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환영, 인력은 제한"···한국 기업 발목 잡는 美의 이중 메시지
| 스마트에프엔 = 김동하 기자 |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가 합작해 6조원을 투자한 조지아주 HL-GA 배터리 공장은 내년 가동을 목표로 막바지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 이민 당국의 대규모 단속으로 현장에 있던 한국인 엔지니어 300여 명이 구금되면서 작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들 상당수는 장기 체류용 전문 비자가 아닌, 단기 출장을 위한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활용한 상태였다. 비자 발급 지연을 우회하려던 관행이 미국의 강경 대응에 걸린 것이다.
HL-GA는 연간 전기차 30만 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핵심 시설로,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전략에서 '심장부' 역할을 맡는다.

현대차 조지아 HMGMA 공장은 현재 연간 3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췄지만 가동률은 72% 수준에 불과하다.
배터리 공급이 지연되면 생산 확대는커녕, 기존 목표 달성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2028년까지 50만 대 체제로 확대하려던 증설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는 특정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차 생산 일정 전반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배터리 공장은 단순 건설이 아닌,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설비 구축 과정이 필수다. 초기 단계에서는 본사와 협력사에서 파견된 전문 엔지니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관련 경험을 가진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비자 발급 절차는 여전히 더디고 까다롭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현장 수요를 채우기 위해 단기 출장 비자나 ESTA에 의존해왔고, 이번 사건은 그 취약성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배터리·전기차 공급망 현지화를 강력히 요구하며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불법체류 단속을 강화하고 비자 발급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사실상 "투자는 환영하지만, 인력 유입은 제한하겠다"는 상충된 메시지다.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들은 현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제도적 장벽에 막히고 있다.
한국 기업의 '투자 딜레마'
현대차그룹은 260억달러(약 36조원)를 투입해 배터리, 철강, 로봇 등 미국 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도 합작 공장을 줄줄이 건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대미 투자 확대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가 '비자와 인력 문제'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단기적으로는 외교 채널을 통한 전문 인력 비자 제도 개선과 이번에 구속된 인력의 조속한 문제 해결이 불가피하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지 인력 양성과 채용 확대, 기술 전수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의 ‘투자 확대 요구’와 ‘이민 규제 강화’라는 상충된 정책 기조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향후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공장 한 곳의 지연 문제가 아니다. 미국 현지화 전략을 뒷받침할 인력·비자 제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3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가 자칫 '반쪽짜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투자는 자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의 이동을 제약하는 제도 장벽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성공 스토리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행이라고는 해도 편법, 불법을 저질렀다면 잘못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기업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는데 과연 정부가 제대로 관심을 가진 게 맞나. 지금이라도 개선한다니 다행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