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제과업계의 잔업·압박·과로
현장 노동자들이 털어놓은 빵 만드는 사람들의 현실

| 스마트에프엔 = 김선주 기자 | 최근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장시간 노동 끝에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앞서 국내 대표 제빵 전문 식품회사에서는 연이어 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업계는 "또다시 반복되는 일"이라며 침통함을 드러냈다. 제과·베이커리 종사자들은 "사람이 빵을 만들고 팔기까지의 과정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과로가 있다"며 "문제는 몇 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런베뮤 사고 보자마자 10년째 똑같다는 생각에 슬펐다"
서울 강남권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뉴스를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런베뮤 사고 보자마자 '제과업계는 1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라는 생각에 슬퍼졌어요. 저는 개인 가게를 운영하니 제 페이스대로 조절이 되니까 다행이죠. 하지만 예전엔 저도 20대 때 과로사하기 싫어서 큰 매장이나 프랜차이즈는 피하고 작은 개인 카페만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A씨는 "개인이 운영하는 매장은 어찌 됐든 사장의 의지가 반영되지만, 프랜차이즈나 대형 기업은 구조 자체가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있지만, 정해진 퇴근은 없다"
프랜차이즈 제과 브랜드에서 근무 중인 B씨는 장시간 노동이 규정 위반이 아니라 '사내 문화와 업계 구조 그 자체'라고 했다.
"저는 주 5일인 곳을 일부러 골라 다녔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나 특수성이 있는 날엔 퇴근을 못 했죠. 정해진 업무 시간이 있어도 퇴근 시간 다가오면 '너가 일을 못해서 남은 할 일이 많다'며 눈치 줘요. 결국 안 보내요."
그는 특히 점장들의 과로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그래도 연장근무가 많이 줄었는데, 점장들은 여전히 퇴근을 못 해요. 매출 보고서 쓰고 직원 스케줄 짜고, 본부에 제출할 서류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죠. 발표하는 날엔 잠도 못 자는 점장이 많아요."
또 다른 문제는 생산 물량의 강제성이다.
"어떤 곳은 오픈하면 하루 최대 물량을 무조건 만들게 해요. 아무리 효율적으로 해도 정해진 시간 안에 절대 끝날 수 없는 양이죠."
"휴게시간은 휴게가 아니었다"
과거 유명 제과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C씨는 '열정페이'가 업계의 오래된 현실이라고 말했다. 열정페이라는 말 자체도 사뭇 오랜만에 들었다. 얼마나 시달렸기에 아직까지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기억할까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12시간씩 일했어요. 추가 수당은 당연히 없었고요. 계약서에는 10시간 근무에 2시간 휴게라 돼 있었는데, 실제로는 1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곤 전부 근무 시간이었어요.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이었고요."
그는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신고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사회초년생은 선배들 눈치 보느라, 그리고 그 회사 자체의 분위기가 수직적이면 그거에 눈치 보느라 못 한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사고, 반복되지 않는 변화
제과제빵업계에서 산업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한 유명 제빵 기업에서는 2022년 이후 공장 사망 사고가 여러 차례 이어져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장 종사자들은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 환경 자체는 변한 게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새벽 생산 체제, 고객 쏠림 시간대 집중 노동, 크리스마스·명절 등 시즌 폭증 물량, 가맹점주 인건비 부담, '빵은 항상 신선해야 한다'는 고객 기대가 맞물리며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종사자 대부분 "업계가 고급화되고 제품은 다양해졌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 환경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종사자들은 생산·판매 분리 시스템 도입, 시즌 물량 예측 및 인력 충원, 점장의 보고·행정 업무 축소, 가맹점 인건비 지원, 새벽 생산 의존도 완화 등이 현실적인 개선책이라고 말한다.
런베뮤 사건도 특정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 업계에 오래 몸 담아온 A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빵 냄새만 맡죠. 그걸 만들기 위해 누가 얼마나 오래, 어떻게 일하는지는 여전히 안 보여요."
제과업계가 진짜로 바뀌기 위해선 사고 이후의 일시적 점검이 아니라, 업계 전반의 노동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