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국가···전력 소비 많은 체질
효율화 전략의 핵심 '가격 신호' 복원
지역이 주도, 소비자가 선택하는 체계로 가야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사진=이장혁기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사진=이장혁기자

에너지 효율화는 선택이 아니다. 비용 절감, 기후 대응, 수출 경쟁력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이며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다. 생산비 절감, 에너지 수입 의존도 축소,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력 강화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철강·반도체 등 에너지 다소비 구조다. 에너지 집약도는 OECD 상위권, 1인당 소비는 독일보다 두 배나 높다. 에너지 효율을 개선해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탄소세 도입 등 외부 충격에 맞설 수 있다. 정부도 2030년까지 에너지 효율 38% 개선, 총에너지 소비 14.4% 감축을 목표로 세웠지만 이미 미국이나 EU는 데이터센터 전력 재생에너지 의무화, 스마트그리드 구축, 고효율 설비 의무 도입 등 선제 대응에 나섰다. 스마트에프앤은 창간 7주년 기획특집으로 에너지 효율화가 왜 국가경쟁력인지를 구체적 사례와 데이터로 입증하고 AI시대의 전력 위기, 지역 요금제 개편, 분산형 에너지 거래, 정부의 미래 전략, 금융권의 대응, 산업별 혁신 사례까지 심층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에너지체계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AI시대 급부상,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산이 맞물리면서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는 "제대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한국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구조의 특수성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국가다.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같은 전력 다소비 산업이 경제를 이끌어왔다. 이런 산업구조가 우리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전력 소비가 많은 체질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전기요금 체계까지 정치적으로 통제되다 보니, 전기에 수급원리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기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억누르면서 비효율을 키워왔다. 피크 시간대에도 전기를 아끼려는 유인이 없고, 싸더라도 수요가 집중되지 못하는 구조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멕시코만 전력이 독점구조다. 전력시장이 개방된 다른 모든 나라들은 산업용 요금이 주택용 요금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산업용은 전력 수요패턴이 일정해서 피크관리를 위한 첨두 설비가 필요없고, 고압 송전으로 전력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SMP(System Marginal Price, 계통한계가격) 문제도 짚었다. 

SMP는 전력 시장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 중, 가장 마지막에 전기를 공급하게 되는 발전소의 전기 생산 단가를 기준으로 전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다. 쉽게 말해, 전기를 생산하는 여러 발전소들 가운데, 필요한 전력량을 채우기 위해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 전기를 만든 발전소의 가격이 SMP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발전소는 30원, 또 다른 발전소는 60원의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한다면,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60원짜리 발전소까지 전기를 공급하게 될 경우, 모든 발전소는 60원을 기준으로 전기 판매 대금을 받게 된다. 발전소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전기를 생산하도록 유도하면서도, 시장 전체의 효율적인 전력 생산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연료비 급등 등으로 인해 SMP가 크게 오르며 전기요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매가격 결정 원리로 SMP를 도입했는데, 이는 발전단가가 높은 발전기가 한 대라도 계통에 들어오면 전체 발전량이 그 가격을 따라가게 돼 있다. 이 구조 때문에 전력시장에서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전력 소비와 투자 판단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인다."

AI 산업 성장과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 우려도 제기했다.

"지금처럼 고정된 요금 체계로는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효율화 전략의 핵심은 가격 신호를 복원하는 것이다. 실시간 전력 요금제를 도입해, 전기가 비쌀 때는 절약하고, 쌀 때는 소비를 늘리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분산형 에너지 해법을 유럽에서 찾았다.

"분산형 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단순히 발전소만 늘린다고 해결할 수 없다. 핵심은 배전망 운영의 중립성 확보다. 독일이나 영국 등 전력시장이 자유화된 나라는 배전망운영자(DSO)를 별도로 둬 송전, 배전, 판매를 철저히 분리하면서 재생에너지 확산이 빨라질 수 있었다. 우리는 한전이 배전망을 독점하고 있어 분산형 에너지 확산에 한계가 있다."

최근 통과된 '분산에너지법'도 언급했다. 분산특구 공모에 11개 지자체 출사표를 던졌다. 6월 중순 쯤 확정될 예정이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규제는 많고 인센티브는 부족하다. 특화지역 내 직거래를 강제하면서 계약 정보를 산업부와 한전에 제출하게 하는 조항이 있다. 영업기밀을 경쟁자에게 제공하는 것과 같다."

이어 "직거래를 하더라도 송배전망은 무조건 한전 망을 이용해야 하고, 자체 증설은 불가능하게 막아놨다. 제대로 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사진=이장혁기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사진=이장혁기자

전력 직거래를 더 빠르게 도입한 해외시장은 어떨까.

"영국, 일본 등 OECD 국가 대부분은 1990년대 초 전력시장을 개방했다. 시행 초기엔 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비자 선택권이 크게 확대됐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도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전기를 여전히 공공재로 보는 프레임을 지적하며 "빠른 시장 전환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이행도 문제다.

"RE100을 달성하려면 기업들이 전력구매계약(PPA)를 체결해야 하는데, 한국은 PPA 요금이 SMP와 연계되어 있어 전기요금의 변동성이 너무 큰 구조다. 따라서 기업들이 RE100 참여를 꺼리게 되고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소와 재생에너지 전환에도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서 상용화된 수소 대부분은 개질수소다.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수소를 친환경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

진짜 그린수소로 전환하려면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분해 수소 생산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배출권거래제 같은 시장 기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별 전기요금제(LMP) 도입에 대해서도 짚었다.

"정부는 송전 혼잡비용을 반영해 지역별 전기요금을 다르게 하겠다고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불균형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수도권 집중이 더 심해지고 지방 투자자는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김경식 대표는 저서《착한 자본의 탄생》에서 에너지위기, 전력시장 개방, 수소경제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과 해답을 제시했다. /사진=교보문고
김경식 대표는 저서《착한 자본의 탄생》에서 에너지위기, 전력시장 개방, 수소경제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과 해답을 제시했다. /사진=교보문고

녹색 금융도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은 PPA를 통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장기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금융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서 에너지 산업이 성장하는 것이다. 한국은 금융기관들이 전력산업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 상태로는 에너지 전환도, 산업 경쟁력 강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역이 주도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체계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에너지 효율화가 가능하고, 탄소중립 목표도 현실이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일성이다.

"에너지(전력)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효율화도 없고 미래도 없다. 지금 결단해야 한다. 이걸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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