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BMW 등 글로벌 기업, 내연차 강화 의지 발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 전환 속도 ↓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신차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인한 영향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좋은 차종에 더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 전기차 전환 과정이 순탄치 않은 만큼 내연기관 시장 재공략을 통해 기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 포르쉐, BMW,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S&P글로벌모빌리티에 따르면 올해 출시된 신형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가 지난해보다 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기간 동안 내연기관은 4% 줄어든 205개 차종, 하이브리드는 43% 늘어난 116개 차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연합(EU)은 올해 완성차 업체들이 전체 매연 배출을 2021년에 비해 15%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가솔린과 디젤 신차 출시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BMW가 해당 방침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등 업체들은 당국에 더 유연한 규제를 요청하고 있다.
벤츠, 볼보, 르노 등은 까다로운 매연 배출 규제에 더해 글로벌 관세전쟁 우려로 올해 실적 목표를 낮추고 있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에 더욱 기대를 걸어야하는 상황이다.
루카 데메오 르노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에서 EV(전기차) 기술이 주류로 자리 잡는데 20년은 걸릴 것"이라며 "내연기관차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벤츠는 올해부터 2027년 사이에 내연기관차는 19종, 순수전기차는 17종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올라 켈레니우스 벤츠 CEO는 "2030년까지도 전기차가 시장을 독점하지 못한다면 수익성 좋은 내연기관차 출시를 줄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런 결정은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내연기관차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벤츠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198만3400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3% 줄었지만 순수전기차(BEV)의 경우 18만5100대로 전년 대비 23%감소했다.
이 때문인지 실적도 떨어졌다. 벤츠는 지난해 매출액 1456억 유로로, 전년 대비 4.5% 줄었다. 영업이익도 97억유로에서 136억 유로로 약 31%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요헨 골러 BMW그룹 고객·브랜드·세일즈 부회장은 "미국 행정부 정책 변화로 향후 수년 동안 미국에서 전기차 수요가 둔화할 수 있다”라며 "전기차 전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제너럴모터스(GM)와 포르쉐, BMW, 볼보, 토요타 등도 전동화 전환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포르쉐는 지난해 전기차인 타이칸 판매가 49% 감소하자 EV 판매전략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가솔린 신차와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8억 유로(약 1조200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폴 제이컵슨 GM CFO는 "내연기관차 판매 이익이 오래동안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계속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보도 지난해 말 오는 2030년까지 모든 차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10%는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기로 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내연기관 투자 확대 배경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정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유세 당시 '내연기관 부활'과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폐지' 등 전기차 시장을 후퇴시키는 발언들을 해왔다. 최근에는 전기차 충전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중국이 저가 정책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전환을 늦추는 요소로 풀이된다.
에너지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업체 BYD는 지난해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등 총 413만7000대를 판매하며 테슬라를 재치고 1위에 올랐다.
이항구 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자동차 업체들이 내연기관 차에 투자를 재개하고 있지만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전기차 분야를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업체들의 투자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