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부동산·에너지로 미래 건다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태광산업이 벼랑 끝에서 방향을 틀고 있다. 창립 75주년을 맞은 올해, 유태호 대표는 "회사는 지금 도태 또는 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고 단언했다. 석유화학·섬유 중심의 전통 제조업 틀을 넘어, K-뷰티·부동산 개발·에너지를 신성장 축으로 삼아 사업구조 전환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유태호 태광산업 대표 /사진=연합
유태호 태광산업 대표 /사진=연합

적자에 갇힌 75년 제조 명가의 선택과 집중

태광산업은 1950년 설립 이후 석유화학·합성섬유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쌓았다. 울산에만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연 100만t), 아크릴로니트릴(AN, 29만t), 시안화물(NaCN, 6만5000t) 공장을 비롯해, 아라미드(1500t), 모다크릴(1만2000t) 같은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최근 3년간 실적은 추락 일변도였다. 2022년 1045억원 영업손실, 2023년 994억원 손실에 이어 2024년에도 405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에도 16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의 공격적 증설로 PTA 공급량은 2021년 3200만t에서 2024년 5000만t으로 폭증했고, AN 역시 280만t에서 440만t으로 늘며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다.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과잉 속에서 태광산업의 범용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는 한계에 부딪혔다.

태광산업 석유화학 3공장 전경 /사진=태광산업
태광산업 석유화학 3공장 전경 /사진=태광산업

회사는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면방공장 철수, 중국 스판덱스 공장 가동 중단 등 불필요한 사업을 접었다. 동시에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에 힘을 실었다. 가발용 모다크릴, 방탄·방호용 아라미드, 금 채굴 핵심소재 NaCN 같은 틈새 시장이 그 무대다. 이부의 전무를 사업총괄 선임으로 현장 중심 경영도 강화했다. 여기에 정인철 부사장을 영입해 미래사업추진실을 신설, 변화의 추진 동력까지 마련했다. ESG 지원팀도 '지원실'로 격상시키며 조직 기반부터 새로 다지는 모양새다.

신성장 축, K-뷰티·부동산·에너지

태광산업의 눈은 제조업 바깥을 향한다. 선봉은 K-뷰티다. 유 대표는 애경산업 투자에 대해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K-뷰티 진출의 출발점"이라고 못 박았다. 연평균 8.8% 성장하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 그보다 더 빠른 11.6% 성장세의 K-뷰티 흐름을 타고 장기 수익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종합 화장품 기업 인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코드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사진=네이버
코드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사진=네이버

다음으론 부동산이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 인수를 시작으로, 호텔·리조트 개발과 운영을 통한 안정적 현금 흐름 확보에 나선다. 단순 투자 차원을 넘어 그룹의 신성장 기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마지막은 에너지다. 신재생 발전은 물론 소형모듈원전(SMR)까지 검토 대상에 올려, 자가 소비를 넘어 새로운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주주환원과 법적 리스크

재무 전략도 변화를 예고했다. 75년간 고수해온 무차입 원칙을 깨고 교환사채 발행을 검토했지만, 주주 반발로 법적 분쟁이 불거졌다. 지난 9월 10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일단락됐지만, 태광은 "이해관계자 의견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방안을 고민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10월 1일 임시주총에선 정관에 화장품 제조·매매, 부동산 개발, 호텔·리조트 운영, 에너지 사업을 추가해 신사업 추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다. 유 대표는 "기업 성장이 곧 기업가치와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호진 전 회장, 고문으로서의 영향력과 복귀 시 기대 효과

태광산업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호진 전 회장의 행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는 아직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는 않았지만 비상근 고문으로서 경영진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사진=연합

이 전 회장은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조용하지만 영향력 있는 '최고 참모'로 자리매김하며 신사업 추진과 투자 전략, 승계 구도 등 그룹의 중요한 방향 설정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경영 전면에 복귀할 경우, 태광산업의 신성장 사업에 더욱 강력한 추진력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의 경영 복귀는 내부 경영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할 뿐 아니라, 복잡한 승계 구도를 정리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오너 체제의 안정화와 함께, 그간 속도 내지 못했던 투자와 사업 다각화를 가속화하는 촉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도태냐 도약이냐, 기로에 선 태광

태광산업은 '양날의 길' 위에 서 있다. 한쪽에는 석유화학 범용제품 의존의 적자 늪이, 다른 쪽에는 K-뷰티와 부동산, 에너지라는 신성장 기회가 놓여 있다. 75년 제조업의 뿌리를 딛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로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구조적 위기에 발목 잡힐지는 경영진의 결단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도태냐 도약이냐." 유 대표의 주주서한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태광산업이 마주한 현실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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