 힘들어”
“아아아앙~!”
울면서 까꿍놀이를 요구하는 재이와 지쳐서 더 이상 놀이를 못하는 늙은 아빠.
재이와 내 행동을 지켜보던 아내가 말했다.

“오빠 힘들지?”
“계속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잖아 끝이 없어”
“작은방에서 잘 놀고 있는데 왜 못하게 해?”
“아니 혹시나 위험할까봐”
“거기 위험한 거 없잖아 위험하면 치우고 놀게 하면 되지”
“어질러지는 게 또 싫기도 하고”

“애 있는 집은 원래 그래 정리해도 맨날 난장판인데 뭐”
“장난감 많은데 왜 굳이 거기에 가서 놀아?”
“재이한테는 그것도 놀이야 얼마나 신기하겠어”
“저게 무슨 놀이야?”
“재이 책 좀 봐. 휴지뽑기 놀이, 리모컨 놀이, 플러그 놀이가 그냥 나온 게 아니야”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대단한 유아학자 나섰네'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재이가 태어난 뒤로 육아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고 있다.
“같이 보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차라리 보지 않을 거라면 아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지만, 그건 또 아니다.
이 청개구리 같은 마음 때문에 아내와 종종 싸우는 일이 생긴다.
“개굴! 개굴 미~안~해!”
(또우파파는 2018년 결혼해 6세 아들을 둔 회사원으로 블로그 '오늘 또 처음'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