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뒤, 그 자신감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졌다. 기저귀를 갈며, 울음소리에 당황하며, 처음 듣는 "아빠"라는 단어에 멈춰 서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익숙해질 틈 없이 낯설고, 그 낯섦이 너무 사랑스러워 자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매일의 '처음'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담아두기 위해. "오늘 또 처음처럼."

“나 TV 좀 보게, 들어가서 일찍 자”

“나 아직 안 졸려 TV 볼 거야”

“나 혼자 좀 쉬고 싶으니까, 제발 좀 들어가”

요즘 들어 아내는 종종 나를 방으로 쫓아낸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미묘하게 서운하다.

내가 옆에 있으면 TV가 볼 수 없는건가? 왜 자꾸 들어가라고 하는지.

“하루 종일 재이랑 붙어있어서 힘들어 혼자 있고 싶어”

“음. 알았어 아무 말 안 하고 TV만 볼게”

“진짜? 오빠 계속 말 걸 거잖아”

“안 해, 안 해 약속”

그리고 잠시 후. 

“어, 저거 봐봐 저기 우리도 가자”

“저 사람은 왜 저러냐? 아 진짜 웃긴다ㅋㅋ”

그렇다 개가 똥을 끊지, 나는 말을 끊을 수 없다. 아내는 말을 꼭 걸고 싶게 생긴게 문제인거 같다. 

“아~ 좀 들어가 제발 TV 좀 보게”

이건 더 있다간 아내한테 혼날게 뻔하다. 이제 들어가야 한다. 

“아~ 우리 재이 잘 자고 있나~? 난 들어간다아~ 하하하”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말을 해야 풀리는 타입이고 아내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혼자 있어야 풀리는 타입이다.

만약 내가 아내처럼 집에서 종일 재이와 있었다면 나는 분명 울면서 TV에게 말을 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빠 재이 재우고 얘기 좀 해”

“무슨 얘긴데?”

“이따가”

“뭔데?? 힌트라도”

궁금한 걸 못 참는 내가 또 덥석 물었다. 

“아, 좀! 이따 얘기하자니까!”

아내는 빽~하고 짜증을 부리며 재이를 재우러 들어갔다.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문이 벌컥 열리고 아내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왔다.

“안자!”

“오늘 많이 안 놀았어? 체력이 남았나?”

“몰라!”

분위기가 아주 쎄하다 더 말을 걸었다가는 짜증낼게 분명하기에 내가 얼른 아기띠를 착용하고 재이를 안았다.

“재이야 얼른 자. 엄마 아주 많이 화났다”

자장가 두 곡이 끝나자 재이는 스르르 잠들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자는 애를 왜 1시간 동안 못 재운 거야?”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재워?”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말할 수 없지. 후훗”

“그럼 앞으로 오빠가 다 재워 그렇게 잘하면”

노하우라기보다 아내가 이미 1시간 동안 예열을 해두었기 때문인거 같다. 재이가 잠들고 드디어 대화 시작되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게 많아”

“뭔데?”

“돌잔치, 여름휴가, 육아도우미 선생님”

하아 일단 들은 것만으로 피로가 몰려온다.

“뭐가 그리 결정할게 많은거야?” 

“오빠는 큰 것만 딱딱 결정하지, 나는 그 사이에 있는 1000가지 자잘한 걸 다 결정해야 해”

다 맞는 말을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재이는 사랑스럽지만 육아는 결정해야 하는 일도 끝이 없다. 백일잔치가 끝나니 돌잔치가 돌아오고 사진촬영은 또 해야하고 쉼없는 일정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결정을 해야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지.

“돌잔치는 코로나 때문에 크게 못하잖아?”

“응 그냥 부모님 정도만 모시고 밥 먹고 집에서 돌잡이 하자”

아내는 사실 예쁜 꽃과 풍선이 있는 근사한 돌잔치를 꿈꿨지만그런 건 이미 코로나가 모두 앗아갔다. 

“그럼 여름휴가는?”

“멀리 가고 싶어? 제주도? 해외?”

“음. 난 재이 데리고 멀리는 자신 없어. 힘들 것 같아.”

“그럼 당일치기로 가까운 키즈 수영장이나 가자”

둘 다 체력이 바닥이라 의견이 아주 빠르게 일치했다.

그리고 마지막 육아 도우미 선생님.

“도우미 선생님 구하려면 몇 명은 만나봐야 할 것 같아”

“그치”

“우리랑 잘 맞는 사람 찾기 쉽지 않을 텐데”

“그치”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빨리 서둘러야 할거 같애”

“그치”

“남의 손에 맡겨두고 회사 가는 게 맞나 싶어”

“그치”

“뭐가 계속 그치야?”

아내의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감싸줄 적당한 말이 생각하니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작게 말했다.

“그치” 

 

(또우파파는 2018년 결혼해 6세 아들을 둔 회사원으로 블로그 '오늘 또 처음'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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