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정기획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 다양한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부터 '디지털 경제에 맞는 통화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한국형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은 기술 강국, 플랫폼 강국이라는 국가 비전에 어울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제기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우려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민간 주도로 발행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입장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통화주권 때문이다. 만약 민간 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디지털 원화를 발행하고 거래한다면 한은의 통화정책 기능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서 실시간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예치금이나 지급준비금이 불완전하다면 갑작스러운 대규모 환매나 패닉 현상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스테이블 코인 / 사진=Penn Today
스테이블 코인 / 사진=Penn Today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잘만 쓰는데?"

그렇다고 글로벌 흐름을 외면할 수 있을까. 현재 블록체인 기반 거래와 탈중앙화된 금융(Decentralized Finance, DeFi : 디파이) 생태계에서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등)은 사실상의 기축통화다. 그야말로 '디지털 달러'가 실시간으로 거래되고 저장되고 이자를 낳고 있다.

문제는 '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활용도가 낮을까'라는 현실적 질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원화의 글로벌 범용성이 낮다는 이유를 든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도 쓸 데가 없다는 것이다. 유통되지 않는 화폐의 디지털 버전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통화주권은 더욱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되고 디파이(DeFi), 글로벌 거래가 늘어날수록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사용 비중은 한국에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디지털 공간에서는 달러가 지배자가 되고 원화는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과거 오프라인 시장에서 외환보유고와 환율로 통화주권을 지켰다면, 이제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주권 약화의 신호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 설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기술은 이미 검증됐고 원화 기반 테스트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제도 설계다. 누가 발행할 것인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가, 어떻게 중앙은행과의 관계를 조율할 것인가를 정교하게 그려내야 한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현실에 발을 딛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민간 참여를 일정 부분 허용하되 감독권과 기준을 명확히 하는 규율 체계, 그리고 위기 상황 시 개입할 수 있는 공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디지털 화폐 주권을 위한 첫 걸음을 하루 속히 내딛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실물 화폐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화폐로의 이행기에 서 있는 상황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세계를 장악하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할까 말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한은의 우려처럼 도입하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꼰대 기득권 탓에 못 하고있는 것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부와 한은이 그 해답을 찾아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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