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8)성공한 LCC의 공통점 ④ 사람중심 종업원중심의 경영이 있었다

2023-07-12 06:18: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포브스'는 사우스웨스트항공 허브 켈러허 회장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20가지 이유를 일화를 담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중 직원들에 대한 관심을 첫번째 이유로 꼽았다. 허브 켈러허 회장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했고, 직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였다. 모든 직원의 이름을 외웠고, 어디서 만나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직책이나 직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현장직원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늘 바빴다. 언젠가 한 사업부서의 책임자가 그에게 얼굴 볼 기회가 없다고 불평하며 “우리보다 직원들이 더 중요하냐”고 묻자, 허브 켈러허 회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 특이한 채용방식과 고객보다 직원을 중시하는 문화, 사내정치와 편가르기를 없애고 직원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점, 신뢰를 중시하고 서로 공감하며 일하도록 한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가정과 직장을 엄격히 분리하는 일반적인 미국기업들과 달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시했다. 직원 가족을 회사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중심 경영을 펼쳤다.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본사에는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벽면에 직원들의 가족사진을 걸어 두었다.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기업보고서에는 사내커플이 812쌍이라는 기록도 수록되었다. '포춘'에서 2000년에 조사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 중 2위에 꼽혔다. 최근에는 2만4000여명에 달하는 사우스웨스트항공 직원 중 1000여명이 사내결혼을 했다는 통계도 공개되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에서는 고객이 왕이 아니라 종업원이 왕이다. 허브 켈러허 회장은 “회사가 직원을 왕처럼 모셔야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직원들이 만족하며 다닐 수 있는 일터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며 “승객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픽셀스

대한민국 기존항공사의 대고객서비스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글로벌 서비스지수에서 우리나라의 두 기존항공사는 늘 경쟁적으로 상위권에 랭크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존항공사들에게 고객은 왕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기 위해서는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승객은 항상 옳고, 승객을 현장에서 만나는 객실승무원은 항상 옳은 승객을 모시는 위치에 있다. 간혹 고객 불만이 들어오거나 승객과 다툼이 발생하면 객실승무원에게 1차적인 책임을 묻는다. 웬만큼 승객이 잘못했더라도 회사는 객실승무원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그래야 회사가 서비스를 잘하는 명성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존항공사의 기업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자회사형 LCC들은 비슷한 수준의 고객서비스를 지향한다. 반면 독립형 LCC들은 상대적으로 고객보다는 자사 객실승무원의 집단사기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2010년대 후반 제주항공 기내에서 한 남자승객의 객실여승무원에 대한 신체접촉 시비가 있었다. 객실승무원은 승객이 신체접촉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고, 승객은 그런 일이 절대 없었다며 해당 객실승무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면서 길길이 뛰었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고객서비스가 훌륭한 기존항공사는 사실여부 보다는 해당 객실승무원에게 해당승객에게 사과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슬기롭게(?) 사건을 종료시킨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당시 해당 객실승무원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준 후 사내변호사에게 연결해서 해당 승객과 법적다툼에 대비토록 조치했다. 이후 해당승객과 소통한 사람은 해당 객실승무원이 아닌 사내변호사였다. 당시 제주항공의 조치는 단 한 명의 객실승무원 입장이 아닌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객실승무원들의 집단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측면이 강했다. 또 회사 설립이후 교과서로 삼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람중심 종업원중심의 경영에서 배워온 것이었다.

기존항공사의 기존관습은 우리사회에서 뿌리깊은 고정관념으로 작용했다. 특히 객실여승무원에게 요구되는 관습은 놀라우리 만치 복잡하고 세세했다. 이는 두 기존항공사가 경쟁적으로 스튜어디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디스 유니폼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공식입장은 굳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기내에서 바지를 입은 스튜어디스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것에서 간극이 있었다.

이 같은 기존항공사의 기존관습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2012년 6월 공공운수노조연맹 아시아나항공지부에서 치마의 길이부터 귀걸이의 크기나 재질, 매니큐어의 색상, 눈화장의 색깔까지 회사가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 창립 25년 만에 객실여승무원에게 바지 근무복을 지급했다. 이로써 국적항공사 중 객실여승무원에게 치마 유니폼만 지급하는 곳은 없어지게 됐다. 1988년 창립이후 ‘아름다움’, ‘단정함’ 등을 강조하며 치마 근무복을 고집해온 아시아나항공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방침을 바꾼 것이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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