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은 대한민국 전차를 만들고, 열차를 수출하며 산업과 국방의 전선에 섰다. 25년 넘게 철도산업의 두뇌였고, 방위산업의 핵심이었다. 성공의 길은 쉽지 않았지만, 멈춘 적도 없었다. K2 전차는 진화를 거듭했고, 수출은 기술 협력으로 확장되며 국산 무기의 위상을 높였다. 과거 납품 과정에서 논란도 있었지만, 신뢰와 시스템을 재정비해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술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검증된 품질과 꾸준한 기술 축적은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기술은 무기를 만들지만, 철학은 신뢰를 만든다. 현대로템은 방산 자립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산업 주권과 수출 전략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철도는 시간을 지키고, 전차는 나라를 지킨다. 현대로템은 그 둘을 견인하는 '강철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스마트에프엔>은 한국 방위산업의 주역이 된 현대로템의 여정을, 기술 자립과 공공 신뢰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본다.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2020년, 현대로템 본사 회의실에는 말 그대로 '결정의 시간'이 찾아왔다. 방산 수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바닥을 기고 있었고, 철도 부문은 반복되는 적자와 납기 지연으로 신뢰를 잃어갔다.
그룹 내 위상도 흔들렸다. 한때 현대자동차그룹의 중추 계열사로 꼽히던 현대로템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매각설까지 수면 위로 올라오던 시점이었다.
그때였다. 이용배가 등장했다. 그룹 재무통으로 알려진 그는 현대차증권을 거쳐 현대로템 CEO 자리를 맡았다. 경영 재건이 아닌 '구조 정비'가 임무였고, 목표는 뚜렷했다.

"숫자를 바꿔야 한다."
가장 먼저 손댄 건 비용 구조였다. 조직 슬림화, 저수익 사업 정리, 자산 매각이 병행됐다. 서울 본사 사옥은 물론, 창원·의왕 등 유휴 자산이 매각 리스트에 올랐다. 희망퇴직과 인력 재배치를 단행했다. 인건비 비중이 감소하면서 재무 건전성은 빠르게 회복됐다.
2020년 이후 현대로템의 영업이익은 개선됐다. 2020년 흑자 전환을 시작으로 2021년 965억 원, 2022년 1370억 원, 그리고 2023년에는 2100억 원을 기록했다. 방산 수출과 철도 수주 모두 실적 반영 시점이 맞물리며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구조조정이 이뤄진 2020년과 2021년 사이, 내부에선 고용 불안과 조직 분열이 가시화됐다. 일선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 라인 축소와 자동화 전환의 압박을 받았고 연구개발 인력은 프로젝트 단위 재계약을 반복하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2022년, 현대로템의 철도 부문에서 발생한 브라질 상파울루 전동차 납기 지연 사건은 그 상징이었다. 수익성 위주의 조직 재편 과정에서 프로젝트 관리 인력이 축소되었고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품질 검증의 공백으로 이어졌다. 납품 지연에 따른 위약금은 기업 신용도에 영향을 미쳤고 내부에선 "성과 중심 체제가 현장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워팩의 부활과 방산의 방향
그런데도 방산 부문에서는 연이은 수출 성과가 터졌다. K2 전차를 폴란드에 첫 수출했고, 차륜형장갑차는 페루에 첫 수출하며 로템의 가치를 높였다.
이용배 대표는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았다. 방산 부문에 우선 투자했고, 자체 엔진·변속기 기술 확보를 위해 국내 방산기업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소위 '국산 파워팩'의 부활을 이끈 것도 이 시기다. 기존 독일제 파워팩 대신 국내 기술을 장착한 K2ME 전차는 중동 수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는 방산 수출을 단기 실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한 인터뷰에서 "기술 자립은 수출보다 더 큰 가치"라고 밝힌 그는, 협력업체와의 공생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며 수평적 생태계를 지향했다. 협력사 전담 TF를 신설하고, 부품 국산화 로드맵을 발표한 것도 이 무렵이다.
문제는 구조였다. 방산 수출은 대개 정부 간 계약(G2G)이나 패키지 수출 형태로 이뤄진다. 고부가 제품이지만, 비용 구조가 복잡하고 수익 반영이 지연되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일정과 성능 모두를 충족해야 하기에, 하나의 결함이 전체 프로젝트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또 철도사업에선 수익성 악화가 지속됐다. 브라질, 인도에서 수주한 전동차 프로젝트의 납기 지연, 계약 변경, 현지 노무 갈등 등으로 이어졌고 장기 손실 처리로 재무에 부담을 줬다.
이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체질 개선을 우선했고, 2024년에는 ESG 경영을 선언하며, 탄소배출 감축·국산부품 확대·책임 있는 수출계약 관리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버티는 힘은 숫자보다 사람에서 나온다
현대로템은 여전히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그룹 내 중하위에 머물러 있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170% 수준이고 철도부문의 지속 가능한 구조 전환은 아직 미완이다. 노동조합은 경영진의 소통 부족을 비판하며 경영 투명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의 변화는 분명하다. 창원 전차공장은 최근 2교대 생산체제로 확대됐고 신규 채용도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국산 부품 채택률은 2020년 46%에서 2024년 67%로 증가했고 협력업체 계약 단가는 평균 12% 인상됐다.
이 대표는 "전차 하나는 곧 하나의 산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생태계의 안정적 구조화에 가까웠다.
기업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용배의 현대로템은 위기 속에서 생존의 길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현대로템은 여전히 철과 땀으로 돌아간다. 그 땀방울은 수출의 엔진이 되고 있다. 수익의 숫자를 새로 쓰는 일보다 중요한 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