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PV5,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 선정
DC 급속 충전 시 10→80%까지 약 30분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 지난 19일(현지시각), 기아의 첫 번째 중형 PBV(Platform Beyond Vehicle) 'PV5'가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에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PV5를 단순한 전기 밴이 아닌, 상용과 승객 수송, 그리고 레저의 경계를 무너뜨린 모듈형 모빌리티의 혁신으로 평가했다.
PV5가 글로벌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명확하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업(B2B)과 개인(B2C)이라는 서로 다른 시장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택배·배달·콜 서비스에 투입되는 업무용 밴으로, 주말에는 가족 캠핑카이자 차박용, 이동식 방으로 변신하는 구조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물류 효율성과 라이프스타일 확장성을 한 번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간의 미학···사장님도 반한 '직사각형'
PV5는 기아가 PBV 전용으로 개발한 전기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E-GMP.S(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for Service)를 기반으로 한다.
실내 바닥에는 배터리와 구동계를 평평하게 배치했고, 뒷좌석 가운데에 위치한 엔진룸과 센터터널을 없애 평탄한 바닥에 가까운 플랫 플로어를 구현했다. 여기에 약 4695mm 길이와 2995mm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를 결합해, 차체는 중형 밴 수준이지만 실내 적재와 승객 공간은 한 등급 위를 노린 것이 특징이다.
이 구조는 물류와 운송업체의 단위 면적당 적재 효율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이다. 카고용 PV5는 박스형 화물칸을 최대한 직사각형에 가깝게 설계했고 택배 박스나 파렛트 적재 시 남는 공간을 최소화했다.
성인 작업자가 허리를 크게 굽히지 않고 차량 안에서 상·하차 작업을 할 수 있는 높이를 확보해, 장시간 근무 시 피로도와 부상 위험도 줄였다.
전동화 특성도 총소유비용(TCO)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PV5 카고 롱 모델 기준 유럽(WLTP) 측정 방식으로는 최대 416㎞, 패신저 5인승 모델은 412㎞ 주행이 가능하며, DC 급속 충전 시 10→80%까지 약 30분 수준의 충전 시간을 구현했다. 장거리 배송보다는 도심·근교 구간을 오가는 라스트마일 물류에 최적화했다.
'바퀴 달린 아이폰'···자고나면 새 기능이
IVOTY 심사위원단은 PV5를 움직이는 하드웨어이자 데이터 플랫폼으로 평가했다.
PV5에는 차량 관제·관리용 솔루션인 FMS(Fleet Management System)가 탑재돼 있다. 한 화면에서 차량 위치, 주행 이력, 배터리 잔량, 이상 코드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이 데이터는 ▲운행 경로 최적화 ▲충전·정비 스케줄 사전 조정 ▲차량 가동률 분석으로 이어져, 플릿 운영사 입장에선 유지보수 비용과 운휴 시간을 줄이는 수단이 된다.
OTA(Over-the-Air) 무선 업데이트와 스마트폰 기반 디지털 키 2.0 같은 기능이 결합되면서, 차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자산으로 변한다. 심사위원단이 "차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문 상용차"라고 평가한 배경이다.
우버, 카카오모빌리티 등 글로벌·국내 모빌리티 플랫폼이 PBV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데이터 연동성 때문이다. 앱 기반 호출 시스템과 차량의 FMS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호출 수요·운행 패턴·충전 스케줄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운영이 가능해진다.

접으면 '광장', 펼치면 '극장'···레고같은 나만의 아지트
일반 소비자, 특히 차박, 캠핑 인구에게 PV5는 '움직이는 나만의 방'에 가깝다. 차체 디자인은 수평과 수직선을 단순하게 정리한 스타일이다. 짧은 오버행과 긴 휠베이스, 둥글게 처리된 모서리를 통해 부담스럽지 않은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차체가 박스형 공간처럼 보이도록 했다. 전면부는 높은 위치의 얇은 주간주행등(DRL)과 낮게 배치된 헤드램프가 분리된 구조로, 단순하지만 존재감 있는 인상을 준다.
실내는 모듈형 구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시트를 레일 방식으로 앞뒤로 이동하거나 완전히 접어 숨길 수 있다. 평일에는 2열과 3열을 그대로 쓰는 패밀리카, 주말에는 시트를 접고 매트나 침대로 펼치는 캠퍼밴으로 전환할 수 있다. CES·세마(SEMA) 등 모터쇼에서 공개된 PV5 WKNDR, PV5 Spielraum 콘셉트는 실내 테이블, 수납 모듈, 간이 주방, 심지어 와인 셀러까지 통합하는 등 바닐라 밴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다.
전기차의 장점인 V2L(Vehicle-to-Load) 기능도 레저 활용성을 키운다. 노지 캠핑에서도 220V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 전기 히터·인덕션·조명·소형 가전 등을 별도 발전기 없이 구동할 수 있다. 일부 콘셉트 모델처럼 외부 파티션·어닝과 결합하면 PV5는 말 그대로 야외 거실이 된다.

1t 트럭의 '투박함' 지우고 세단의 '섬세함' 칠했다
기존 1t 트럭 기반 캠핑카와 밴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덜컹거리는 승차감과 불안한 안전성은 PV5에서 상당 부분 보완됐다. 차체에는 초고장력강 비율을 높이고 전방 다중 골격 구조를 적용해, 충돌 시 충격 에너지를 분산하는 성능을 끌어올렸다.
전자 안전장비도 승용 플래그십 수준이다. 차선 유지 보조, 전방과 후측방 충돌 방지, 주차 충돌 방지, 운전자 주의 경고 등이 대거 탑재됐다. 가속 페달 오조작을 감지해 제동을 우선하는 기능도 포함했다. 상용차 특성상 잦은 승하차와 골목길 주행이 많은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들이다.
전기 구동계는 400V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적화했다. 기존 800V E-GMP보다 비용 부담은 낮추면서도, 상용차에 요구되는 내구성과 유지보수 편의성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게 기아의 설명이다.
차가 비즈니스·라이프스타일에 맞춘다
기아는 PBV를 단순한 차종 추가가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의 축으로 보고 있다. PBV를 통해 전동 상용차 시장에서 기준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를 노리는 동시에, 차량 판매를 넘어 모빌리티 서비스·데이터 비즈니스로 수익원을 다변화한다는 구상이다.
기아 관계자는 최근 PBV 전략 설명회에서 "PV5는 제조사가 만든 차에 고객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에 차가 맞춰 들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2025년 출시되는 PV5를 시작으로 기아는 2027년 대형 PBV PV7, 이후 초소형과 중대형까지 라인업을 확장해 도심 배송, 셔틀, 차량 공유, 캠핑, 모바일 오피스 등 다양한 영역을 겨냥한다는 계획이다.
IVOTY 수상은 PV5의 출발을 알리는 '인증 마크'다. 중요한 건 설계와 공법으로 확보한 유연성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현되느냐다. 여기에 B2B·B2C 고객이 기대하는 내구성과 서비스 품질을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하느냐가 관건으로 남는다.
PV5가 보여준 '변신의 기술'이 상용·레저 시장에서 어떤 성적표로 이어질지, 글로벌 PBV 1번 플레이어를 꿈꾸는 기아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