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해제로 '소나기' 피했지만, 연방 EV 크레딧 없어진 '기상이변' 닥쳐
GM·포드·테슬라 계급장 떼고 가격, 상품력,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붙는 '진짜 싸움' 시작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26일(현지시간) 조지아주에서 열린 HMGMA 준공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조지아주에서 열린 HMGMA 준공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 미 연방정부 셧다운이 43일 만에 끝났지만 서울 양재동 본사에선 축포가 울리진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2~3년 간 미국에 쏟아부은 '조 단위' 전기차 투자의 전제를 뒤흔드는 정책 변화가 진행 중이어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2032년까지 지원을 약속했던 연방 EV 세액공제가 '원 빅 뷰티풀 빌(OBBB)'에 의해 9월 30일부로 사실상 조기 폐지됐다.

미국국세청(IRS)이 공개한 행정지침에 따르면, 새 차(30D), 중고차(25E), 상업용(45W) 클린 차량 세액공제는 9월 30일 이후 취득한 차량부터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9월 30일까지 구속력 있는 서면 계약을 맺고 일정 금액을 선지급한 경우에는, 차량 인도 시점이 10월 이후라도 예외적으로 공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셧다운이라는 '소나기'는 피했지만,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조지아주 메가플랜트를 앞세워 짠 미국 전기차 전략 전체를 흔드는 '기상이변'이 시작된 셈이다.

셧다운이라는 '소나기'는 그쳤지만, 미국 전기차 시장 전략 전체를 흔드는 '기후 변화'가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셧다운이라는 '소나기'는 그쳤지만, 미국 전기차 시장 전략 전체를 흔드는 '기후 변화'가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셧다운보다 큰 태풍, 조기 폐지된 EV 세액공제

세무 업계 관계자들은 "연방 EV 크레딧이 9월 말 이후 신규 차량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현대차 입장에선 게임의 룰이 바뀐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2022년 IRA 통과 이후, 조지아 브라이언카운티 'HMG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EV 공장'에 약 76억달러, SK온과 합작하는 조지아 배터리 공장(35GWh 규모)에 약 50억달러 투자 등을 결정했다. 미국 생산으로 원자재·부품 조달 요건을 맞추고 장기적으로 '보조금까지 감안하면 테슬라·GM과 정면 승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OBBB로 인해 EV 세액공제가 조기 종료되면서, 조지아 메타플랜트와 배터리 JV의 사업성 전제가 뒤집힌 셈이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IRA 기준대로라면 조지아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2025~2032년 내내 보조금 효과를 누리며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이제는 같은 가격대에서 7500달러 할인 없이 승부해야 하는, 완전히 다른 게임에 직면했다"고 꼬집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조지아 메타플랜트, '최대 무기'에서 '딜레마'로

조지아 투자는 정의선의 승부수였다. HMGMA는 연간 30만대 생산 가능한 전기차 전용 공장이다. 아이오닉 9·EV9 등 대형 전기 SUV와 차세대 크로스오버를 생산하며 북미 시장을 공략하는 전초기지로 설계됐다.

조지아 배터리 공장까지 더하면 셀부터 완성차까지 '조지아 밸류체인'을 구축해 IRA 요건을 완벽히 충족한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EV 세액공제 조기 종료로 이 공장은 단숨에 세 가지 딜레마에 봉착했다.

먼저 가격 딜레마로 보조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최대 7500달러다. 아이오닉 5·아이오닉 6·EV9는 5~7만달러 가격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7500달러는 소비자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타다. 미국 자동차 매체와 판매 집계에 따르면 10월 EV 세액공제가 끝난 직후, 미국에서 아이오닉 5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63%, 기아 EV6는 71%, EV9은 66% 급감했다.

두 번째는 가동률이다. 조지아 EV 공장과 배터리 공장이 계획대로 가동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EV 판매 볼륨이 전제돼야 한다. EV 세액공제가 사라진 이후 미국 전체 EV 성장률이 둔화되고, 가격 민감도가 높은 브랜드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에 기아는 "2026년부터 조지아 공장에서 하이브리드도 함께 생산하겠다"고 밝혀, 생산 믹스를 조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상태다.

마지막으로 정책 리스크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미국의 장기 산업정책을 믿고 베팅했는데, 정권과 의회 지형이 바뀌자 3년 만에 약속이 뒤집혀버린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EV 세액공제 조기 종료는 셧다운 같은 단기 위기가 아니라, 미국에서 정책 리스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다시 계산하게 만든 사건"이라며 "한국 기업이 미국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요구수익률을 높일 수밖에 없는 신호"라고 말했다.

정의선의 현대차는 어떤 해법으로 새로운 게임에 대처할 것인가. /사진=현대차
정의선의 현대차는 어떤 해법으로 새로운 게임에 대처할 것인가. /사진=현대차

EV 게임이 바뀐 뒤, 현대차가 짜야 할 새 방정식

정의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업계에선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가격과 제품 전략의 재조정이다. EV 세액공제 종료로 EV 한 대당 7500달러의 정부 보조가 사라졌다. 차량 원가를 줄여 일부라도 가격 인하 여력을 만들거나, EV9·아이오닉 9처럼 마진이 높은 대형 SUV·프리미엄 모델 비중을 높여 평균 수익성을 방어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미국에선 이미 현대차·기아가 2026년 이후 조지아 공장에서 하이브리드 비중을 크게 늘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 세액공제 없이도 팔리는 HEV·PHEV 라인업으로 캐시카우를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두 번째는 시장과 정책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현대차는 IRA가 뼈대만 남고 EV 세액공제가 조기 종료된 상황에서, 미국 연방정부가 아닌 주(州)정부 인센티브, 유럽·중동·한국 내 보조금과 규제까지 묶어 글로벌 최적 조합을 다시 짜야 한다.

유럽에선 EU 탄소 규제·중국 EV 관세 등으로 전기차 전환 압력이 여전히 강하고, 현대차·기아는 이미 유럽 EV 시장 점유율 8%대, 미국에 이어 EV 2위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미국 EV 보조금 축소를 유럽·중동·한국에서의 EV·하이브리드 전략 강화로 상쇄하는 포트폴리오 게임을 해야 한다"며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여전히 전략 자산이지만, 더 이상 단일 히어로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수요 체인의 한 축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은 IRA 축소·셧다운 경험과, 한국에서의 한전 리스크를 함께 묶어 보는 시각이다. 미국에선 EV 보조금이라는 정책 리스크, 한국에선 SMP·전기요금 구조라는 전력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전기차는 '전기·배터리·충전 인프라'에 의존하는 제품이다. 현대차그룹이 북미·유럽·한국에 깔아둔 배터리·충전·재생에너지 협력 구조가 흔들릴 경우, 완성차 사업 전체의 수익성이 영향을 받는다. 업계에선 "완성차-배터리-전력-충전까지 한 번에 들여다보는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RA이 조기 폐지 되며 GM·포드·테슬라까지 보조금 없는 시장에서 같은 딜레마를 안고 가야 하는 처지다. 이제는 어느 나라 기업이냐, 누가 더 큰 회사냐보다 계급장 떼고 가격, 상품력,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붙는 '진짜 실력 싸움'이 시작됐다. /사진=현대차그룹
IRA이 조기 폐지 되며 GM·포드·테슬라까지 보조금 없는 시장에서 같은 딜레마를 안고 가야 하는 처지다. 이제는 어느 나라 기업이냐, 누가 더 큰 회사냐보다 계급장 떼고 가격, 상품력,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붙는 '진짜 실력 싸움'이 시작됐다. /사진=현대차그룹

"셧다운은 감기, IRA 축소는 기후 변화"…정의선의 다음 수

미국 셧다운 해제는 현대차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다. 공무원 급여가 정상화되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심리가 완화되고 4분기 미국 판매 실적에 드리웠던 불확실성도 일부 걷힌다.

셧다운 해제와 달리 EV 세액공제 조기 종료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국 소비자의 지갑은 다시 열릴 수 있지만, 현대차 EV에 대한 '정부지갑'은 닫혔다. 메타플랜트와 배터리 공장은 더 이상 IRA가 약속한 2032년까지의 보조금 게임 위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셧다운은 감기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지나가고 해제되면 바로 회복된다"며 "EV 세액공제 축소는 기후가 바뀐 것에 가깝다. 한 번 바뀐 룰은 정권이 다시 바뀌지 않는 이상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OBBB로 EV 보조금 판이 뒤집힌 건 현대차만의 고민이 아니다. GM·포드·테슬라까지 보조금 없는 시장에서 같은 딜레마를 안고 가야 하는 처지다"라며 "이제는 어느 나라 기업이냐, 누가 더 큰 회사냐보다 계급장 떼고 가격, 상품력,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붙는 '진짜 실력 싸움' 구도가 됐다"며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음을 암시했다.

정의선 회장이 풀어야 할 것은 '보조금 없이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가'다. 가격·제품·생산·정책·에너지까지, 변수는 복잡하지만 질문은 하나다. 룰이 바뀐 미국 EV 게임판 위에서 현대차가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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