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와 기회의 삼각지대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자사주는 기업의 '의지'다. 남긴다면 '지배력', 없앤다면 '주주가치'다. 그리고 가끔은, 자사주는 경영자의 '기회'가 된다. 태광산업은 그 셋을 동시에 선택했다. 이호진 전 회장의 흔적이 다시 실체로 드러나고, 정부가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상법 개정을 앞두고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며, 동시에 조 단위 투자를 약속하며 애경산업 인수에 손을 뻗쳤다. 문제는 순서다. 정당성 없이 강행된 수순은 의혹을 부른다.

경영 공백 이후, 복귀 아닌 방향 설정
태광그룹은 오랜 기간 총수 부재 상황 속에서 내부 경영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이호진 전 회장의 사면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지만 현재까지 어떤 복귀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 태광 측은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법적 절차와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외부 시선은 다르다. EB 발행, 조 단위 투자 발표, 신사업 인수 참여 등이 겹치며 '총수 복귀의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태광 측은 "사면 이후에도 이 전 회장은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으며, 의사결정 구조 또한 기존과 다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경영 정상화는 의혹보다 책임으로 말해야 한다. 그룹은 태광산업이 EB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이 구조조정이 아닌 투자로 연결되고, 이는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EB 발행은 위법인가, 전략인가
교환사채(EB)는 자금 조달 수단 중 하나다. 이자 부담이 낮고, 신주 발행 없이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어 재무구조에 유리한 방식이다. 태광산업은 보유 자사주 전량(지분 24.41%)을 담보로 3200억 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발행 대상은 한국투자증권으로 확정됐다.
일부 주주는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 이익이 침해됐다", "자사주 소각을 회피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가처분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금융감독원도 발행 상대방 명시 누락을 이유로 정정명령을 내렸다.
태광 측은 "해당 지적을 수용하고 즉각 이사회를 소집해 발행 대상을 정정했으며, 법원의 판단과 관련 규정을 철저히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EB는 대규모 투자를 위한 유연한 자금 조달 수단일 뿐이며, 경영 목적 외 왜곡된 해석은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주가 하락 우려에 대해서는, "EB 발행이 오히려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애경 인수, 포석 vs 사업구조 개편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직접 인수는 아니며, 계열사 티투프라이빗에쿼티와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공동 GP(Genaral Partner)로 참여하고, 태광그룹이 전략적 투자자로 후방에서 지원하는 구조다.
인수 목적은 명확하다.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 같은 다각화된 신사업군의 교두보 마련이다. 주력이던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구조는 업황 둔화, 탄소중립 기조 속에서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어서다.
태광은 1조5000억 원 규모의 신사업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태광 측은 "올해 안에 최대 1조 원까지 집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으며, 이는 생존을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EB 자금이 애경 인수에 활용될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하지만, 태광은 "인수와 EB는 별개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정 M&A를 위해 EB를 발행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선택은 방향, 판단은 이후
태광산업의 결정은 분명 과감했다. 자사주 활용, 교환사채 발행, 조 단위 투자, M&A 참여까지 연속적인 행보는 시장에 파장을 불러왔다. 그래서 해명했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투자도 명분이 있으며, 법원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말이다.
위기 앞에 서 있는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이후에 평가될 문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법적 절차의 정당성, 투자 계획의 실행력, 그리고 시장과의 신뢰 회복이다.
태광산업은 보유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트러스톤 측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향후 후속 절차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또 소액주주와 노동조합 등 이해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이들의 의견과 입장을 존중할 방침이며, 석유화학 업종의 업황과 자사의 사업 현황 및 계획, 자금조달 필요성 등을 설명하고 이해 관계자들의 우려와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했다.
이 말이 '복귀 시나리오'가 아닌 '책임 경영의 선언'으로 증명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