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제약사 선제적 투자로 '품질 격차' 구축
제약바이오협회, 규제 대응 교육 총력

| 스마트에프엔 = 양대규 기자 | 유럽연합(EU)의 개정된 무균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 가이드라인 'Annex 1'이 8월 전면 시행됐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거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단순한 규제 강화를 넘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총체적 '오염관리전략(CCS)'을 요구하는 이번 개정안은 기업들에게 막대한 투자 부담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품질 격차'를 구축할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수천억원 규모의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관련 기관들은 산업계의 연착륙을 돕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대한뉴팜·한미약품 등 Annex 1 대응 공장 준비
21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뉴팜은 최근 약 810억원을 투입해 EU GMP Annex 1 가이드라인을 설계 단계부터 완벽하게 반영한 신공장을 준공했다. 최신 주사제 생산라인과 작업자 노출을 최소화한 폐쇄형 시스템을 갖춘 이 공장은 연간 정제 8억정, 캡슐 2억개 생산이 가능한 대규모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대한뉴팜 관계자는 "이번 준공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충을 넘어 고품질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수출 확대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연구개발 역량을 전략적으로 강화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강화된 규제를 비용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투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그룹의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 평택 바이오플랜트도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실시한 의약품 제조소 GMP 정기 실태조사를 ‘무결점’으로 완료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2월 식약처가 평택 바이오플랜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정기 실태조사 결과를 공식 전달받았으며 단 한 건의 지적(보완)사항 없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7년부터 무균 공정 개선의 일환으로 미생물 오염관리전략을 수립해 운영해왔다. 지난 2022년 CCS를 적용했다.
한미약품 평택제조본부 김세권 본부장(상무)은 "한미 바이오플랜트는 세계적 품질 기준과 급변하는 규제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실행 역량을 바탕으로 무균 제조 전 공정에 걸쳐 정교하고 신뢰받는 품질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스템 혁신과 공정 고도화를 추진해 한미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Annex 1, 전과정 통제 시스템 구축해야···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경력자 채용
개정된 Annex 1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규정 목록을 추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규제 철학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는 제조업체가 규정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넘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오염 위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개정 Annex 1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오염관리전략(CCS)'의 수립 및 이행을 의무화한 것이다. 원자재 입고부터 시설 및 장비 설계, 공정 관리, 인력 운용, 완제품 사양 설정, 모니터링 방법에 이르기까지 제조의 전 과정에 걸친 모든 잠재적 오염원을 식별하고 통제하기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시장의 강자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채용 공고에서 'EU Annex 1 Gap Assessment 유경험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한 것은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 일반적인 GMP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새로운 규정의 미묘한 차이를 해석하고, 기존 시설과 공정의 격차를 분석하며, 규정을 준수하는 CCS를 설계 및 실행할 수 있는 고도로 특화된 인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Annex 1이 작업자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마트 팩토리'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한미약품은 팔탄공장에 1500억원을 투자했으며, 보령은 예산공장에 1600억원, 대웅제약은 오송공장에 2100억원을 투자하며 생산부터 물류까지 전 공정을 자동화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과거 기업들이 효율성 증대와 원가 절감을 위해 자동화를 추진했다면, 이제 Annex 1은 '품질'과 '규제 준수'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에 따르면 스마트 팩토리 도입 기업은 생산성 40.2% 증가, 불량률 72.3% 감소, 생산 원가 52.9% 감소라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런 경제적 이점은 Annex 1의 엄격한 오염 관리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제약바이오협회, Annex 1 대응 세미나 개최···유관기관, 관련 교육 과정 개설
새로운 규제 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고충이 커지면서, 관련 기관들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KPBMA)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산업계의 지식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협회는 다음달 '국제 GMP 규정 동향 분석 기반 무균의약품 제조·품질관리 세미나'를 개최한다. "무균의약품 제조소 종사자들이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협회 관계자는 밝혔다. 특히 국제 규제 전문가를 초빙해 CCS 전략, 필터 밸리데이션 등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기관들 역시 분주하다. 한국제약기술교육원, 제약기술재단 등은 '새롭게 개정된 PIC/S & EU GMP Annex 1 무균의약품 제조의 이해와 도입방향에 대해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 교육 과정을 잇달아 개설했다.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기관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맞물리면서, Annex 1이라는 거대한 규제 파도는 국내 제약 산업의 품질 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여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