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 국가 균형 발전 계획 일환
한국부동산원, 대구 이전 후 부동산 기반산업 활성화 효과
이 대통령 "HMM 부산 이전 할 것"···대선 공약 현실화?

2000년대 초, 정부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고 지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을 본격화했다. 단발성 행정 조치가 아니라 국가 균형 발전 계획의 일환이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남 나주로, 한국도로공사는 경북 김천으로, 한국부동산원은 대구로 본사를 옮기면서 각 지역의 성장 동력을 재편했다.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들은 혁신도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계획 속에 흡수돼 지역 산업과의 연계로 자립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과의 협업 구조 만들기를 시도했고, 일정 부분에선 실질적인 성과도 나타났다.
특정 기관의 이전은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남겼다. 한국부동산원은 대구로 본사를 옮긴 뒤 대구지역 부동산 기반산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경영 효율성과 수익성 면에서도 서울에 본사가 있던 시절보다 나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기관은 기대했던 만큼의 시너지를 만들지 못하거나 지역 정착에 실패한 사례도 있었지만, 이전이 단순히 상징적인 조치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재편과 연계될 때 실효성이 분명히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이 남긴 중요한 교훈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이런 사례들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HMM의 부산 이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해운물류산업의 대표 주자인 HMM은 본사가 서울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약 70%의 지분을 가진 사실상 준공공기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겠다는 국가 비전 아래 HMM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HMM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양수산부, 해사법원, 해운항만 관련 공기업 등도 부산 이전 및 유치를 기대하고 있어 가능하다면 해양물류 클러스터 완성이 가속화될 수 있다.
부산은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국제 항만도시이며, 세계 6위 규모의 부산항은 한국 해운산업의 중심이다. HMM이 본사를 부산에 둔다면 선박 운영, 항만 물류, 선박금융 같은 해운 생태계가 한 지역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업무 효율성과 정보 접근성, 의사결정의 민첩성 측면에서 글로벌 해운사와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서울 중심의 '행정 중심 경영'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 경영'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본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당장의 편의성이나 기존 관행에선 유리할 수 있지만, 미래의 해운 패러다임은 복잡한 행정 네트워크보다 민첩한 현장 연결성, 지역 내 통합형 산업 구조에 더 무게가 실린다.
북극항로 개척, 글로벌 얼라이언스 재편, 친환경 선박 전환 같은 과제를 앞두고 있는 HMM에게 있어서는 사무실 주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기반을 새로 짜는 작업이 필요하다. 부산이라는 입지는 이런 변화에 가장 적합한 거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HMM 구성원 중 육상 사무직 노조는 이전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근무지 이전이 곧 생활권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자녀 교육, 배우자의 직장, 부모의 돌봄 문제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근무지가 바뀐다는 것이 지리적 이동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삶 전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문제로 연결되서다.
서울 본사 체제에서 축적된 대외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역시 그들에겐 중요한 자산이다. 기존 고객사, 금융기관, 글로벌 파트너 대부분이 서울이나 해외에 분포해 있는 만큼, 위치 변화가 경영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전 반대의 목소리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변화가 정당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구성원과의 사전 협의, 명확한 이전 계획, 직원 지원 대책 없이 공공기관 지분을 앞세워 이전을 정치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상장사의 자율성과 내부 민심 모두를 잃을 수 있다. 이전이 단순히 공약 실천의 수단이 아니라 기업, 지역, 국가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구조로 설계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많은 기관들이 정착에 성공했던 배경에는 이전을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산업 전략의 일환으로 바라본 인식 전환이 있었고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와 보완책 마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HMM의 부산 이전이 지역 산업 생태계와 어떻게 연결되고, 기존 구성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며, 어떤 방식으로 보완과 설계를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로드맵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다. 국가 해양 전략 퍼즐의 한 조각이다. 한국 해운산업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전략적 재배치이며, 동시에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물류 거점 구축이라는 국가 비전의 중요한 한 축이다.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득과 협의, 조율과 설계가 필요하다. 지역 균형 발전의 모범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 갈등의 불씨로 남을 수도 있다.
위치 이전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 속에서 기업과 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강행'이 아니라, '설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