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 호황에 올라탄 기회 vs 10년 갈등이 남긴 리스크
'뉴 효성' 성패, 어디에 달렸나

효성그룹이 기로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효성중공업이 글로벌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의 파도를 타며 그룹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10년 넘게 이어진 '형제 갈등'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실적과 성장 모멘텀은 눈부시지만, 지배구조 불안과 재무 리스크는 그룹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양극단의 힘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효성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조현준 효성 회장 /사진=효성
조현준 효성 회장 /사진=효성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전력 슈퍼사이클, 효성중공업이 이끄는 '황금기'가 왔다."

2025년 2분기, 효성중공업은 매출 1조5253억원, 영업이익 1643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8% 늘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162%나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10.8%로, 전년의 두 배 이상이다. 전력기기 부문은 영업이익률이 15.9%에 달하며 글로벌 톱티어의 수익성을 보여줬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전 세계 전력 인프라 시장의 변화가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 전기차 보급 확대,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급증, 그리고 북미·유럽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초고압 변압기와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분기 신규 수주 2조1870억원, 수주잔고 10조7000억원을 확보했다. 3년간 안정적 매출을 뒷받침할 '주문장부'다.

효성 조현준 회장(오른쪽)이 효성중공업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에서 빌 해거티 미 상원의원과 만나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효성 조현준 회장(오른쪽)이 효성중공업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에서 빌 해거티 미 상원의원과 만나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조현준 회장이 2019년 인수한 미국 멤피스 공장은 이번 성과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 공장은 미국 내 유일하게 765kV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연산 100대 수준이던 생산능력을 160대까지 확대하는 증설이 진행 중이며, 완공 시 매출은 2억달러에서 4억달러로 두 배 뛸 전망이다. 북미 전력망 교체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투자는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초고압 직류 송전(HVDC) 시장 규모가 2024년 122억달러에서 2034년 264억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효성중공업은 이미 2017년부터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국내 최초 200MW급 전압형 HVDC 기술을 독자 개발했고 2027년 완공 예정의 창원 HVDC 전용 공장에 33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공장이 가동되면 '설계-생산-납품'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위상이 강화될 것이다.

효성중공업 HVDC 변압기 공장 기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사진=효성
효성중공업 HVDC 변압기 공장 기공식에서 참석자들이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사진=효성

스판덱스로 대표되던 효성의 성장 엔진은 'K-전력'으로 바뀌었다. 효성중공업은 그룹 전체의 새로운 간판이자, 향후 10년 효성의 성장을 책임질 '절대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발목 잡는 '형제의 난'과 효성화학의 그림자

그룹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여전히 효성을 괴롭히는 리스크가 있어서다. 끝나지 않은 형제 간 갈등, 그리고 효성화학의 위기다.

'형제의 난'은 2014년 차남 조현문이 장남 조현준과 삼남 조현상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10년 넘게 이어진 형제간 갈등은 2024년 지주회사 2갈래 분할로 형식상 정리된 듯 보였다. 조현준은 효성을, 조현상은 HS효성을 각각 이끌며 독립 경영 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언에 따라 조현문도 효성중공업, 효성티앤씨 주식을 상속받으면서 '셋으로 나뉘고 둘로 쪼개진 구조'라는 모순이 발생했다.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타계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매듭지어진 듯했지만, 조현문의 형사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사건을 새 재판부로 넘기며 공판 일정이 미뤄졌고 판사의 성향과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조현문이 비상장사 주식 고가 매입과 유리한 보도자료 배포를 요구하며, 거절 시 조현준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적용했다.

이번 재판은 개인의 법적 책임을 넘어, 효성그룹의 과거 경영 행태와 지배구조 투명성까지 도마에 오르게 할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 분쟁의 그림자가 법정에서 계속 드리워지면서, 효성의 신뢰와 기업가치에도 또 한 번 시험대가 놓인 셈이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사진=대한상공회의소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사진=대한상공회의소

게다가 조현상은 '집사 게이트' 연루 의혹과 차명 지분 보유 논란에 휘말리며 법적 리스크가 증폭되고 있다. 특검 수사라는 돌발 변수가 사업 결정에 차질을 빚을 경우, HS효성이 추진하는 1조5000억원 규모 타이어코드 사업 매각이나 지배구조 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효성화학 울산 용연공장 /사진=효성화학
효성화학 울산 용연공장 /사진=효성화학

효성화학은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 베트남 법인의 대규모 투자 실패와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2024년 말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당시 부채비율은 9779%, 이자보상배율은 3년 연속 1 미만. 사실상 '좀비기업'과 다름없었다. 효성그룹은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특수가스 사업 매각 등을 통해 지원에 나섰지만, 매각 무산이 반복되는  등 효성화학발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효성중공업을 포함한 계열사 주가가 동반 하락하기도 했다.

효성 측은 "올해 1월 특수가스사업 매각대금을 통해 자본잠식에서 벗어났다. 6월 기준 부채비율은 498.47%이고 특수가스사업이 우선협상대상자와 매각 결렬된 이후 곧바로 효성티앤씨에 양수되었다"고 밝혔다.

효성중공업이 만든 성장 모멘텀을 효성화학의 위기가 상쇄하는 기이한 상황. 투자자들이 효성그룹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다.

기회와 위기의 갈림길, '뉴 효성'의 성공 조건

효성그룹은 사상 최대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글로벌 전력 인프라 슈퍼사이클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호기다. AI, 전기차, 신재생에너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효성중공업은 10년간 확실한 성장 엔진을 확보했다. 수주잔고 10조원은 그 자체로 든든한 안전판이다.

그러나 경영권과 재무 리스크를 방치하면 기회는 허공으로 흩어질 수 있다. 한국 기업사에서 수많은 대기업이 '외부 기회'보다 '내부 갈등' 탓에 도약 타이밍을 놓쳤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CAMX 2025의 HS효성첨단소재 전시회 /사진=HS효성첨단소재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CAMX 2025의 HS효성첨단소재 전시회 /사진=HS효성첨단소재

효성의 방향은 명확하다.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해 형제 간 갈등을 근본적으로 정리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일관성을 높이고 외부 이사회와 사외이사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효성화학 구조조정도 미루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자산 매각과 사업 재편을 통해 재무 부담을 줄여야만 효성중공업의 성과가 그룹 전체로 온전히 이어질 수 있다.

각 지주사가 추구하는 정체성도 명확히 해야 한다. 조현준의 효성은 'K-전력'을, 조현상의 HS효성은 '미래 소재'를 대표 사업 축으로 삼아 시장과 투자자에게 확실한 비전을 제시할 때, 분할된 그룹이 독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평가받을 수 있다.

사진=효성
사진=효성

효성그룹은 변곡점 위에 서 있다. 내부 갈등과 불투명성의 걸림돌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슈퍼사이클의 순풍조차 거대한 배를 전진시키지 못할 것이다. 제거한다면, 효성은 글로벌 전력 시장을 리딩하는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앞으로 2~3년, 짧고도 결정적인 시간이 '뉴 효성'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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