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 땐 로켓! 내릴 땐 깃털?
가격 결정 구조 불투명···소비자, 폭리 의심
가격 투명성, 실시간 정보 공유, 시장 경쟁력 강화 필요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 국제 유가가 하락했다. 27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의 12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대비 0.30%(0.19달러) 내린 배럴당 61.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선물거래소의 2026년 1월물 브렌트유는 전날 대비 0.46%(0.30달러) 낮아진 배럴당 64.9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 및 기타 산유국 모임(OPEC+) 주요 산유국의 12월 산유량 결정 회의를 앞두고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제 유가의 하락에도 주유소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반대로 유가가 오를 때는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이른바 ‘로켓과 깃털 효과(오를 땐 로켓처럼, 내릴 땐 깃털처럼)가 작동하고 있어서다.
오를 땐 ‘로켓’, 내릴 땐 ‘깃털’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와 주유소는 도매가를 즉시 올리지만 하락할 땐 얘기가 다르다. 비싸게 들여온 재고를 싸게 팔면 손해란 이유로 가격 조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내 석유 유통망은 ‘정유사 → 도매 → 주유소 → 소비자’로 이어진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주유소에 공급하기까지 평균 2~3주가 걸린다. 기름을 받은 주유소는 재고 가격, 임대료, 물류비, 인건비 같은 요인을 적용한다.
국제 유가가 떨어져도 소비자는 한참 뒤에야 체감할 수 있지만 상승 신호는 하루 만에 기름값에 반영된다. 기존에 비싸게 들여온 기름을 싸게 팔면 손해본다는 이유로 가격을 내리지 않는것이다. “내릴 땐 늦고, 올릴 땐 빠르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가 하락 시 정유사와 주유소는 재고 소진, 유통 마진 유지 등 여러 이유로 즉각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존에 높은 가격에 들여온 재고가 남아있는 만큼, 재고를 소진하고 새로운 낮은 원가의 재고가 유통망에 도달할 때까지 시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시장 구조상 국제유가 상승 시 정유사뿐 아니라 주유소 단계의 재고, 운송비, 유통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반영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유가 변동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유가만 내린다고 가격이 내리는 건 아니다
휘발유 소비자가격 절반 이상은 세금이다. 교통세, 교육세, 부가세가 포함되며, 국제 유가가 떨어져도 세금은 거의 그대로다. 세금 구조가 고정된 이상, 원유 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 체감 하락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간헐적으로 유류세 인하 정책을 내놓지만, 그 효과가 소비자 주머니에 닿기까진 시차가 생긴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물류비·임대료·인건비 같은 고정비용이 계속 쌓인다. 국제 유가가 10% 내려도, 소비자가 느끼는 인하폭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리터당 약 1600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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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항목 |
주요 내용 |
비율(%)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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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부가세 등 |
55~60% |
정부가 부과하는 고정세로, 유가 변동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부과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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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공급가격(원유+정제비용) |
원유 도입비용 + 정제·운송비 + 정유사 마진 |
25~30% |
국제유가, 환율, 정제비용에 따라 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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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유통비용 |
물류비, 운송비, 지역 공급망 비용 |
5~10% |
지역·주유소 형태(직영/자영)에 따라 다름 |
보이지 않는 정보의 벽, 소비자 불신 키운다
소비자는 “왜 이렇게 비싼가”를 체감할 뿐,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정부는 석유공사의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Opinet)’을 통해 전국 주유소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만, 업데이트 속도가 늦고 실제 시장 반영과 시차가 크다. 국제 유가나 정유사 공급가가 바뀌어도, 소비자가 주유소 현장에서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가격 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항상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주유소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고 손실 방어, 유통비용, 낮은 마진 등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결과만을 본다.
가격 구조 투명성, 실시간 정보 공유, 시장 경쟁력 강화 필요
문제의 핵심은 ‘가격의 이유’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기름값이 왜 오르고, 왜 내리지 않는지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불신이 줄어든다. 유류세 구조와 유통 마진, 국제 유가 반영 시차를 국민이 쉽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유가 변동이 소비자에게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 가격 구조의 투명화와 정보의 실시간화, 그리고 시장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정유사부터 주유소까지 단계별 가격 변동 시점을 공개하고, 오피넷 등 유가 정보 시스템을 POS 단말기와 연동해 실시간으로 갱신하면 소비자들이 실제 가격 변화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중소 주유소의 경쟁 여건을 개선하고, 공급가 인하분을 빠르게 반영한 업체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제도적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유사와 주유소 간 공급가격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는 등의 노력은 하고 있으나, 당장 적용은 쉽지 않다”라며 “오피넷의 정보 반영 주기를 단축하는 등의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과 시장의 논리가 다른 한, 로켓과 깃털의 괴리는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