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보도 1시간 만에 제보자에게 연락···보상은 운임 2.6% 수준 제시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본보의 10월 29일자 '티웨이항공의 非常(비상)' 보도 직후, 티웨이항공 측이 파리-인천 구간 탑승 승객에게 1시간 만에 연락했다. 그러나 약 190만원을 지불한 장거리 노선에서 발생한 목받이 파손에 대한 보상으로 5만원 상당의 자사 CS쿠폰(운임의 약 2.6%)을 제시해 '과소 보상'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안은 좌석 결함 등 서비스 품질 실패에 대한 객관 보상 기준이 국내에 사실상 부재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보도 직후 연락···그러나 운임 2.6% 보상
승객의 반복 민원에는 답하지 않던 항공사가 보도 직후 신속히 접촉했다는 점은, 이에 대한 문제 인식과 대응 역량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5만원 상당의 쿠폰 제시는 장거리 비행에서 목받이와 같은 좌석 핵심 기능 상실을 경미한 불편으로 취급한 결과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티웨이항공의 제안은 실질적 손해를 단순히 사소한 불편으로 치부한 고무줄 보상이라고 지적한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쿠폰 및 마일리지 발행이 현금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수단이다. 소비자에게 현금 5만원 상당의 쿠폰만 전달하고 문제를 덮으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쿠폰은 현금과 달리 사용기한과 제한 조건이 따르기에 소비자 체감가치는 현금보다 낮을 수 있다.

좌석 핵심 기능 미제공은 '계약상 기대 이익 미이행'
미국이나 유럽 역시 좌석 결함만을 명시한 법정 정액 보상 규정은 없다. 그러나 항공사가 판매한 약정된 좌석과 기능을 제공하지 못한 경우를 계약상 기대 이익 미이행으로 보고 현금 또는 고액 바우처로 보상하는 관행이 널리 보고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좌석 결함에 대해 초기 5000~1만 마일리지 제시가 있었으나, 소비자가 항의하고 계약 위반을 주장했을 때 현금 또는 고액 바우처로 상향된 사례가 있다.
유럽연합(EU)의 'EU261(등급 강등)' 규정은 유의미한 기준을 제공한다. 이는 좌석 결함은 아니지만 등급 강등 시 운임의 30~75%의 환불을 의무화하고 있다. 파리-인천 구간과 같은 장거리 노선(3500km 초과)의 경우 최고 환불 상한인 75% 기준이 적용된다. 좌석 결함이 법률상 등급 강등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실질적 등급 가치 하락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운항 실패'만 있고 '품질 실패'는 없다
티웨이항공이 5만 CS쿠폰이라는 임의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었던 원인은 국내 규정의 맹점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지연, 결항, 오버부킹 등 운항 실패 중심으로 정액·비율 보상을 제시한다.
반면에 좌석 결함, 기내 엔터테인먼트(AVOD) 고장, 청결 문제 등 서비스 품질 실패에 대한 세부 기준은 없다. 결과적으로 보상 규모와 형태가 전적으로 항공사 재량에 맡겨져 같은 유형의 피해라도 소비자 간 형평성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항공사는 내부 임의 기준이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있게 된다. 이번 5만 CS쿠폰 제안은 한국 항공 보상 체계의 구조적인 미비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왜 소송으로 가도 소비자는 불리한가
국내 소송 구조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구조를 강요한다. 먼저 피해 입증 책임의 벽이 높다. 좌석 결함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시간 불편이 실제 질병·치료·업무손실 등 구체적 손해로 이어졌음을 의무기록·치료 영수증 등으로 승객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인정 폭도 좁다. 장시간 불편 같은 정신적 손해는 일부 인정돼도 10만~수십만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소송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항공사의 방어 논리가 작동한다. "안전 운항 의무는 이행했고 좌석 교체·임시 조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과실이 경감된다.
결국 승객은 시간·비용 대비 보상이 낮아 소송을 포기하고, 낮은 보상, 소송 포기, 관행 유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무줄 보상 막을 객관 보상체계 시급
이번 5만 CS쿠폰 제안이 남긴 질문은 명확하다. 한국에도 객관 보상체계가 시급하다. 좌석의 핵심 기능인 안전벨트·테이블·목받이·등받이·AVOD가 작동하지 않을 때를 좌석 가치 하락으로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장거리 운항일수록 손해가 커지는 현실을 반영해 구간거리, 운임 연동 비율을 준용한 정률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동시에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서비스 품질 실패에 대한 세부 표준을 공표해, 사업자 자율기준에 법적 하한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최소 기준이 강제돼야 ‘고무줄 보상’이 사라지고 소비자는 예측 가능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저렴하면 참으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낮은 운임이 품질 저하에 대한 면책이 될 수는 없다. 목받이가 부러진 채 장거리 비행을 감내하는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안전·품질 관리의 문제다.
"대우를 원하면 풀서비스 항공을 타라"는 주장은, 소득·계층에 따른 권리 차등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주장이다. 내 부모·자녀·연인이 같은 불편을 겪어도 "저가니까 참아라"라고 말할 것인가.
항공 좌석은 항공사가 판매한 계약상 서비스의 핵심이며, 보상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그 권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저가항공이든 프리미엄 항공사를 막론하고 소비자는 언제든 ‘고무줄 보상’의 희생자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 섞인 공방이 아니라, 거리·운임과 연동된 정률 기준과 정부의 최소 하한선이다. 기준이 마련될 때, 소비자 권리가 동일하게 보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