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 기획특집] ⑥"효율 없인 못 버틴다"···생존전략 된 에너지 절약

고물가, 고금리, 고에너지 비용이라는 '3고(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건설·철강·물류·유통 업계는 '에너지 절약'을 생존 전략으로 삼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한 부수적 수단에 불과했던 에너지 효율화가 사업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50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규제가 강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요구가 높아지면서, 에너지 절약 없이는 버티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에너지 절약은 곧 비용 절감···필수 생존 전략 부상

'2050탄소중립' 과제, 이에 따른 에너지 절약 노력이 회사 '필수 생존전략'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건설업계에선 에너지 비용이 공사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철근, 시멘트 같은 주요 자재 가격은 상승했고 전력·연료비 부담도 급격히 늘었다. 에너지 절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연유다. 

대형 건설사는 스마트 건설 기술을 도입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스마트 현장관리 시스템'을 통해 건설 현장의 전기 사용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비효율적인 장비 운용을 개선해 30%까지 에너지를 절약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에너지 제로 오피스' 콘셉트의 복합단지를 수주했다. 고성능 단열재, 이중외피(더블스킨) 시스템을 적용하고 건물 전체에 태양광 패널과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연간 에너지 소모량을 40% 이상 줄였다.

현대건설은 설계 단계부터 건물의 에너지 흐름을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적용했다. 건축물의 일사량, 풍향, 온도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단열 및 환기 구조를 설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AI 기반 에너지 최적화 솔루션'을 도입해 공사 현장의 냉난방, 조명 시스템을 자동 제어하고 있다"며 "날씨 데이터, 작업량 예측 등을 분석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업종인 철강업계도 에너지 절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자재를 녹이고 다루는 제련 과정은 상당한 전기와 열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 등 근본적 공정 전환을 통해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노력도 시작했다. 고효율 설비 도입과 공정 혁신을 통해 에너지 절약에 사활을 걸고 있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적용했다. 공정별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에 따라 자동 조절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15%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냈다. 2030년대 중반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환원제철 파일럿을 가동 중이다. 혁신이 성공하면 철강 생산에서 석탄 코크스 사용이 대폭 줄어 에너지 효율과 탄소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현대제철은 전기로 제강공정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생산설비에 고효율 모터를 적용해 전력 소모량을 대폭 낮췄다. 부산물 가스를 회수해 발전에 재활용하는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였다. 전기로 전환 및 수소 활용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스코ICT 같은 철강계열 IT기업들은 에너지효율 솔루션을 상품화해 외부 철강사나 시멘트사에 공급하는 신사업도 벌이고 있다​.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포항의 한 주조공장에 적용한 결과 분진 재활용률 25% 개선과 연간 2억3000만 원의 에너지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철강사를 비롯한 에너지다소비 업종은 에너지 효율화를 생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효율 개선 없이는 글로벌시장에서 무역장벽에 직면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공정 설비의 지속 투자,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단위 생산당 에너지 투입을 줄이고, 제품 생산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낮추는 것이 글로벌시장에서 살아남는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제 철강 가격 변동성과 탄소중립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에너지 효율은 생존 문제로 직결됐다"며 "생산량 확대보다 에너지 단위당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업계도 마찬가지다. 고유가 시대 차량 연료비, 창고 냉난방 비용 등이 폭등하면서 에너지 절약을 포함한 비용절감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같은 물류 기업들이 친환경차량 전환과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물류업계는 전기 트럭, 수소 트럭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한 연료비 절감뿐만 아니라 ESG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유통업계 또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내놓고 에너지 절약을 실현하고 있다. 유통매장이 전국 단위로 퍼져 있는 만큼, 개별 매장 에너지 절감을 통해 전체 경영비용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스마트 조명 시스템 도입, 냉난방 자동화, 고효율 설비 교체 등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건설·스마트 물류센터 등···에너지 절감 실현

업계의 노력은 '에너지 절감 실현'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다양한 친환경 공법, 시스템 등을 통해 환경도 생각하고 회사도 생존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우선 건설업계에선 친환경 건설기법을 적극 활용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기존 건설 방식을 탈피해 건축물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하는 '제로에너지 빌딩'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고단열 외장재, 고성능 창호, 태양광 패널, 지열 냉난방 시스템 등을 적용해 건물 자체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SK에코플랜트가 시공한 판교 지식산업센터는 일반 건물보다 에너지 소비량을 40% 이상 절감하면서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실용적인 에너지 사용 감축 건축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포스코이앤씨는 '모듈러 공법'을 활용 중이다. 공장에서 제작한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장비 가동시간과 에너지 사용도 크게 줄었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모듈러 공법으로 건설 공정 중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50% 이상 줄일 수 있다"며 "고효율, 친환경 공법으로 경쟁력을 더욱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통·물류 산업에서도 에너지 효율화가 비용 절감과 서비스 향상으로 직결돼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쿠팡은 방대한 물류센터와 배송망을 운영하면서 효율 극대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주문이 들어오면 단 몇 초 만에 최적의 배송트럭 적재 위치와 배송 경로를 산출해내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물류센터 작업자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차량별 최적 경로를 찾아 배차해 배송 차량 이동 거리와 시간당 처리 물량을 크게 개선했다. AI 기반 물류 최적화 덕분에 배송 효율을 높여 물류센터 운영에너지와 차량 연료 사용을 20% 이상 절감했다​.

전기화물차와 수소트럭 도입에도 앞장서 2019년부터 전기배송차를 투입했고 2022년부터는 수소화물차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쿠팡은 전국에 전기차 통합 배송거점을 구축해 배송차 충전 인프라와 적재 시스템을 통합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물류센터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재생에너지로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친환경 물류 전략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비용을 절감했다.

경쟁사인 CJ대한통운, 한진 등도 친환경 물류 전환에 동참해 전기택배차 보급, 자동화 분류 로봇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배송뿐 아니라 매장 유통 분야에서도 대형마트와 편의점들이 냉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태양광 자가발전, 고효율 LED 조명, 수요반응형 HVAC제어 등을 적용하고 있다.

이마트는 전국 매장에 고효율 LED 조명을 100% 교체 완료했다. 기존 조명보다 에너지 소비량을 50%까지 절감했으며, 점포 내 냉장·냉동 시스템도 고효율 장비로 교체했다. '스마트 에너지 관리 플랫폼'을 도입해 매장별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연간 약 8000톤 규모로 탄소 배출을 감축했다.

롯데쇼핑은 백화점과 아울렛에 '에너지 제로화' 매장을 목표로 다양한 기술을 도입했다. 태양광 발전, 지열 냉난방,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일부 점포는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인증을 추진 중이다.

물류업계에서는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에 한창이다. 스마트 물류센터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시설이다.

쿠팡은 대규모 물류센터에 자체 발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린 딜리버리' 프로젝트를 통해 배송 차량 전기화율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친환경 전기밴을 대폭 확대해 연간 연료비를 수십억 원까지 절감했다.

CJ대한통운은 수도권 주요 거점에 건설 중인 '메가허브터미널'에 에너지 절감 설비를 적용했다. 고효율 조명, 스마트 냉난방 제어시스템, 태양광 발전 설비 등이 도입됐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AI가 물류 흐름을 분석해 냉난방기를 자동 조정하고, 필요 없는 구역은 자동으로 조명을 끈다"며 "에너지 시스템 도입으로 유지 비용을 약 20% 절감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식품업계 최초로 생산하는 제품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체계적으로 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넷제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넷제로(Net-Zero) 전략뿐만 아니라 수자원과 플라스틱 사용량을 관리하는 네이처포지티브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넷제로 시스템 구축은 지속가능식품의 환경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탄소배출량을 개선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탄소 저감 활동을 통해 넷제로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에너지 절약은 '경쟁력'과 직결···"선택 아닌 생존"

건설·철강·물류·유통업계가 에너지 절약에 사활을 거는 이유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환경 캠페인' 차원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절감하느냐가 곧 기업 원가경쟁력, 더 나아가 시장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에너지를 아끼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절약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업계 간 격차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관리 시스템, 고효율 장비, 친환경 설계 등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비용 부담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에너지 절약 노력이 없으면 공사비 상승은 견딜 수 없게 된 상황까지 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친환경 기준이 수주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성은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라고 강조했다.

철강업계는 "에너지 절약은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사업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며 "업계 전반에 걸쳐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투자와 혁신이 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류업계는 "연료비 부담이 워낙 커져 에너지 절약 없이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며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업만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전기요금 인상과 탄소중립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에너지 절감 없이는 수익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효율적인 냉난방 시스템 구축, 조명 교체, 물류 과정 최적화까지 전방위적인 에너지 전략이 유통업계 생존 열쇠"라고 했다. 

에너지 효율화는 탄소중립시대 기업 경쟁력의 척도다. 각국 정부의 환경규제와 탄소비용 부과가 강화됨에 따라, 에너지 다소비·비효율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커졌다. 반대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 기업은 글로벌 발주처로부터 선택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EU의 탄소국경세가 2026년부터 철강·알루미늄 등에 본격 부과되면, 제품 생산 시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이 적은 기업만 추가 비용 없이 수출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 높은 기업이 수출 경쟁력이 높은 기업이 되는 것이다.

국내 산업계도 에너지 효율을 최상위 과제로 올리는 분위기다. 에너지 담당 임원을 신설하거나, 사내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사적으로 벌이는 기업이 대폭 늘었다.

기업들이 산업별 에너지협의체를 구성해 공동기술 개발과 정보공유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정부도 산업 부문에 2030년까지 38% 에너지효율 개선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의무화할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주력기업의 에너지 효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나, 지속적인 혁신 없이는 정체기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전방위 에너지 효율 혁신을 이뤄낼 때, 탄소중립 전환의 비용 부담도 줄이고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생존 전략임이 분명하다. 탄소를 줄여야 수출할 수 있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시장에서 살아남는 시대다.

에너지 효율화는 비용 절감이 아니다.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똑똑하게 에너지를 쓰는 기업만 생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