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강한 '팀킬'이 필요하다

신수정 기자 2023-10-17 07:30:03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1080억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세 원인으로 정부‧은행이 공급했던 ‘50년 만기 주담대’가 지목되면서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금융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발맞춰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을 내놓자, 민간은행도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시장에 우후죽순 공급해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은 만 34세 이하, 무주택자, 고정금리 조건을 적용했고, 이는 민간은행이 지난 6~7월에 늘린 50년 만기 주담대 성격과 전혀 다르다. 가계부채 관리와 함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부동산 연착륙 지원 또한 필요하므로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은 정책 모순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를 발언은 일각에서 가계부채 급등세 원인과 책임은 오직 은행에 있으며 금융위의 잘못은 없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가계부채 책임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 폭탄은 일차적으로 은행권을 향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공약의 근원지인 윤석열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와 은행권을 동시에 때리는 일타쌍피이자, 일종의 ‘팀킬(같은 편을 죽이는 것)’이란 얘기다.   

어쨌거나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비판은 옳다. 다만, 한참 늦었을 뿐이다. 민간은행이 특례보금자리론을 따라 주담대 상품을 출시할 때 "그건 문제가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당부했으면 어땠을까. 금융위 수장으로서 무작정 정부 정책 기조만을 따라 가지 않고, 거시경제와 맞물린 부작용과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직언을 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 김 위원장에겐 이를 윤 대통령에게 소신대로 상세히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금융위는 50년 만기 주담대 공급의 롤모델이 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금융당국의 특례보금자리론을 참고해 따라 만든 상품"이라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이 스타트를 끊었고, 은행이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그랬던 만큼 은행권의 배신감은 컸다. 금융노조는 “50년 주담대가 은행권의 근시안적이고 탐욕적 상품이라면 금융당국이 출시부터 막아야 했다”라며 “방치해서 피해가 생겼다면 책임지고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고 김 위원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50년 만기 주담대는 사실상 정부와 은행의 합작품이기 때문에, 한 쪽에 책임을 떠넘기는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은 외침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이해 때문에 금융산업이 희생되는 오류'의 반복을 미연에 막는 것이다. 그 예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문제가 있다. 산은 이전은 경제적 손실이 천문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윤 정부의 공약이란 이유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금융노조는 “금융 미래를 걱정하는 금융당국 수장이라면 산은 이전은 진중하고 천금처럼 접근해야 한다”고 답안을 제시했다. 

설령 정부 정책 기조에 반할지라도, 금융당국은 금융전문가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정치적인 공약으로 청사진을 꾸릴지라도, 이를 실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단 금융당국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같은 입장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눈먼 '팀워크'보다 건강한 '팀킬'이 필요한 때다. 


신수정 기자 newcrystal@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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