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원유·LNG 확대 요구
사우디 아람코 지분과 충돌
정유사 중 최대 부담 전망

| 스마트에프엔 = 김동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미국산 원유와 LNG(액화천연가스) 구매 확대를 강하게 요청하면서 국내 정유업계가 신중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압박은 원유·LNG 수입 확대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포함하며, 장기적으로 한미 에너지 협력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맞물려 있다.

정유사들은 이번 사안이 기업 실적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정부 지시보다 자율적 판단을 강조하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민간 기업으로, 정부가 수입을 강제할 수는 없다"며 "미국산 원유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경우 자율적으로 도입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울산공장
에쓰오일 울산공장

에쓰오일, 사우디 의존 구조로 '이중 압박'

1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업계 중에서도 에쓰오일이 가장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쓰오일은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63%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원유 조달 역시 사우디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 요구는 곧 사우디와의 전략적 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비 문제도 겹친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의 울산·여수 공장은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으며, 미국산 셰일오일은 경질유가 대부분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면 최소 2조7000억~4조1000억원대의 설비 개조가 필요해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관계자는 "단순히 가격 조건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주와 공급망 구조가 얽혀 있어 미국산 확대에는 다른 정유사보다 훨씬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른 정유사들의 대응 여력

SK에너지를 비롯한 일부 정유사들은 고도화 설비를 갖추고 있어, 미국산 원유 도입 시 오히려 정제마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설비 유연성이 높아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가능하다. GS칼텍스는 초기 설비 투자 부담이 크지만 가격·운임 조건에 따라 선택적 도입이 가능하다.

반면 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와의 지분 관계와 공급망 특수성 때문에 단순히 경제적 판단만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정유사들은 미국산 확대를 전략적 선택지로 검토할 수 있지만, 에쓰오일은 사우디 의존 구조로 인해 정책·재무·외교적 부담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며 "국내 정유사 중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고 분석했다.

조달 다변화라는 장기 과제

현재 한국 원유 수입 비중은 중동 약 70%, 미국산 16~17% 수준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산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설비 개조와 운송비 부담이 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유 조달 다변화와 정제마진 개선이라는 구조적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번 압박을 단순한 부담으로만 볼 수 없다"며 "에쓰오일을 비롯한 정유사들이 기업 전략과 설비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산 원유 활용 가능성과 중동 의존도 감소라는 장기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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