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B 미작동·변속레버 미조작 주장도 배척
제조사의 급발진 완전 인정 판례 전무

법원이 지난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소송에서 제조사 측 손을 들어줬다.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는 도현이 가족 측이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고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도현이 가족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27일 오후 강원 강릉시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이 진행됐다.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이 모닝 차량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 스티로폼 앞에서 AEB 기능 작동으로 인해 멈추어 서 있다./사진=연합뉴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27일 오후 강원 강릉시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이 진행됐다.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이 모닝 차량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 스티로폼 앞에서 AEB 기능 작동으로 인해 멈추어 서 있다./사진=연합뉴스

재판부는 "운전자(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밟았을 것으로 보여 ECU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도현이 가족과 KGM은 핵심 쟁점인 '페달 오조작' 여부를 두고 2년 6개월간 법정 공방을 벌였다.

도현이 가족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ECU 결함에 의한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KGM은 '풀악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EDR 기록과 국과수 분석을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재판에서는 EDR 신뢰성 감정부터 블랙박스 영상 음향분석 감정, 국내 첫 사고 현장 실도로 주행 재연시험에 더해 ECU 전문가의 법정 증언까지 이어졌다.

그간 급발진 의심 사고는 대부분 운전자의 조작 실수로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약 30초 동안이나 지속된 급발진 현상과 "이게 왜 안 돼, 도현아"라며 소리친 할머니의 음성이 공개되며 급발진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경찰은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조사의 급발진 완전 인정 판례 전무

현재까지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된 대법원 판례는 전무하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3조의2(결함 등의 추정)는 결함 추정에 대한 입증 책임이 제조사가 아닌 피해자에 있다.

2016년 8월 부산 남구에서 물놀이를 가던 일가족 4명이 숨진 싼타페 사고는 유족 등이 제조사인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심 모두 패소했다. 당시 택시기사 출신인 60대 운전자를 제외하고 아내와 딸, 외손자 등 4명이 숨졌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 민사5부는 2023년 5월 "운전자가 사고 당시 불상의 원인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못했거나 착오로 가속 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이 제출한 사설 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감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사가 아닌 형사재판에서는 운전자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 하에 피고인(운전자) 과실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형사재판의 특정에 기인한 것으로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다.

대법원은 2005년 11월 서울 마포구에서 벤츠를 몰다 10중 추돌사고를 낸 대리운전기사 박모 씨에게 2008년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형사 사건에서도 재판부의 판단은 갈린다. 2020년 12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차로 학교 경비원을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A씨의 경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고 달리는 중 여러 차례 브레이크 등이 켜진 점을 보면 차량 결함을 의심하기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나 2심에서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현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까지 가진 않았지만 제조사 책임이 일부 인정된 사례도 있다.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에서 BMW를 몰다 급발진 의심 사고로 운전자 부부가 사망한 사건에서 손해배상 소송 1심은 유족이 패했지만 2심에선 승소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12부는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는 상태에서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차량 결함을 인정했다.

사고 발생 이틀전 BMW코리아 직원이 차량 점검을 했고, 시속 200㎞ 고속 주행 중 비상 경고등이 작동된 점, 사고 이전 운전자가 과속 습관이나 과태료 처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BMW측이 상고해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 중이지만 2심에서 제조사 과실이 인정된 유일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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