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폭탄, 철강 실적 반등에 제동, 구조적 대응 불가피
포스코, 글로벌 다변화에도 일부 제품 타격
현대제철, 직접적인 충격권···강관 수출 의존도 높아

US스틸 공장 연설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
US스틸 공장 연설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

글로벌 수요 회복과 원자재 가격 안정으로 실적 반등 조짐을 보이던 국내 철강업계가 다시 위기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리며 철강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US스틸 공장에서 열린 연설에서 관세 인상 방침을 밝혔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6월 4일부터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산업을 다시 강하게 만들기 위해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엄포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3일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율을 50%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고 인상된 관세율은 6월 4일부터 발효됐다.

25% 관세만으로도 철강업계는 타격이 컸는데 50% 관세가 현실화되면서 자동차용 강판, 강관, 냉연강판 등 고부가가치 수출품의 미국시장 접근이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국 철강 수입국 중 4위다. 전체 수출의 13%가 미국에서 소화된다.

대미 수출 비중 높은 품목 직격탄···강관·자동차 강판 타격 불가피

품목별로는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현대차·기아의 북미 공장에 공급되는 자동차용 강판은 수익성이 높은 전략 제품이며, 미국 셰일가스 산업과 연계된 구조용 강관 또한 수출 비중이 높다. 냉연 및 도금강판 역시 가전과 산업용 수요를 중심으로 미국 수출이 활발한 주요 제품군이다.

세아제강, 휴스틸 같은 강관 전문기업은 전체 매출의 30~4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관세 인상으로 대미 수출이 사실상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5% 관세도 겨우 흡수하며 버텨온 상황에서 50%까지 인상되면 현실적으로 미국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인상하기로 한 50% 관세가 발효된 4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연합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인상하기로 한 50% 관세가 발효된 4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연합

포스코, 글로벌 다변화에도 일부 제품 타격

포스코는 국내 철강업계 중 가장 글로벌화된 공급망을 구축했다. 수출 지역이 분산돼 있어 미국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자동차 강판 같은 일부 고부가 제품은 여전히 미국시장 비중이 높다.

2024년 1분기 포스코는 매출 20조4952억 원, 영업이익 1조249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약 59% 증가하며 실적 반등 흐름을 보였지만, 미국 수출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일부 제품군의 실적이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스코는 미국에서 가공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출 중심 구조에서 점차 '현지 생산·가공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 중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함께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며, 중장기적으로 미국에 고급 강재 생산 기반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미국 생산 확장은 수조 원대의 투자와 최소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현대제철, 직접적인 충격권···강관 수출 의존도 높아

트럼프 관세에 가장 민감한 곳은 현대제철이다. 자동차용 강판은 물론, 구조용 강관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아 관세율이 상승하면서 직접적인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1분기 현대제철은 매출 6조6856억 원, 영업이익 2110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철강재 수요 회복과 원가 안정에 힘입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냈지만 미국시장 비중이 높은 제품군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경우, 하반기 실적 둔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

현대제철은 포스코와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공동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관세 회피와 현지 수요 대응을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지만, 착공과 운영까지는 최소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이 관세 대응의 유일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중견·중소 업체들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며 "지금과 같은 무역환경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생존 구조가 더 고착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적 재편 기로에 선 철강산업···기회도 있다

철강업계는 단기적 수출 충격을 넘는 구조적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심의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의 확대, 고탄소 제품에 대한 규제 강화 등 외부 환경 변화가 잇따르는 가운데, 단기 대응을 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는 철강산업을 둘러싼 국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고부가·친환경 철강 중심의 전략 전환과 시장 다변화 없이는 장기적으로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고강도·경량 소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풍력, 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강재 수요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친환경 강재와 이차전지 소재, 전기강판 등의 기술력에서 앞서 있는 국내 철강기업들이 적극 대응할 경우, 관세 위기가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장벽은 높아졌지만, 한국의 철강기술은 여전하다. 숫자가 아닌 전략, 속도가 아닌 방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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