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로
'소통과 통합' 새 시대 핵심 과제 강조
기득권·엘리트 중심 정치 '타파'

이재명 21대 대통령
이재명 21대 대통령

4일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승리했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석패한 뒤 3년 만에 재도전해 '대한민국호' 키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4일 취임 후 2030년 6월 3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보수 정권을 평가받는 중대한 분기점이었으며,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민생 위기 속에서 치러진 만큼 어느 때보다 민심의 향배가 주목됐다. 이 대통령은 '민생과 실용'을 내세운 공약과 대중과의 활발한 소통을 무기로 삼았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일상에서 희망을 느끼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경제 회복과 정치 안정, 그리고 사회 통합을 3대 국정 운영 기조로 삼았다. 그의 승리는 단순한 정치적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흙수저 출신 정치인'이 현실 정치의 벽을 돌파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상징적 사건이다.

서울 파이널 유세에서 주먹쥔 손을 높이 올려 화답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서울 파이널 유세에서 주먹쥔 손을 높이 올려 화답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21대 대선은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네거티브가 난무했다. 후보자들은 정책 경쟁보다는 상대의 사생활, 과거 행적, 가족 문제 등을 파고들며 흠집 내기에 주력했고 언론과 SNS를 통한 공격과 반격이 반복되며 본질적인 공약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정적 대립이 극대화된 가운데 선거는 '비호감 대결'이라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의 선두 주자로 꾸준히 지지율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사법리스크와 더불어 보수 여권의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윤석열정부의 계엄령이 국회에서 무력화 되면서 진보세력에 힘이 실렸지만 덩달아 보수 표심도 결집하는 상황을 야기했다. 이 당선인은 계엄사태 이후 수도권과 청년층, 무당층에서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재명 대세론'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도 '압승'이었다. 51.7%. 김문수 후보(39.3%)와는 12.4%포인트 차이가 났다. 개표 초반 김문수 후보에 1위 자리를 내줬다가 개표율 10%가 넘어가자 1위에 오른 후 당선 확정까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정치권은 계엄 후 민생 피로감과 정권 교체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실용정치'의 승리로 분석하고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왼쪽 팔 장애까지

이 대통령은 1963년 경북 안동 산골 화전민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가난을 피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고, 성남시의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진학 대신 산업 현장을 선택해야 했던 그는 철공소에서 일하던 중 산업재해를 입어 왼쪽 팔에 치명적인 장애를 안게 됐다. 이는 '고통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 전환점이 됐다.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1978년 고입 검정고시 시험 응시원서 사진과 인권변호사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
1978년 고입 검정고시 시험 응시원서 사진과 인권변호사 시절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중앙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이 당선인은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지만 특유의 끈기와 집념으로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과 소송을 다수 맡으며 '현장형 법조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시절이 훗날 그가 '민생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뿌리가 되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실용주의와 개혁 이미지

정계에 입문한 이 대통령은 2010년 성남시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성남시는 재정난으로 복지사업이 중단된 상태였지만, 임기 초부터 고강도 재정개혁으로 부채를 줄이고 복지 정책을 정상화시켰다. 이후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지원 같은 보편적 복지 정책을 통해 '작지만 강한 지자체 행정'을 실현했다. 복지와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과 시민사회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었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2018년 경기도지사가 된 이 대통령은 전국 단위 정책 실험에 나섰다. '기본소득'을 지방정부에서 추진하며 전국 최초로 청년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제도를 정착시켰다. 부동산 개발이익 환수, 공공개발 확대, 공공병원 설립 확대 등을 통해 공공성과 시장 기능의 균형을 시도했다. 반면 공무원과의 갈등, 강한 어조, 일부 정치적 논란은 그에 대한 평가를 양극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두 번째 도전···화려한 귀환

2022년 대선에서 석패한 그는 당의 위기 상황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되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그 기간 윤석열정부의 주요 정책에 날카로운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 정당' 전략을 견지했다.

'민생 우선'이라는 기조 아래 가계부채 완화, 청년주거 지원, 자영업자 손실보상 강화 같은 입법을 주도하면서 정책형 정치인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그의 활동은 대중과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고 다시 대선 주자로 나설 명분과 동력을 마련해줬다.

'아주대와 함께하는 대학생 간담회'에서 학생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아주대와 함께하는 대학생 간담회'에서 학생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2025년 대선 캠페인에서는 전략적으로 '현장 중심' 행보를 택했다. 거리 인사, 시장 방문, 노후 지역 집중 유세 등으로 국민과의 접촉면을 극대화했으며, '정치가 내 삶을 바꾸는가'는 질문에 확신 있는 해답을 주는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일관된 메시지와 민생 중심 공약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며 소통과 통합을 새 시대의 핵심 과제로 강조해왔다. 그는 "정치는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전제로 한 제도"라며,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갈등을 제도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야말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임을 역설했다. "국민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효능감을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운영 방식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청와대 구조를 벗어나 수평적이고 열린 국정 운영 시스템을 지향하며, 민간 전문가와 청년 보좌역 확대, 열린 브리핑 제도 도입 등을 통해 대통령실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3월 9일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치고 윤석열 석방 검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3월 9일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마치고 윤석열 석방 검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

검찰권과 감사권의 중립성 문제에도 입장이 분명했다. "정치 보복의 시대는 끝났다"며, 검찰과 감사원이 '정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견제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권력기관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이 진정한 법치국가의 기초"라고 말하며, 그동안 정치권을 둘러싼 적대적 공방과 갈등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국민 속에서 만들어진 대통령

이 대통령은 스스로를 "시민의 땀 냄새가 배어 있는 정치인"이라 말하곤 했다. 철공소에서 망치를 들고 일하던 소년 시절부터, 인권변호사로서 수많은 서민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던 시절, 그리고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까지 항상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이런 삶의 궤적은 그가 화려한 정치 가문도, 명문가 출신도 아닌 '국민 속에서 만들어진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게 했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거대담론'보다 '생활 속 변화'를 강조했다. "정치는 대단한 이념 싸움이 아니라, 월세 걱정을 줄이고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란 말은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메시지는 청년·여성·소상공인 등 다양한 사회계층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 '엘리트 중심의 정치 언어'보다 '생활 언어'에 가까운 말을 쓰며, 현장을 발로 뛰는 유세 전략으로 표심을 다졌다.

'골목골목 경청투어' 남도문화벨트(화순,강진,해남,영암)에서 아이를 능숙하게 안아주는 이재명 당선인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골목골목 경청투어' 남도문화벨트(화순,강진,해남,영암)에서 아이를 능숙하게 안아주는 이재명 당선인 /사진=1지금은이재명 사진첩

그의 정치 여정은 수차례의 고난과 논란, 극복과 반전을 오갔다. 검찰 수사, 가족 논란, 당내 갈등 등 위기 상황에서도 그는 단호하고 직설적인 대응으로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을 구축했다.

다소 거칠고 직선적인 이미지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는 '말 바꾸지 않는 정치인',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등장은 '기득권 정치 구조'와 '엘리트 중심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이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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