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에 따라 '선수'만 바뀔 뿐···39조 적자 해소할 '게임룰' 바꿔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구조 그대로면 적자 재발 시간문제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 한국전력공사(한전)가 9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역대급 적자'라는 수식어를 떼어낸 듯 보이지만, 한전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연료비 급등기에 발생한 영업적자 가운데 아직 메우지 못한 규모만 별도 기준으로 약 39조원에 달한다. 전기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발전사에서 사와 되파는 전력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흑자와 적자는 국제 연료가에 따라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9개 분기 연속 흑자 한전, 여전히 39조 적자 위에 서 있다
한전의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 연결 매출은 73조7465억원, 영업비용은 62조2051억원, 영업이익은 11조5414억원을 기록했다. 별도 기준으로는 매출 72조4684억원, 영업비용 66조9324억원, 영업이익 5조5360억원이다. 이로써 한전은 2023년 3분기를 기점으로 9개 분기 연속 연결 기준 영업이익 흑자를 이어가게 됐다.
다만 장부상의 흑자와 재무 체력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한전은 2021~2023년 연료비 급등으로 누적된 영업적자 47조8000억원(연료비 급등기 누적) 가운데 2025년 3분기 현재까지 8조7000억원가량만 메웠을 뿐이다. 연결 기준 누적 적자는 23조1000억원, 별도 기준 누적 적자는 39조1000억원으로 여전히 산처럼 남아 있다.
부채 부담도 만만치 않다. 2025년 3분기 기준 한전의 부채는 연결 기준 205조원, 별도 기준 118조6000억원 수준이다. 차입금 잔액만 86조1000억원으로 연결 기준 하루 이자비용은 약 120억원, 별도 기준으로도 약 7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상당 부분이 이자 지급과 부채 상환, 필수 설비 투자로 흡수되는 구조다.
한전은 2024년 이후 이익 개선분 가운데 상당 부분이 비용 절감·재무 구조 조정 등 내부 자구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전기요금 인상, 연료비 안정, 자구노력'으로 손익계산서 상의 숫자를 흑자로 돌려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무상태표에 쌓인 39조원대 누적 적자와 200조원대 부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상과 국제 연료비 하락이 아니었다면 흑자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외부 변수에 기대 실적이 개선됐을 뿐, 전기를 사서 파는 현재의 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연료비 방향에 따라 흑자와 적자가 다시 뒤바뀌는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SMP 구조
한전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 구조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SMP는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발전소 중, 마지막에 투입되는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자원 단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쉽게 말해 동네 축제 주최 측이 한전, 의자를 빌려주는 세 곳의 대여점이 발전소라고 가정해보자.
축제를 열기 위해 필요한 의자는 모두 100개다. A 창고는 개당 100원에 50개를 빌려줄 수 있고(원자력·석탄처럼 저렴한 발전원), B 가게는 개당 300원에 30개를, C 업체는 개당 500원에 20개를 내놓는다(LNG, 비교적 비싼 설비에 해당한다).
당연히 주최 측은 가장 싼 곳부터 의자를 빌린다. 먼저 A 창고에서 50개를 빌려오고, 부족분 50개를 채우기 위해 다음으로 싼 B 가게에서 30개를 가져온다. 그래도 20개가 모자라기 때문에 결국 가장 비싼 C 업체에서 남은 20개를 빌려야 100개를 맞출 수 있다.
핵심은 그 다음이다. 한 번 SMP가 500원으로 정해지면, 이 가격은 C 업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빌려준 모든 곳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A 창고는 원가 100원에 의자를 빌려주지만 시장 가격 500원을 받으니 의자 한 개당 400원을 남기고, B 가게 역시 원가 300원에 500원을 받아 개당 200원을 이익으로 챙긴다. C 업체는 가장 비싼 500원에 공급하지만,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 구조다.
이 방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만약 A 창고의 100원을 기준으로 모든 대여점에 똑같이 돈을 준다면 B 가게와 C 업체는 "그 값이면 빌려줄 수 없다"며 시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축제를 위해 필요한 100개를 채우지 못하고, 전력시장으로 치면 정전 위험이 커진다. 반대로 시장 가격이 가장 비싼 C 업체의 수준으로 맞춰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원가가 싼 A 창고·B 가게는 "어차피 500원을 받을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최대한 먼저 빌려주자"고 움직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싼 자원이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효과가 유지된다.
이 구조 덕분에 어떤 발전기도 손해를 보지 않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지만 연료비가 급등하는 순간 SMP가 통째로 치솟으면서 한전의 전력구입비도 함께 폭등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지금 논란이 되는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역마진'의 출발점이 바로 이 SMP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간 LNG 발전사의 '황금기'와 뒤집힌 판
이 같은 구조는 에너지 위기 시기 한전과 민간 발전사의 실적을 극명하게 갈라놓기도 했다. 국제 LNG 가격이 치솟았던 2022~2023년, SMP 급등의 수혜를 탄 SK E&S·GS EPS 등 민간 LNG 발전사들은 사상 최대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한전은 고가의 SMP로 전력을 사와 규제된 소매요금으로 판매하면서 수십조원대 적자를 떠안았다.
연료비가 안정된 2024년 이후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다. SMP가 하락하며 한전의 구입비 부담은 줄었고, 민간 발전사의 이익은 2022년의 기록적인 이익에서 안정적인 영업이익 수준으로 돌아왔다.
핵심은 SMP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 연료비 변동에 따라 한전은 적자를, 민간은 흑자를 보는 비대칭성이 언제든 재연된다.

"시장 안 바꾸면 '엇갈린 실적' 언제든 재연"
전문가들은 이번 한전 흑자를 단순한 경영 정상화가 아니라, 향후 전력시장 개편의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는 "지금의 흑자는 연료비 하락과 요금 인상이라는 외부 변수에 기대고 있어 다시 연료비가 오르면 언제든 적자로 돌아설 수 있는 구조"라며 "핵심은 가격 신호를 제대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해법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전기요금 결정 거버넌스를 정치·선거 주기에서 분리한 독립 기구로 재편해, 연료비·환율·기후 정책 목표를 일관되게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요금 인상·동결을 둘러싼 정치 논리가 매번 개입한다면 한전 재무 개선과 에너지 전환 중 어느 쪽도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가격 메커니즘의 전면 재설계가 꼽힌다. 마지막 의자 값(SMP) 하나로만 정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발전소가 망하지 않도록 기본급을 보장하는 장치(용량요금)와 한전 자회사 발전소의 과도한 이익을 조정하는 장치(정산조정계수)를 포함해 시장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분산형 에너지,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수요가 동시에 늘어나는 에너지 전환 시점에서 전력시장 개방과 가격 신호 복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분산전원이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해야, 전기요금이 시간, 지역별 수급 상황을 제대로 비출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소비자도 '언제, 어디서 전기를 얼마나 쓸지'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김경식 대표는 "지역이 주도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체계로 가야 진짜 에너지 효율화와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며 "에너지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효율화도 없고, 미래도 없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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