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유족 "어리석은 결정, 역사에 남을 죄"

김성원 기자 2024-01-30 17:45:31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신 정부는 유가족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희생자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내용의 '10·29 참사 피해지원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유가족들과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참사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농성 중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 의결 소식이 전해지자 허탈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당 법안이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고 19일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이다. 재의요구 시한인 다음 달 3일을 나흘 앞두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정부는 해당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5번째이며, 법안 수로는 9건째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태원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상정·의결했다.

한 총리는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며 "이 법이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수립해 실질적인 지원과 예우·추모에 집중할 계획이다.

피해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 간병비 등을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속도감 있게 배상·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 국무총리 소속으로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구성하고, 유가족들이 요구해왔던 영구적인 추모시설도 유가족,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건립할 계획이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제한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관료,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유족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나”라며 “유족이 바란 것은 오직 진상규명이었는데 정부는 유족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지난 1년간 유족들은 우리 아이들이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여 애원했지만 정부 여당과 윤 대통령은 159명의 희생자와 가족들을 외면했다”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참으로 비정한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기어코 행사했다"며 "유감을 넘어서 분노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인데 그 책임이 있는 정부가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재난을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를 부정했다"고 말했다.

임 원내대변인은 "유가족이 바란 것은 보상이 아니라 오직 진상규명이었다"며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보상 운운하며 유가족을 모욕하지 말라"고도 했다. 

김성원 기자 ksw@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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