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의 상징에서 오너리스크의 상징으로
가족, 유산, 그리고 400억 대 남매 소송
불투명한 경영 복귀와 다시 떠오른 비자금 의혹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

법원 앞, 굳은 표정의 중년 남자가 느린 발걸음으로 법정으로 향했다. 흰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노화된 얼굴은 오랜 세월 무게를 견뎌온 듯하다. 한때 '재계의 조용한 야심가'로 불렸던 그는 지금, 검찰 수사를 다시 받고 있다. 이름은 이호진. 태광그룹 오너다.

이호진은 대외 노출을 철저히 피하고, 인터뷰는커녕 전경련 등 재계 모임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침없는 인수합병과 사업 다각화로 그룹을 재계 30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 석사, 뉴욕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아버지 이임용 창업주의 별세 후 35세에 그룹의 주인이 됐다.

경영스타일은 조용하면서도 과감했다. 섬유와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을 케이블방송과 금융으로 확장했고 티브로드와 흥국생명, 고려·예가람저축은행 같은 계열사를 통해 미디어·금융 사업에 대대적으로 뛰어들었다. '공격적 M&A의 귀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성공 이면에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

2011년, 회삿돈 400억 원 횡령과 975억 원대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간암 3기 진단과 병보석, '황제 보석' 논란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았고, 2019년 징역 3년형을 받아 수감됐다. 2021년 만기 출소 후에는 2023년 윤석열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됐다. 경영 복귀가 예상됐지만 또 다른 사법리스크가 그를 다시 법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룹 감사에서 비위가 드러나 해임된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이, 비자금 조성의 책임이 이호진에게 있다고 경찰에 제보하면서 다시 수사가 시작됐다. 자택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 상태다. 이호진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경영 복귀는 불투명해졌다.

그의 개인사는 기업의 굴곡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어머니 이선애는 태광 창업의 주역으로, 자갈치시장에서 직물 장사로 시작해 아들 못지않게 그룹 경영에 관여했고 결국 비자금 사건으로 모자(母子)가 동시에 구속되는 비극을 겪었다. 두 형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호진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의 동생 신선호의 장녀인 신유나와 결혼했다. 주변은 늘 거대한 가족경영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었다.

가족 간 유산 소송에도 휘말렸었다. 1996년 타계한 부친 이임용의 차명자산 400억 원을 둘러싸고 누나 재훈 씨와 10년 넘게 법적 다툼을 벌여왔다. 1심에선 대부분 이호진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일부 채권 153억 원만 인정됐다. 올초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적 문제가 없다 보고 그대로 확정했다.

그는 은둔형 경영자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법정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안에서 성실히 답하겠다"는 말로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태광그룹은 바뀌고 있다. 이호진은 50개가 넘던 계열사를 정리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최근엔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 추천을 수용하며 투명경영에도 시동을 걸었다. 그가 3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태광산업은 실적 부진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울산 공장 증설 투자도 이어졌다.

그룹은 아직 오너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호진은 투자 계획과 조직 정비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중심축이지만, 불안요소기도 하다.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을지, 복귀를 해도 그룹이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의 판단과 시장의 신뢰, 모두 되찾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마트에프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