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랭땅·라파예트, 한국 고객 위한 안내 서비스 강화
쇼핑 성지 프랑스, 외국인 소비 회복세에 ‘고객 모시기’ 박차

쁘랭땅 본점 입구의 모습./사진=김선주 기자 

| 스마트에프엔 = 김선주 기자 | 10년 전만 해도 파리 백화점 어디에서도 우리말 안내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스망 거리를 걷다 쁘랭땅(Printemps)이나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에 들어서면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한국어 리플릿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럭셔리 백화점은 '글로벌 관광객' 대신 '한국인 고객' 이름의 소비자를 맞이하고 있다.

쁘랭땅, 아시아권 소비자 위한 맞춤 쿠폰까지

쁘랭땅은 1865년 줄 오맹(Jules Jaluzot)이 설립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백화점으로,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근대적 쇼핑 공간’의 상징이다.

파리 9구 오스망 거리의 본점은 1920년대 아르데코 양식의 유리 돔과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며, 현재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최근 쁘랭땅은 전통 건축미를 유지하면서도 럭셔리·지속가능성·경험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명품관 ‘쁘랭땅 오스망 하이엔드관’을 리뉴얼해 하이주얼리, 하이워치 전문층을 확대했고, 친환경 브랜드를 모은 ‘쁘랭땅 두라블(Printemps Durable)’ 코너를 열어 지속가능 패션을 강조하고 있다.

2024년에는 관광객 대상 VIP 라운지 및 환급 서비스 센터를 전면 개편해, 아시아권 소비자 맞춤 서비스를 확대했다. 쁘랭땅은 긴 추석 연휴를 맞은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추석맞이 경품 이벤트'라고 적힌 한국어 리플릿까지 준비했다. 

또 쁘랭땅 관계자는 “한국 고객은 명절과 휴가 시기별 소비 패턴이 뚜렷하다”며 “올해도 추석 시즌에 맞춰 한글 리플릿과 기획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고 적힌 한국어 리플릿이 쁘랭땅 백화점 입구와 리셉션에 비치돼 있다./사진=김선주 기자

계산대에서 한국어로 소통해 주는 라파예트

갤러리 라파예트는 1893년 아르망 쇼몽(Armand Chaussois)과 테오필 바더(Théophile Bader)가 창립한 백화점으로, 현재 프랑스 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 체인이다.

파리 오스망 본점은 매년 약 370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에펠탑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상징적 명소로 꼽힌다. 꼭대기층으로 나가 백화점 옥상에서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내다볼 수 있도록 옥상을 전면 개방한 것도 한 몫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라파예트 옥상에 올라가 한 눈에 보이는 파리 시내와 인증 사진을 찍는다. 모두에게 개방돼 발 디딜 틈도 없지만 휠체어가 들어서도 서로가 양보하고 미소를 건네면서 각자의 사진 찍는 시간을 존중해 준다./사진=김선주 기자 
남녀노소 모두가 라파예트 옥상에 올라가 한 눈에 보이는 파리 시내와 인증 사진을 찍는다. 모두에게 개방돼 발 디딜 틈도 없지만 휠체어가 들어서도 서로가 양보하고 미소를 건네면서 각자의 사진 찍는 시간을 존중해 준다./사진=김선주 기자 

1900년대 초 유리 돔이 설치된 후, 라파예트는 '쇼핑의 성당'이라 불리며 파리 유통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루이비통, 샤넬, 디올 등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가 집중된 명품관(Lafayette Coupole)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2023년에는 명품 남성관 ‘라파예트 옴므(Lafayette Homme)’를 리뉴얼 오픈해 젊은 세대와 아시아 고객을 겨냥했다.

라파예트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다국어 결제·서비스 지원을 강조하고 있으며, 한국 브랜드 팝업존 등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마케팅도 확인된다.

계산대에서는 직원이 한국말로 "쇼핑백 필요하세요?"라고 묻기도 한다. 유료인지 물으니 "공짜"라고 답변까지 해준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한국 관광객의 높은 구매력이 한 몫 한다. 야놀자 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한국인의 해외여행 1인당 평균 지출액은 1012달러(약 140만원)로, 관광 업계에서는 “한국 고객은 방문객 수보다 구매 규모가 크다”고 평가한다.

갤러리 라파예트 파리 오스망 본점의 모습. 1900년대 초 유리 돔이 설치된 후, 라파예트는 '쇼핑의 성당'이라 불린다./사진=김선주 기자
갤러리 라파예트 파리 오스망 본점의 모습. 1900년대 초 유리 돔이 설치된 후, 라파예트는 '쇼핑의 성당'이라 불린다./사진=김선주 기자

정제된 서울 백화점, 시장 같은 파리 백화점

서울에서 백화점에 가면 자연스레 어깨가 곧아진다. 바닥은 반짝이고, 향도 정돈돼 있다. 직원의 인사까지도 일정하다. '품격 있는 서비스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만, 막상 들어서면 긴장된다. 옷차림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말투도 조심하게 된다.

이에 반해 파리 백화점은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뒤섞인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다. 각국의 언어가 쏟아진다. 목청껏 통화하는 목소리, 매대 사이로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음마저 자연스럽고, 이런 혼잡함이 하나의 풍경처럼 어우러진다. '품격'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공간이었다.

서울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고객의 손끝 움직임까지 살핀다. "도와드릴까요?" 한 마디에 오히려 숨이 턱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눈을 맞춰도 미소만 건넨다. 먼저 다가오지 않고, 고객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존중'해 준다.

쁘랭땅 파리 오스망 본점에서는 명품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전시'돼 있다./사진=김선주 기자
쁘랭땅 파리 오스망 본점에서는 명품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전시'돼 있다./사진=김선주 기자

명품관의 모습도 다르다. 서울에서는 묘한 사회적 공기가 맴돈다. 또 일반 브랜드와 다른 번쩍거리는 외관에 무심코 들어갈 엄두를 못 내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자 프리미엄 이미지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 명품관은 애초에 모두가 드나들 수 있도록 오픈돼 있다. 프랑스는 명품을 자국의 문화유산처럼 대해 문화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 "이건 올해 파리 장인이 만든 가죽이에요"와 같은 '공예'와 '감각'에 대해 설명한다. 과시가 아닌 문화의 연속선인 것이다.

계산대에서의 모습도 다르다. 한국 백화점의 계산대는 숨이 가쁠 정도로 분주하다. 빠르게 계산을 하고 포장 리본 각도까지 맞춘다. 정확하게, 효율적이게 끝난다. 하지만 프랑스 백화점에서는 결제조차 여유롭다. "빨리 좀 해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정도다. 직원은 포장을 하면서도 고객에게 말을 건다. 계산대의 줄이 길어도 초조해 하는 건 나 하나뿐이다. 모두 여유롭게 시간을 들이는 쇼핑을 하고 있었다.

라파예트 마감 시간 무렵, 급하게 결제하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6층 기념품 매장에는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매대 사이에 작은 쥐 한 마리가 지나갔다. 한국 백화점이었다면 뉴스 1면을 장식했을 법했지만 여기선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모두가 태연했고 미소를 지었다. 

서울 백화점이 정교함의 미학이라면 파리 백화점은 헐거운 불완전함의 여유다. 공간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이자 각국의 사람들이 '품격'을 정의하는 방식의 차이로 보인다.

디지털 전환에 속도 내는 프랑스 백화점들

쇼핑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여행 일정 중 반드시 백화점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주요 백화점들의 ‘고객 모시기’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의 유럽 럭셔리시장 분석에서는 '프랑스 럭셔리 시장의 약 60%가 관광객 소비에 의해 주도된다'는 설명이다.

갤러리 라파예트는 2024년 매출 중 관광객 매출 비중이 47%, 쁘랭땅은 40% 이상으로 회복하며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양사 모두 AI 기반 ‘쇼핑 어시스턴트’, 다국어 환급 키오스크, 모바일 쿠폰 결제 등 디지털 전환(Digital Retail)을 적극 도입하는 모습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백화점들이 단순 관광지 역할을 넘어, 한류 소비문화와 결합한 글로벌 럭셔리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며 “한국인 고객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결제 방식·서비스 품질에도 민감한 만큼, 앞으로 한글 안내·한국형 결제시스템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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